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팰롱팰롱 May 21. 2021

즐거운 나의 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어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큰 의미 없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어지는 소설이라 그냥 읽어봤을 뿐인데 어쩐 일인지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꽤나 아팠다. 오히려 첫 번째 소설이 성장소설에 가깝고, 두 번째 소설은 전쟁통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편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였을 뿐인데 나는 왜 그리도 아프던지..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문득 박완서 선생님이 부러웠다. '그 시절, 너무나도 어렵던 그때 어쩜 그렇게 한 개인이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렇게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 살짝 질투도 났다.  내가 만약 그 시대를 살았더라면 소설 속 박완서 선생님이 했던 그런 사유들을 할 수나 있었을까? 아니, 생각이란 것 자체를 하며 살 수 있었을까. 어쩌면 혼란한 세상을 탓하고 당장 목숨조차 부지하기 힘든 환경을 탓하며 하루하루 내 목숨 연명하는 것만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생각은 '그렇다면 박완서 선생님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로 이어졌고, 생각은 다시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로 이어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헤어진 나의 옛 연인은 항상 나를 예쁘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왜 나는 스스로를 인정해 줄 수 없냐고, 내가 지금까지 이뤄왔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것인데 왜 이렇게 자신에게 야박하냐며 걱정해주었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몰랐던 날 그 사람은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걱정한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나는 매번 마음속 거울을 기어이 꺼내 들고 그 진심을 튕겨내었다.  나를 향한 그 사람의 진심은 걱정 혹은 애정 정도로만 받아들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언제나 안 예쁜 사람, 더 채찍질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여겼다. 


그다음 생각은 '어쩌다 이리되었나'였다. 어쩌다가 나는 이리되었을까. 나는 이상한 완벽주의가 있다.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완벽해야 했다. 집구석은 엉망진창이면서도 회사에서는 깔끔해야 했고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조금이라도 날까 봐 항상 신경 쓰였다. 업무를 처리할 때는 항상 완벽해야 했고 무엇 하나 티끌 같은 옥에 티가 보이면 차라리 다 다시 엎어버리고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던 것처럼 해야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남과 비교했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내 못난 점을 끄집어내야 속이 후련했고 '나는 누구보다 못하니까 이런 일 당해도 싸'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내 이런 성향은 언제나 스스로를 옥죄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돌아가신 엄마와의 기억이 아직도 많다. 내가 받은 상장에 엄마가 뛸 듯이 기뻐하던 모습, 엄마가 정말 열심히 살았던 모습,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교실 창밖 너머로 일렁일렁 보이던 청소하는 엄마 모습까지.. 하지만 엄마와의 기억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암 투병으로 몸이 매우 아팠던 엄마가 다그치는 소리 또한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엄마의 짜증 섞인 다그침은 모욕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 악다구니로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말은 칼날이 되어 나의 마음을 마구 후벼 팠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그런 말은 더 들을 일이 없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나이도 들어갔지만, 엄마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살아 나를 다그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테고 당신의 두 자식과 남편이 당신의 보살핌 없이 잘 살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앞선 나머지 첫째 딸이었던 내가 미덥지 않았을 때가 있었을 테고 그때마다 아픈 몸과 함께 짜증이 일었을 테고 어렸던 나는 그냥 그렇게 엄마의 짜증 받이가 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혼나는 이유 또한 어린 내가 집 안 어디에 있는 물건을 못 찾아온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채신머리가 없다, 고작 몇 개밖에 안 틀린 시험에서 그 몇 개는 왜 틀려서 온 것이냐 등등 대부분 강박적인 그런 것들이었다. 아직도 집 안 어디에 있는 물건을 찾아오라고 그것도 못 찾아오는 옆집 누구보다 못한 가시나 어쩌고 하며 소리 지르는 엄마, 그 사이에서 겁을 잔뜩 집어먹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어린 내가 내 머릿속에서 움츠리고 있다.


엄마와의 그런 갈등으로 나는 내 마음속에서 벽을 쌓고 있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이었다. 그런 끔찍한 엄마와의 갈등을 겪었을 당시나, 그 후로도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마음속에서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렸고 그렇게 하나씩 쌓아진 벽돌은 어느새 너무 높아져 나를 고립시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힘든데 그것도 그리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나를 보호하고자 쌓아 올리기 시작한 내 마음속의 벽이 어느 순간 내 키보다도 높아져 더 이상 내가 보이지도 않게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날은 엄마의 제삿날이었다. 그날 나는 다시 초등학생의 나로 돌아가 혼자 아이처럼 엉엉 울며 엄마에게 부치지 못할 가슴 시린 편지를 썼다. 그리고 엄마와 작별을 했다.


몇 달 전 토론토에 있는 지인과 서클 프로세스라는 모임을 온라인으로 가졌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을 가지자는 취지의 모임이었다. 모임이 진행되는 중에 10년 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과제가 나왔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안락한 내 집이 있고-월세 없는 자가여야만 한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게 마트를 갔다 오는 모습이었다. 집에는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 한 마리와 내가 작업 중인 번역서 한 권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바라는 표면적인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20대부터 나는 내 집 한 채 갖는 것이 꿈이었고 월세 높은 외국살이를 하다 보니 그 꿈은 더욱 간절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집이 비단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물론 내 몸이 쉴 집이 필요한 것도 맞겠지만 어쩌면 나는 내 마음을 쉬이 뉘어 주고 편히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그런 내 마음속 안식처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내 마음속 벽을 부술 순 없으니 이제 그 벽을 이용해 집을 지어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도 만들고 문도 만들어서 내가 쉬고 싶을 때는 문을 닫고 들어가 안식을 취하고 세상이 궁금하면 창문으로 엿보기도 했다가 햇살 좋은 날엔 문을 열고 나와 세상과 소통도 하고 때론 누군가를 초대해 내 마음속 집 안으로 들이기도 하고 지내는 그런 집 말이다. 이제는 즐거운 나의 집을 지을 시간이다.  


사진 사용: https://pixabay.com/photos/tulips-tulipa-shield-sweet-home-2091616/


작가의 이전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