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은김남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엄마가 오지 않았다.
캄캄한 밤이었다.
세상의 불빛이 잠들기 위해 하나둘씩 꺼져가는 시간이었다.
시골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돌아다니는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오빠는 중학생이었다.
우리는 같은 학원에 다녔다.
학원과 집은 거리가 꽤 멀었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가 또 오빠를 데리러 가기엔 시간이 애매해져서
내가 오빠를 기다려서 한 번에 집에 간 걸로 기억한다.
학원 자습실에서 책도 읽고 학원 숙제도 미리하고, 빈둥대다 보면 오빠가 끝날 시간이었다.
매일 그랬던 건 아니고, 특정한 날에만 그랬다.
자습실은 3층이었고 오빠 수업은 4층에서 했기 때문에 우리는 1층에서 만났다.
오빠가 친구들이랑 내일 보자는 인사를 마치고 난 오빠 옆에 서서 엄마를 기다렸다.
대게 엄마가 미리 와서 기다려주셨는데, 그 날은 엄마 차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아도 받지 않으셨다.
가끔 몇 분씩 늦게 오실 때가 있었으니 기다렸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점점 피곤했다.
서있는 것도 피곤하고, 지금까지 오빠를 기다린 것도 피곤하고, 늦은 밤이 주는 노곤함까지.
덕분에 나의 피곤은 정점을 찍었다.
1층에서 기다린 지 30분쯤 됐을까, 엄마 차가 보였다.
괜히 짜증이 밀려왔다.
나의 어깨는 투정을 부리기 위해 한껏 올라갔다.
터벅터벅 엄마 차에 타기 위해 걸어갔다.
나보다 빨리 걸은 오빠가 먼저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엄마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아차 싶었다.
그 순간 내 온몸을 지배하던 짜증과 피곤함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부끄러움이 남았다.
엄마의 대답을 듣고는 오빤 답했다.
엄마를 향한 오빠의 걱정 어린 질문이
아무 일 없어서 안도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나는 내가 피곤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만 생각했지 엄마 입장에선 생각하지 못했다.
그 날 정말 다행히도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서 늦으신 건 아니었다. 퇴근하고 집안일을 하시다가, 깜빡 잠이 드셨다고 했다. 시간을 보고 놀라셔서 차마 정신없이 집을 나오시다가 핸드폰을 두고 오셨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금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퇴근 후에 집안일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셨던 엄마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진다. 엄마 너무 고마워. 사랑해.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그 이후로 오빠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난 어릴 때부터 오빠를 좋아했다.
오빠가 하는 건 다 하고 싶었다.
같이 놀고 싶었고, 뭐든 따라 하고, 옷도 똑같이 입고 싶었다.
그냥 오빠라는 존재가 너무 좋았다.
오빠가 차문을 열면서 했던 말을 들은 이후로는 한 사람으로서 오빠를 좋아하게 되었다.
13살이었지만 꽤 큰 교훈을 얻게 되었다.
난 오빠를 본받고 오빠를 따라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날 나에겐 나름 충격이었나 보다.
아직까지 뒷좌석 차문을 열며 오빠의 질문을 들었던 그때 기분이 생생하다.
내 삶에 오빠가 미친 영향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소중하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난 오빠를 좋아한다. 그것도 많이 많이.
그래서 난 다시 태어나도 오빠 동생 할래.
우리 오빠는 취준생이다.
내가 교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했던 1년 동안 어떤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고,
나를 무너트렸는지 잘 알기 때문에 오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다.
때론 이렇게 성품도 좋고 잘생긴 우리 오빠를 왜 몰라주나 세상이 야속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절대로 오빠의 잘못이나 오빠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직 오빠 자리를 못 만난 것뿐이다.
난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힘내라는 말은 때론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없는 힘을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조금만 더 버티라는 것뿐이다.
내 삶에 오빠가 미친 영향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소중해.
고마워. 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