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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Sep 05. 2020

늦은 인사

못난 제자의 20여 년 만의 감사인사

내 마음속에는 늘 한구석에 죄책감이 들게 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중학생 시절에 마주쳤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길에서 마주친 일이었다. 그때 선생님은 평범한 아저씨 선생님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었고 딱히 기억나는 수업 장면도 없다. 다만 얼굴만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다. 그 선생님을 마주치고 나는 못 본 척했는데 선생님도 그런 나를 알아보고 못 본 척 하셨던 건지 아니면 못 알아보셨는진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그 기억은 내 마음속에 박혀서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왜 그런지 들추어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초등학생들이 늘 그렇듯 나도 꼬박꼬박 일기 숙제를 해갔다. 하루는 어린 시절 내 아버지가 나를 부르던 별명에 관해 썼다. 나는 그 별명이 싫은데 아빠가 자꾸 그렇게 부른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귀여운 애칭이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 싫던지. 선생님도 똑같은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나를 그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하셨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은 그 별명이 내 아버지가 애정을 담아 불렀던 별명이라는 것을 아셨나보다 싶지만 어릴 때는 선생님이 그렇게 부르실 때마다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었다. 나는 엄마한테 선생님이 싫다는 데도 자꾸 그렇게 부른다며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고 엄마는 급기야 학교를 방문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학교를 갔다 온 엄마에게 나는 잔뜩 기대에 차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엄마는 의외의 말을 풀어놓았다. 선생님께서 내가 글짓기에 재능이 있어 보이니 나를 그쪽으로 교육했으면 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더란다. 선생님이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는 말을 기대했던 나는 시무룩해졌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이후로 고등학교에서는 이과를, 대학은 아예 포기하면서 선생님의 추천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왜 그때 외면했던 선생님과의 조우가 죄책감이 들었는지 알 것 같다. 그 선생님은 특별한 것 없었다.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선생님도, 존경하는 선생님도 아니었다. 특별하게 기억이 남는 선생님도 아니었고 스승의 날에 다시 찾아뵐 만큼 어린 우리에게 임팩트가 컸던 선생님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리고 별 볼 일 없었던 일기장에 적힌 아이들의 이야기 하나하나 살펴보시고 그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주셨던 그분이야말로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참 선생님이 아니셨나 생각해 본다. 어린 나도 내심 알았던 것 같다. 진심으로 걱정해주셨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자 20년도 더 지났는데 그 선생님이 보고 싶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 선생님께서 대충 40대 후반 50대 초반이지 않으셨을까 싶은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셨을 것 같다. 다시 뵐 수 있다면 진심으로 반갑게 인사하고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 그때 그렇게 내 아버지가 애정으로 지어 주신 별명을 함께 불러 주셔서 감사했고 아무도 관심 기울이지 않았던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참 좋은 선생님이셨습니다.”


사진 사용: https://www.istockphoto.com/photo/thank-you-phrase-on-blue-background-gm1191622502-338250894?utm_source=pixabay&utm_medium=affiliate&utm_campaign=SRP_photo_sponsored&utm_term=thank+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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