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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Jul 17. 2020

좌충우돌 호텔 취업 도전기(1)

나이도 많고 영어도 못하지만 내 가능성마저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 주세요.

오후 3시 출근 터덜터덜 걸어가는 출근길이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분 같았다. 불현듯 ‘하… 진짜 이 일이 지긋지긋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너무 우울해졌다.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프런트 데스크 에이전트. 그것이 내 직업이다. 이제 나도 삼십 대 후반을 향해가다 보니 8시간 내내 서 있는 것이 조금은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도 있고, 손님들한테 치이는 것이 정신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직장 동료들과 추억을 만들고 웃고 떠드는 그곳이 좋았다. 코로나가 터지고 캐나다 경제 활동이 모두 멈춰버리면서 우리 회사도 대규모 일시 해고를 감행했고 연차가 없는 직원부터 잘라 나갔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두 달쯤 지났을까, 다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아서 출근을 시작했는데 어쩐지 기분이 좋지가 않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슬럼프라는 것을 겪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되짚어 보았다. 호텔 경력의 시작점에는 사실 별로 안 좋은 기억 두 개가 있다. 그런데도 여태껏 몸담고 있는 것 보면 이 직업을 썩 좋아하긴 했나 보다. 


영어

2012년 나는 간단한 영어 문장 한마디도 못 하는 채로 호주로 날아갔다. 호주에 가면 자동으로 쏼라쏼라 할 줄 알았다. ‘화장실 가고 싶어요’를 못해서 비행기 안에서 옆 좌석 승객을 톡톡 쳐서 화장실을 가리켜야 했을 정도였다. 3개월 정도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때는 비수기였고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나는 여전히 영어를 잘못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한 하우스키핑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다. 에이전시에서는 일을 구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연결해주고 주급의 일정 부분을 받아 챙겼다. 회사에서 건강 검진을 해오라고 해서 병원에 갔다. 건강 검진이 다 끝나고 받아온 결과서를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English Poor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두 단어. 결과지 그 어느 곳에서 내 영어 실력을 묻는 곳은 없었건만 굳이 의사 선생놈은 추가 코멘트를 달고 안 해도 될 말을 넣었다.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다음날 지인들과 같이 따지러 병원에 갔지만 의사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만 돌아왔다. 내 일이었고, 내가 당한 인종차별이었지만 타인의 입을 빌려야만 하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만약 그 코멘트 때문에 내가 일을 못 하게 되면 병원에서 책임져야 할 거라는 경고를 하고 돌아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그 의사가 없긴 했던 걸까, 내가 진짜 못하게 됐더라도 병원에서 일말의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끼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비록 ‘English Poor’라는 TMI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제없이 취직되어 남은 워킹홀리데이 기간을 채우고 그 돈으로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내 호텔 경력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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