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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쥐마담 Jan 05. 2024

15.  껌이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다독일 처방을 세 가지 준비했다. 셋 중에 적어도 하나는 심리적 안정제의 효과가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중에서 첫 번째는 이 수술 과정을 2박 3일짜리 체험 학습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내가 겪는 상황에 약간의 거리를 둔 ‘관찰자’가 되어 보고 들은 장면을 최대한 자세히 기록하는 일에 집중하면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 급작스럽게 닥치는 슬픔 따위에 덜 휩쓸릴 것 같았다. 이 방법은 나름 효과가 있었다. 병원은 낯선 공간이어서 관찰하고 품평할 것이 차고 넘쳤다. 그런데 반나절 내내 핸드폰에 시시각각 메모를 했더니 머리가 살살 아파 왔다. 게다가 병실은 덥고 건조했다.  편히 쉴 환경은 아니었지만 내일의 수술을 위해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었다. 


수술 당일 아침 컨디션은 완전 꽝이었다. 환자 다섯 명과 보호자 네 명, 총 아홉 명의 숨소리와 코 고는 소리, 불평이 섞인 혼잣말, 뒤척임이 섞인 공간에서 숙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대학 병원은 보호자가 상주할 필요가 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운영하지만 일부 병동만 해당되는 것 같았다. 얼른 수술을 잘 받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병실, 병동에 머물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 처지는 조금씩 달라도 같은 마음으로 버티고 있을 테지. 


전날 밤 12시부터 금식이었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오전 6시에 수액을 연결한다고 해서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을 다녀왔다. 수액 거치대와 한 몸이 되니 본격적으로 불편해졌다.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받아야 할 시술이 남아 있어서 수액 거치대를 끌고 유방센터에 또 갔다. 외래 진료가 시작되기 전이라 유방센터 대기실에는 오늘 수술을 받기로 예정된, 수액 거치대와 한 몸을 이룬 수술복 차림의 환자들만 있었다. 우리는 모두 유방암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기 위한 시술인 ‘유방 와이어 위치 표시술’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한 명씩 차례차례 초음파 진단실로 들어갔다. 내 순서가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의사를 얼핏 보니 어제 초음파 검사를 했던 의사였다. 그녀는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따끔합니다”라고 말했다. 의사의 말처럼 제대로 따끔했다. 이어서 “누릅니다”라는 말과 함께 압박감이 느껴졌다. 꽤 묵직한 통증이었다. 시술을 마치고 환자복을 여미면서 보니 오른쪽 유방의 2시 방향에 약간의 탄성이 있는 얇은 실 같은 것이 두 가닥 달려 있었다. 와이어가 제대로 삽입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방 촬영을 한 번 더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을 받으러 갈 때는 속옷을 벗고 환자복만 입으라고 했다. 병실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가서 속옷을 벗으면서 세면대 위에 붙어 있는 거울을 힐끗 보았다. 수술을 하면 내 몸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서 얼른 환자복의 단추를 채우고 침대로 돌아왔다. 두건을 쓰고 덧신을 신고 안경을 벗었다.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수술이 오전에 잡혀 있어서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나를 위한 두 번째 처방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남들이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기며 보는 예능 프로그램을 남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기며 보지 못한다. 국민 예능으로 칭송받는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매사에 진지한 편은 아니고 장난도 잘 치는데 예능 앞에서만 사뭇 진지해진달까. 드라마나 영화도 취향에 맞는 작품만 엄선해서 보는 편이라 병원에서 딱히 보고 싶은 영상이 없었다. 나는 영상 대신에 소설을 선택했다. 수술을 기다리면서 중국 소설가 위화의 신작 장편소설 <원청>을 읽었다. 588쪽에 달하는 두꺼운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자 순식간에 시공간이 바뀌었다. 소설은 나를 100여 년 전 중국으로 데려갔다. 물이 흐르듯 막힘 없이 이어지는 문장을 눈으로 부지런히 좇았다. 한참 소설에 몰입해 있는데 이름이 불렸다. 수술장으로 이동할 시간이라고 했다. 얼른 수술받고 와서 소설을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두 번째 처방도 꽤 효용 가치가 있었다. 


세 번째 처방은 믿음이었다.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내가 읽은 문장에 대한 믿음이었다. 입원하기 전에 유방 부분 절제술 후기를 검색하다가 한 블로그에서 “제왕 절개 수술에 비하면 껌이다.”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나는 세 아이를 모두 제왕 절개 수술로 출산했다. 첫째를 낳을 때는 당연히 자연 분만을 할 줄 알았는데 예정일이 열흘이나 지나도록 출산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분만 촉진제를 맞고 유도 분만을 하다가 실패하고 제왕 절개 수술을 했다. 수술을 받고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돌아왔을 때 너무 아파서 꼼짝달싹도 못 했던 기억이, 잊혔던 고통의 기억이 그 문장 앞에서 되살아났다. 끔찍했던 과거의 경험을 기준점으로 잡으니 상대적으로 눈앞의 수술이 가볍게 느껴졌다. 껌이라잖아. 나는 제왕 절개 수술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몸이니 완전 껌이지. 그 블로거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환자 이송 직원이 병실에 도착했다. 직원이 가져온 휠체어에 앉았다. 간호사가 내 무릎 위에 종이가 끼워진 파일을 올려놓고 목부터 다리까지 시트로 감싸 주었다. 별관 2층 병동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가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구름다리를 건너 본관 2층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직원은 나를 젊은 수련의에게 인계했다. 그는 내게 인사를 하고 자기 이름을 말하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는 수술 대기실에 나를 데려다 놓고 사라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 탁 하고 스위치가 켜진 듯 환해졌다. 지금 이 의사가 나를 안위하는 말을 한 거지? 나를 수술대에 올릴 몸뚱어리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한 거지? 그가 내 휠체어를 밀면서 서너 마디를 건넨 시간은 기껏해야 30초가 될까 말까 했지만 그 30초 사이에 나는 고속으로 충전되었다. 


수술 대기실에는 이동식 침대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이 두 명 더 있었다. 맞은편 데스크의 담당 간호사는 그 환자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어떤 수술을 받는지 묻고 있었다. 나야말로 내 유방을 얼마나 잘라내는지 묻고 싶다… 고속 충전 덕분에 없던 용기가 생겼다. 이때다 싶어서 몸을 감싼 시트에서 오른손을 빼고 무릎 위에 놓인 파일을 슬그머니 꺼냈다. 어머나, 다 영어네. 나랏말싸미 미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영어는 몰라도 숫자는 알지. 중년의 건망증이 기본값으로 깔려 있으니 소수점은 떼자. 눈에 들어온 숫자는 3과 1과 2였다. 여기에 1cm씩 수술 마진을 더하면 최소한 4X2X3 cm² 이상 절제하겠군. 궁금증이 풀려서 속이 시원했다. 파일을 다시 시트 속에 넣었을 때 이름이 불렸다. 


수술실에는 아까 내게 인사를 건넸던 수련의와 다른 수련의가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가슴을 수술하므로 수술대는 오른팔을 놓을 자리만 펴져 있었다. 수술대에 앉으니 수련의가 시트로 몸을 가려주었다. 환자복 단추를 풀어 오른팔을 빼고 누웠다. 산소포화도, 혈압, 심전도를 체크하기 위한 장치들을 연결했다. 그 사이에 마취과 의사가 들어왔는지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이마에 뾰족한 패치를 붙였다. 마취 감도를 측정하는 장치라고 했다. 산소호흡기를 얹고 가스를 2번에 나눠 주입했는데 전신에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회복실에서 간호사가 잠을 깨웠다. 정면 벽에 시계가 보였다. 12시 26분이었다. 혀로 치아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내 소중한 치아들은 멀쩡하군. 왼쪽 팔을 뻗어서 수술부위를 더듬었다. ‘피주머니’라고 불리는 배액관이 없었다. 담당 교수의 말대로 간단한 수술이었던 것이다. 간호사가 진통제를 주사로 놓았다고 설명했다. 목이 약간 따끔거릴 뿐, 전체적으로 통증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빨리 병실로 돌아가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30분쯤 뒤에 이동식 침대를 타고 병실로 돌아왔다. 


병실 침대에 앉자 간호사가 수술 부위를 압박하기 위해 입힌 서지 브라를 풀었다. 유두와 유륜은 제자리에 있었고 9시 방향으로 약 8cm가량 절개한 자국이 있었다. 앞으로 5시간 동안 눕지 말고 10분에 5번 간격으로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술 부위보다 엉덩이가 더 쑤시고 아팠다. 수술은 껌이 맞았지만 엉덩이가 복병이었다. 소설 <원청>으로 다시 돌아갔다. 대륙의 스케일에 취해 울고 웃으며 5시간을 버텼더니 담당 교수가 회진을 왔다. 수술 부위를 확인하더니 내일 퇴원하면 되겠다고 했다. 오오, 감사합니다. 


금식이 풀리자마자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수술한 뒤에 마시는 한 모금의 물만큼 달고 시원한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인간은 물 한 모금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다. 맛없고 비싼 환자식 죽을 후루룩 떠먹고, 남편이 사 온 디카페인 커피 반 잔과 단팥빵으로 마무리를 한 뒤에야 비로소 다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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