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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Nov 29. 2021

슈퍼바이저가 되다

MBA를 향한 여정의 시작

캐나다 온 지 6년 만에, 내 인생 처음으로 나는 승진이란 것을 경험했다. 따지고 보면 회사 생활 자체를 20대 후반이나 되어서 시작했고, 그 뒤로 캐나다에 와서 학교 다니고 주를 이동하고 바쁘게 살다 보니 이제야 승진을 하게 되었으니 나이로 보면 늦깎이 인생이라도 승진 자체가 엄청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사실 이 업계가 나와 정말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승진을 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매니저들도 그런 나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승진을 마음먹게 된 계기는 MBA 준비 때문이었다. 조금 더 전문성을 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기 시작했고 어떤 것이 좋을까 고민한 끝에 나는 지금 일과도 연관 지을 수 있는 MBA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학교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평소 토론토 대학에 로망이 있었던 나는 학교의 꽤 높은 명성 또한 마음에 들어서 토론토 대학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던 차에 Access MBA라는 곳에서 일종의 온라인 박람회 같은 행사를 하는 것을 알고 신청했다. 신청하면 학교 두 곳을 배정해서 그곳 입학사정관과 면담 같을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내 의도와 달리 다른 나라에 있는 학교 두 곳을 배정해 주었다. 일단 배정받은 두 곳을 끝내고 바로 진행자한테 연락해서 캐나다 학교를 연락해 줄 수 없냐고 문의했더니 캐나다에 있는 다른 학교를 연결해 주었다. 다른 학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여서 좋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토론토 대학이 궁금했고, 토론토 대학을 연결해 줄 수 없냐고 했더니 그곳에는 나이 제한이 있어서 안 된다는 답변이 왔다. 한국도 아니고 왠 캐나다에서 나이 타령인가 싶어서 조금 기가 막혔다. 바로 행사 홈페이지에 안내되어 있는 토론토 대학 담당자한테 연락을 했다. 학교 입학에도 나이 제한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쯤 행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학교 담당자로부터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서 시간이 다 되어서 미팅은 어렵고 내 이력서를 보내 주면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바로 내 이력서를 보낸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입학 사정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매니지먼트 레벨이나 데스크 잡 경력이 부족하다며 그 경력을 조금 더 쌓고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그런 것을 요구하다니.. 사실 지금 호텔에서 슈퍼바이저 하는 것이 정말 싫어서 꿈도 꾸고 있지 않았는데.. 방법이 없었다. 

마음을 먹고 당장 매니저를 찾아갔다. 이미 매니저가 내가 회사에서 MBA 검색하는 걸 본 적이 있던 터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여차저차 해서 내가 MBA를 하고 싶은데 학교에서 매니지먼트나 데스크 잡 경럭을 좀 더 쌓고 오라고 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가 호텔에서 그런 쪽으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렇게 상담 요청을 합니다."라고 했더니 매니저가 바로 어떤 거?? 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바로 슈퍼바이저라면 아직 공식적인 공고는 안 났지만 우리 이제 뽑을 건데 해볼텨??라고 물어봤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당연히 예스라고 했다. 2일 후로 바로 면접 예약을 잡았다. 

면접 준비는 상당히 난감했다. 사실 매니저들은 그 누구보다도 나의 일하는 스타일에 대해서, 내가 이루었던 성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테고, 그런 질문들에 맞춰서 심금을 울리는 대답을 하자니 낯간지럽고.. 갈팡질팡 하다가 이틀이 갔다. 

면접 당일.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너에 대해서 말해줄래??라는 질문이 나왔고 나는 난감한 마음을 안고 대충 이러이러한 일을 했고 내 경력과 이 호텔에 몸 바쳐 일한 과거를 합해서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요라고 낯간지러운 멘트를 끝내자 총지배인이 웃으면서 우린 그 누구보다 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그런 감상적인 멘트는 할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그 뒤로 사실 면접을 잘 봤다고 볼 순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고 제대로 대답을 못한 것도 많았지만 면접을 보면서 받은 느낌은 면접이라기보다는 슈퍼바이저라는 자리에 대한 디스커션 정도에 더 가까웠고 이미 내정을 했구나 라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대충 면접을 마치고 내가 좋아하는 부총지배인을 만났다. "나 면접 봤어요!" 했더니 부총지배인이 그래 너는 열심히 일하고 머리도 똑똑해서 잘할 거야. 네가 마음먹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라고 말해주는데 이미 확정이라는데 마침표를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슈퍼바이저가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경력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슈퍼바이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거 좀 됐다고 건방진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번 이전에 슈퍼바이저 공고가 났을 때 나보다 경력이 더 많은 캐네디언 남자 동료가 지원을 했었지만 떨어진 적이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에 말빨로도 뒤지지 않고 곧잘 손님 응대도 했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늦진 않지만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늘 출근했고 표정은 나 일하기 싫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안 됐으니 매니저들이 이번에라도 붙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애랑 자리를 놓고 붙어야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사실 썩 자신이 있진 않았다. 아무래도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고 특히 손님들이 소리치면 대차게 반응하는 그 애와 달리 나는 당황해서 버벅대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에 내가 되었다. 이번 일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정말로 유창한 영어 실력이나 청산유수 같은 말빨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근성, 근면성실과 같은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면 어떻냐!! 다른 강점을 더욱 잘 살려보자!! 개성 있는 사람이 되자!

사실 두려움도 있었던 자리라 아직 걱정은 크지만 이제 성장해야 할 때이다. MBA라는 성취를 위해서! 더 나은 인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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