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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비 May 31. 2024

17. 사춘기 네 컷

지난 주말에 아이들과 오랜만에 쇼핑을 했다. 꼭 사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둘째가 입을 셔츠와 니트 조끼였다. 둘째는 이번주에 있을 졸업 앨범 사진 촬영에 꼭 '셔츠에 니트 조끼'를 입고 찍겠다고 했다. 매일 티셔츠에 운동복 바지만 입던 아들은 졸업 앨범 사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한 시간을 넘게 돌아다닌 후에야 맘에 드는 셔츠와 조끼를 구입할 수 있었다. 졸업 앨범 촬영이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싶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독사진 한컷, 자기 꿈을 표현한 복장이나 소품을 들고 한컷, 여러 명이 같이 찍는 그룹 사진 한컷, 같은 반 단체 한컷 총 이렇게 네 컷의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콘셉트로 찍을지 친구들과 아직 결정을 못했다며 고민이 된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사온 옷을 입어 보고 포즈도 취해보는 아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중학생 딸은 이번주부터 극단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고 야채와 약간의 고기, 두부, 바나나만을 먹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다이어트는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졸업앨범 사진 촬영 때문이다. 다행히 교복을 입고 찍는 사진이라 옷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최대한 얼굴은 갸름하게, 그리고 몸은 날씬하게 찍어야 하다며 배고픔의 고통을 인내하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굳건한 결의는 초등학교 졸업 앨범 사진에 유난히 동그랗고 퉁퉁 부은 얼굴이 흑역사로 남아 있기 때문이겠지.


내가 십 대 시절 인기 있었던 스티커 사진이 30년이 지나 다시 '인생 네 컷'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30년의 시간차를 두고 이렇게 다시 유행할 수 있었던 건 언제나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 기억하고 싶은 순간, 함께한 순간을 담고 싶어 하기 때문일 거다. 거기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보는 이미지의 픽셀이 아닌 인화된 사진이 주는 특별함이 그 순간을 더 기억나게 한다. 사진에는 찰나의 순간이 제한된 공간으로 담기지만 사진을 보는 사진 속 주인공은 사진에 담지 못한 분위기, 기분, 시선, 냄새, 소리 등을 기억해 내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생시킨다. 


아이들이 졸업 앨범 사진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도 단 네 컷의 사진에 많은 걸 담고 싶은 것이라고 이해한다. 특별한 순간,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친구들, 선생님, 내가 다닌 학교, 그곳에서 성장한 나, 그리고 훗날 펼쳐봐도 흑역사가 되지 않을 멋진 모습의 나. 

사춘기 찰나의 순간이 담길 두 아이들의 졸업앨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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