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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Oct 27. 2020

인생이란 계단을 오르는 것

다니고 있는 사이버 대학에서 2월에 졸업하려면 졸업 신청을 하라는 이메일이 왔다. 3학년으로 편입해서 이번 학기가 4학기 째니 근 2년을 학교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사실 과목들이나 과제의 수준이 일반 대학교보다 너무 쉽기도 했고 - 그냥 내 생각이다. 한국에서 대학교에 다닌 적은 없으나 생각해 봤을 때 - 과목 자체도 별로 듣고 싶지 않지만, 학점을 맞추기 위해서 들어야 했던 과목들도 많았다. 그래서 별로 발전도 없이 졸업장만 따기 위해 다닌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했었는데 졸업 신청을 하며 돌이켜 보니 내가 지나온 자리에 발전은 확실히 있었다. 2년 전 학교에 입학할 때에 비해서 확실히 몰랐던 단어며 숙어 표현법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그때에 비해서 지금의 내 영어가 더 안정적인 것도 확실했다.

비단 나 혼자만의 평가는 아니었다. 며칠 전 옛날부터 영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부탁했던 동생에게 이메일 한 통 좀 봐달라고 했는데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거기에 직장 동료에게 게스트 웰컴 레터에서 내가 고친 부분을 보고 문법에 안 맞거나 어색하면 고쳐 달라고 부탁했는데 문자가 와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실력이 좋은 것 같으니 자신에게 점수 좀 후하게 주라고 했다. 아직도 목표한 길이 멀고 내 욕심만큼 유창한 실력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들으니 무척 뿌듯했다. 그동안의 내 노력과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끈기가 부족하다. 어릴 때부터 쉽게 쉽게 이루지 못하는 것들은 금방 포기하고 질려 하는 쪽이었다. 금방 배우고 금방 질려 했다. 영어는 어쩌다가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동기 중 하나에는 한국에서 잠시 다녔던 학원 선생님의 한마디가 있다. 어느 날 문득 그 선생님이 영어는 계단 오르기라고 했다. 위를 향해 계단을 계속해서 오르다 보면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르겠고 때론 너무 힘들고 지쳐서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어질 때도 있다고. 그렇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한 계단 한 계단 걸음을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올라온 계단을 내려다보며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구나'하는 보람찬 순간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이상하게 내 뇌리에 박혀서 영어가 나를 힘들게 하고 울고 싶게 하고 게을러지게 하는 순간마다 내 발걸음을 떼게 했다. 요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몇 개월 만에 영어 정복 뭐 이런 비상한 속도와 실력은 아니지만,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어쩌면 내 생애 처음으로 또 유일하게 오랜 기간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있다.


오늘은 유독 우울했다. 가끔 이런 날은 삶에 대한 의문이 피어난다. 나는 사실 내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그렇게 긍정적이지 만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40살까지 살다 죽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었다 - 왜 40살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 내 20대는 마치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것처럼 후퇴하는 인생이었다.  내가 정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 체, 그곳이 아래를 향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줄달음 쳐서 내려갔다. 30대 즈음 정신을 차리고 내려온 길을 나는 다시 용기 내어서 한 발 한 발 올라왔다. 그러다 보니 내 나이는 이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나이를 향해 조금씩 가고 있다. 내려온 길을 올라왔으니 어떤 관점에서는 0점 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0점에 도달하지 않았을 수도, 이미 지나쳤을 수도 있고 혹은 그즈음일 수도 있다. 혹은 인생은 0점으로 나눌 수 없는 그 무엇인가 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했다. 방향. 맞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인생은 영어 공부만큼이나 한 발짝 한 발짝씩 마음을 다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군가의 말대로 방향을 잘 잡으면 순풍에 돛 단 것 같은 인생일 수도 있지만, 내가 만난 인생은 그게 아니었다. 영어 공부처럼 인생도 때로는 힘들고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을 때도 있다.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작가는 '인생은 고해다(Life is difficult)'라는 말로 운을 뗀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어렵다. 마치 계단 오르기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말고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언젠가는 내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며, 오늘 영어 공부를 해 온 나를 보며 뿌듯해하듯 그렇게 내 인생을 살아온 나를 마주하며 뿌듯해하고 애썼다, 수고했다 기뻐할 날도 올 테니까. 40살까지 살다 죽을 거라던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는 이렇게 40살이 다 되어 가서야 살아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사용: https://pixabay.com/photos/steps-stairs-up-staircase-stairway-38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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