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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쥐마담 Feb 24. 2024

22. 붕괴의 시작

대학 병원 암통합케어센터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났고, 약 처방을 받았으니 당장 오늘 밤부터 제대로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처방해 준 멜라토닌은 서방정이었다. 말 그대로 약효가 서서히 퍼지는 제형이었다. 이 약이 나를 안락한 잠의 세계에 머물도록 도와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낙스 반 알도 함께 처방을 받았지만 멜라토닌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아니, 멜라토닌만 먹고 싶었다. 나는 불면으로 한 달 넘게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항호르몬제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약을 더 먹어야 한다는 상황, 약이 약을 낳는 악순환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9시 30분에 멜라토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 30분에 눈이 번쩍 떠졌다. 동시에 마음이 쿵 떨어졌다. 자낙스를 같이 먹을 걸, 후회가 몰려왔다. 뒤늦게 자낙스 반 알을 먹고 어떻게든 잠들려고 애를 썼다. 선잠이 들었다가 오전 9시쯤 깼다. 기대와 실망은 비례했다. 한 달 가까이 자지 못했으니 수면 흐름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경험에 기초한 사실을 깡그리 무시할 만큼 잠이 간절했다. 동네 가정의학과 의사가 했던 말처럼 멜라토닌으로 효과를 보려면 몇 달은 걸리는 것일까? 


2주 뒤에 다시 암통합케어센터에서 의사를 만났다. 나는 의사에게 멜라토닌은 매일, 자낙스는 8번을 먹었지만 자다가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약을 바꿔 주겠다고 했다. 새로 처방할 약은 오전에 몽롱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더 깊이 잔다고 했다. 내 몸이 약에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는 먹어 봐야 안다는 말로 들렸다. 의사는 잘 자게 되면 약을 줄여나갈 수 있고, 얼마나 푹 잤느냐보다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잠을 못 자니 피곤에 짓눌리고 체력이 딸리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게 일상다반사인데…  이 악순환을 해결할 만능열쇠는 잠이란 말입니다, 선생님. 


새로 처방받은 약은 클로나제팜이었다. 멜라토닌 서방정과 함께 꾸준히 먹을 결심을 하고 복용한 지 이틀째, 거짓말처럼 중간에 깨지 않고 잤다. 불면이 시작된 지 50일 만에 고통이 없는 밤을 되찾았다. 당분간 약을 계속 먹으면서 수면 패턴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면 되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어렵게 싹을 틔운 희망을 붙잡고 싶어서 성균관으로 갔다. 400여 년을 버텨낸  명륜당 안뜰의 은행나무 두 그루는 가지마다 연초록빛 새잎이 가득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그 이파리들을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했다.    


나는 삶이 흔들릴 때마다 그 은행나무 두 그루 앞에 서곤 했다. 그들에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를 배웠고 그걸 책에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나무가 가르쳐 준 의연함은 갑자기 몰아닥친 불면의 폭풍에 자취를 감췄다. 나의 일상은 천천히 붕괴되고 있었다. 


두 달 전부터 병원에서 안내를 받은 항호르몬 식사요법에 따라 채소와 통곡물, 지방이 적은 육류와 생선 위주로 식탁을 차렸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도 이런 음식들을 거부감 없이 먹었지만 이런 음식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먹는 즐거움보다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 먹을 수 있는 재료의 가짓수만 줄어든 게 아니었다. 조리법에도 제한이 있었다. 튀기거나 굽지 말고 삶거나 데쳐서 먹는 것을 권장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쉽고 빠르게 마음을 달래 주던 디저트마저 정제 탄수화물(밀가루)과 단순당(설탕)과 동물성 지방(버터)이 합체되었으니 역시 거리 두기를 해야 할 식품이었다. 처음 식사요법을 시작했을 때의 자신감은 드라이아이스처럼 증발했다. 내가 즐기던 맛의 세계에서 유배를 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모범생 성향이 강했다. 하라는 대로 해야 마음이 편해서 식사요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암 재발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이런 식단을 평생 유지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해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암세포에 대한 방어기지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맛의 즐거움은 포기하겠다는 결심으로 식단에 매달렸다. 식탁을 차릴 때마다 영양사가 살이 찌지 않게 관리하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전에도 밥 한 공기를 다 먹지 않았는데 더 적게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면 당근과 콜라비를 씹어 먹었다. 먹는 즐거움을 천천히 잃고 있었지만 나는 식단을 지킴으로써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극심한 거식증과 알코올 의존증을 겪었던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거식증에 걸린 캐럴라인 냅이 비스킷과 사과를 잘게 쪼개서 아껴 먹는 장면이 섬찟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졌다. 밥을 거의 다 먹었는데 여전히 배가 고프고, 하지만 이 배고픔이 나의 건강을 지켜 줄 거라는 비논리적인 믿음으로 안도하는 내 모습이 그 책에 반사되어 보였다. 냉장고에 채소가 떨어지면 불안했다. 기운이 없어도 주방에 들어가서 채소를 씻고 다듬어야 안심이 되었다. 캐럴라인 냅이 강력한 중독을 심리적인 보상으로 대체한 것처럼 나는 식단에 집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착을 멈출 수 없었다. 식단에 대한 강박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암 재발에 대한 공포가 밀려올 것이 뻔했다.  


멜라토닌 서방정과 클로나제팜을 복용하면서 수면은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가 멍하고, 기운이 없고, 집중력이 떨어졌다. 개인 지도를 하는 학생에게 고등학교 1학년 국어 모의고사 문제를 해설해 주려고 준비를 하는데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해설지와 동영상을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학교에서 돌아온 딸에게 설명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딸이 명쾌하게 설명을 해 주어서 이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서는 순간 다시 헛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유방을 수술했는데, 뇌 수술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문제를 못 풀 수가 있나? 그날의 충격으로 자신감이 반토막 났다. 


친구 P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내가 작년에 출간했던 책으로 북토크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북토크가 처음도 아니고 1시간 정도는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준비를 하기 시작하니 너무 부담이 되었다. 노트북을 켜고 슬라이드를 만드는데 평소에 비해 시간이 두세 배나 걸렸다. 북토크 당일, 카페에 도착했더니 친구가 1시간 30분 동안 진행해 달라고 말했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에 대한 중압감이 몰려왔다.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북토크를 마쳤다. 북토크를 전혀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유튜브에서 작가들의 북토크 영상을 검색해서 계속 들여다보았다. 작가 혼자서 1시간 30분 내내 말을 하는 영상은 거의 없었다. 너무 무리였어. 갑자기 시간을 늘린 친구가 원망스럽고, 즐기던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다음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주님은 안중에 없고 오직 피칸파이 생각뿐이었다. 어제의  북토크로 곤두박질친 마음이 보상을 갈망하고 있었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점심도 거르고 카페로 직행했다. 피칸파이와 디카페인 커피를 시켜서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정신을 차리니  접시에는 파이 부스러기가, 디저트로 끼니를 때운 나 자신에 대한 비난만 남아 있었다.


당연히 글은 써지지 않았다. 새 글을 쓰려고 계속 시도했고 몇 편의 에세이를 썼지만 쓰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고 결과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문단을 완성하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쓴 글에서는 녹즙 맛이 났다. 기쁘고 즐거운 경험이 없으니 쓰디쓴 글이 나올 수밖에. 글이 겉돌면서 다시 수면 흐름이 꼬이기 시작했다. 약효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다. ‘도대체 독자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한참 망설였다. 진실을 말하면 그 진실이 나에게 팩트 폭력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내 안에 가득한 말은 한마디, 무섭다는 단어로 모였다. 우울증이 시작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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