다양한 시계브랜드들을 예시로
우리 회사는 매주 금요일 교육 세션이 있다. 여러 주제로 교육을 듣기도 하고 역량강화 활동도 하는 시간인데 이번에는 브랜드에 대한 아티클을 쓰는 과제가 주어졌다. 브랜드 관련 글이기만 하면 주제는 열려있어서 근래 가장 큰 관심사인 시계를 연결시키니 글이 즐겁게 써내려 졌다. 짧은 글이지만 제출만 하고 끝내기 아쉬워서 블로그에도 공유한다.
브랜드 경험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업무를 하고 있지만 실무를 하며 브랜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브랜드와 브랜딩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며 사람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정리하고 이 생각이 사례를 통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번 슈미트(Bern Schmitt)에 따르면 브랜드란 다른 것과 차이나는 독특한 그 무엇이다. 이때 문화가 중요한 화두이며 해당 브랜드가 개인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브랜드의 이미지에서 가치를 감지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나와 맞다 느끼면 그 이미지-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소비한다. 이러한 원리로 브랜딩(브랜드를 만드는 행위)이란 사람들의 인식을 관리하는 것이며 이때 기업이 만드는 산출물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한다.
앞서 브랜드와 브랜딩을 분리해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브랜드 디자인’은 브랜딩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사람의 신체는 외부 세계를 수용하는 감각기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때 느끼는 지각(perception)으로 외부 세계를 이해한다. 이건 브랜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감각을 통한 지각이 선행되고 이후 사색을 통해 브랜드를 이해하고 해석한다. 브랜드 디자인은 이 과정에서 ‘지각’ 단계에서 인상/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브랜드를 실제 사례로 이해하기에 시계 산업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시대에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적 기능은 무용해지고 소비의 주된 동기가 사용자의 이미지 추구, 개성표현, 미적 만족이기 때문이다.
그럼 시계 브랜드의 몇 가지 개별사례를 통해 브랜드가 어떻게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오메가(OMEGA)이다. 오메가의 가장 중요한 제품 중 하나인 스피드 마스터는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이벤트를 함께한 시계이다. 이는 기능적으로 달탐사에 적합할 정도의 내구성에 대한 증명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런 기능에 대한 강조는 중요치 않다. 달 탐사를 함께한 시계라는 역사적인 가치와 최초, 우주, 탐험의 이미지를 획득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오메가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서도 이미지를 획득하고자 한다. 오메가의 씨마스터는 1995년 007 골든아이를 시작으로 2021년 007 노타임 투 다이까지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시계였다. 대중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이 쉽게 이입하고 동경할 수 있는 대상의 이미지를 차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가격정책과 제품의 개념을 비틀어 보아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 사례도 있다. 1969년 세이코사의 아스트론 발매 이후로 저렴하고 내구성 좋은 일본의 쿼츠시계가 시장을 장악하자 스위스의 오토매틱 시계 회사들은 존폐의 위기를 겪었다. 이후 고급 럭셔리 시계들은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액세서리의 일부로 스위스 시계를 포지셔닝을 했고 이러한 시장 이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저가 쿼츠 시계에게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했다. 스와치(Swatch)는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에 다양한 콜라보로 즐겁고 개인의 개성 표출에 특화된 시계를 출시한다. 아티스트나 다양한 대중문화적 아이콘을 차용하며 매년 빠르게 신제품을 선보이는 전략으로 Fun 한 시계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고 시계와 인류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도 않았으며 시장에서의 비중도 작은 회사는 고객의 문화적 취향을 자극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스위스의 신생 마이크로 브랜드인 세리카(Serica)가 있다. 시계 고관여자들을 취향과 주관이 확고한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다면 그 지점을 적절히 자극해 우리 브랜드는 이런 소설가의 정신, 이런 건축가의 태도를 영감 삼아 시계를 만든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해당 인물과 시대적 아이콘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그 대상의 이미지를 빌려 쓸 수 있는 방식이다.
한편 브랜드 요소로 디자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계 중 하나는 까르띠에(Cartier)의 탱크이다. 탱크는 지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형태적 원형을 유지하며 방대한 아카이브를 쌓고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산했다. 아마 그 중심에는 탱크의 상징적인 형태가 한몫할 것이다. 흔히 탱크는 1차 대전 때 등장한 탱크인 르노 FT-17에서 형태적 모티프를 얻었다고 알려졌다. 직사각형 케이스의 로마자 숫자 인덱스가 가득 차 있는 다이얼의 고전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지되어 80대 할머니, 50대 어머니 20대 자녀도 멀리서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형태적인 상징성이 있다. 하지만 이 직사각 시계라는 상징은 오롯이 조형적인 의미의 디자인에만 그 공로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까르띠에의 탱크가 어떻게 지금의 탱크가 될 수 있었는지 명명백백히 알게 되는 날, 나는 브랜딩의 달인이 되어있지 않을까?
이렇듯 브랜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생산하고 차용해 소비욕구를 자극한다. 구매자들은 이런 이미지를 자신의 정체성 혹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부합하는지 세심히 판단하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하지만 브랜드는 한번 구축한 이미지만으로 지속할 수 없다. 시대정신에 따라 이미지를 동기화하는 동시에 기존 이미지를 선택한 소비자의 충성도를 낮추지 않는 조화로운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