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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쥐마담 Apr 06. 2024

28. 잃어버린 체중을 찾아서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갓 짠 우유처럼 신선한 걱정이다. 나는 이 걱정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남들이 내 걱정을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바짝 따라붙는다. 전쟁이나 기후 위기, 원전 오염수 방류처럼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게 아니니까. 걱정의 규모를 대폭 축소해서 한 개인의 삶에 닥칠 만한 위기들과 견주어 보아도 내 걱정은 확실히 볼품없어 보인다.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지도, 보이스 피싱에 넘어가 현금 자산을 몽땅 빼앗기지도 않았다(사기꾼이 탐낼 만한 현금 자산이 없다는 사실은 조금 염려스럽다).


살이 빠졌다. 


몸에서 3kg이 없어졌다. 8개월 전만 하더라도 내 몸에 아주 확실하게, 착 달라붙어 있던 살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살이 빠지면 좋은 게 아니냐고? 게다가 겨우 3kg이 빠졌는데 웬 호들갑이냐고? 종일 기운이 없고 무기력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고 지친다. 매트리스 밑에 세이렌이 숨어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침대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아침을 먹고 오전 내내 누워 자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점심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가 저녁을 먹자마자 침대로 직행한 날도 있다. 뭐라도 해 보려고 일어났다가 정신을 차리면 다시 침대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 아깝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살이 빠져서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잃어버린 3kg은 삶의 의욕과 활력을 유지하는, 생명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말라깽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살이 좀 붙었지만 임신했을 때를 빼면 통통했던 적이 없었다. 20년 가까이 키 173cm에 몸무게 57kg을 유지해 왔다. 내 나이 또래에 비해 키는 크고 몸무게는 덜 나가는 셈이다. 한마디로 마른 중년 여성이다. 얼마나 말랐는지 설명하려면 표준체중이 필요하다. 표준체중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체중으로, 키의 제곱에 (여성의 경우) 21을 곱하면 된다. 내 키의 표준체중은 62.8kg이니까 나는 최적의 체중에서 6kg이 모자라는 셈이다. 병원에서 살이 찌지 않도록 관리를 하라는 특명을 받았을 때, 시작부터 먹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나에겐 6kg의 여유가 있어!’ 암과 관련해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오만 가지인데 49999가지로 줄어서 기뻤다.


하지만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항호르몬 식사요법을 시작하면서 나는 비무장지대 GP에서 근무를 하듯 살을 감시했다. 암세포에게 100g도 내줄 수 없다는 자세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영양사가 알려준 대로 삼시 세끼를 먹으려고 열과 성을 다했다. 살이 찌지 않으면 암세포는 굶어 죽을 테고, 나는 삶을 되찾을 거라고 믿었다. 3kg 실종 사건의 범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암 환자의 성실한 자아였던 것이다.


식사요법을 유지한 지 석 달쯤 되었을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체중을 쟀는데 56kg이었다. 1kg이 조용히 사라졌다. 체중이 늘기는커녕 줄어들었다. ‘어머, 나 정말 잘하고 있나 봐.’ 살이 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체중은 조금씩 꾸준히 줄어들었다. 56kg에서 55kg으로 내려가더니 급기야 54kg까지 빠졌다. 


체중계가 고장이 났나? 그런 것 같았다. 결혼하면서 샀던 체중계를 지금도 쓰고 있으니 정확도가 떨어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새 체중계를 주문했다. 소수점 아래 두 자리까지 측정할 수 있는 체중계였다. 다음날 아침, 새 체중계에 올라간 순간 낭패감이 들었다. 소수점 아래를 반올림해도 여전히 54kg였다. 키 173cm에 몸무게 57kg이면 체질량지수(BMI)가 19.05로 정상이지만 54kg이면 18.04로 내려가고, 저체중 범위에 들어간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체중이 54kg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날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체중을 재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본 뒤에 체중계로 올라갔다. 깜빡이다가 정지하는 숫자를 확인하면 화장실에 다녀오기 전에 체중을 잴 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방금 몸 밖으로 빠져나간 배설물의 무게를 체중에 보태고 싶은, 몹시 더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루에 몇 번씩, 강박적으로 체중계에 올라가고 좌절했다. 이러다가는 암세포가 소멸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 


“반년 동안 잡곡밥, 각종 채소, 콩과 두부, 달걀, 생선과 해조류, 닭가슴살만 먹은 거잖아. 살이 빠질 수밖에 없지. 완전 다이어트식이네."


지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말라깽이를 거쳐 마른 아줌마로 살았기에 한 번도 다이어트를 해 보지 않았다. 다이어트를 하는 줄도 모르고 다이어트를 한 셈이었다. 병원에서 영양 상담을 했을 때, 영양사는 살이 빠질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살이 빠질 정도로 식사요법을 지킬 만큼 나는 암세포에 쫄았던 거다. 잔뜩 겁을 먹고 어리빙빙하다가 침대에 축 늘어져 시큰둥한 얼굴로 숨만 쉬고 있다니... 내가 원래 소심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겁쟁이었나 싶어 화가 났다. 동시에 생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어떻게든 내 소중한 살과 삶을 되찾고 싶었다.


다시 살이 찌면 되잖아? 한 번도 안 해 보긴 했지만. 부리나케 검색을 했다. 검색을 하고 깜짝 놀랐다. 체중을 감량하는 것보다 늘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몸무게에 변화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사람들의 하소연도 눈에 들어왔다. 전 국민이 살을 빼려고 애쓰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살이 찌지 않아 괴로운 인생도 있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제공하는 건강 정보에 따르면 체중 1kg을 늘리기 위해서는 7000kcal가 필요하다. 급격하게 체중을 늘릴 경우 몸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일주일에 0.5kg 정도 증량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한 주에 0.5kg을 늘리겠다면 일주일에 3500kcal, 하루에 500kcal, 매끼 170kcal를 더 섭취해야 한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나의 잃어버린 3kg을 되찾는 데는 6주가 걸린다. 아무거나 먹어서 살을 찌우는 게 아니라 지금 먹는 잡곡밥을 두 숟갈, 두부를 한쪽, 닭가슴살을 한 입 더 먹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더부룩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렇게 먹으면서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체중이 지방 위주로 증가한다니, 새로 찍는 작품의 캐릭터에 맞게 체중을 증량하는 배우들이 새삼 위대해 보였다.


나는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싫어한다. 위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 말에는 거부감이 든다. 위기에서 빠져나온 사람, 바닥을 치고 올라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서 그렇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 위기를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 말에 깃든 초긍정의 뉘앙스는 은근히 폭력적이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기만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서식하는 연체동물이 되었고 그건 확실히 위기였다. 위기를 기회로 삼고 싶지는 않았지만 잃어버린 살을, 삶이라는 기회를 되찾으려면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 결심했어. 6주 동안 꾸준히 '더' 먹고 운동하자. 그런데 과연 결심한다고 잘 될까? 지금까지 살면서 했던 수많은 결심들 중에 미완으로 끝난, 나와 헤어진 결심들이 좀 많아야지. 자신감 가뭄의 한복판에서 어려운 도전 앞에 섰으니 나 자신에게 모종의 보상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딱히 사고 싶은 물건이 없었다. 물욕에서 자유로운 고매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살과 함께 욕구도 욕망도 줄어 심드렁한 인간이 되어서랄까. 이런 인간에게는 당근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채찍을 두 배로 내리칠 수도 없고… 어쩐다?


그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른 건, 아무리 생각해도 뜬금없었다. 길고 난해하기로 유명한, 무인도에 홀로 남겨지지 않으면 완독 할 수 없다는 그 소설이 체중 증량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무 관련이 없었… 잠깐만, '잃어버린 체중을 찾아서'와 라임이 맞아서? 너무 아재스러운데? 혹시나 남들이 들을까 싶어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벌써 손가락으로는 동네 어느 도서관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을 대출할 수 있는지 검색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꼬박꼬박 책을 읽고 거기서 거기인 맛이어도 꾸역꾸역 밥을 먹는 상상을 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계절이 바뀌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날, 몸무게를 회복한다면 감격스러울 것 같았다. 어려운 도전을 두 가지나 하는 셈이니까.


6주가 지났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달랑 한 권 밖에 못 읽었다. 정말 무인도에 갇히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체중을 쟀다. 57.07kg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신선했던 걱정은 지나간 걱정이 되었고 그 자리는 다른 걱정들이 메우고 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여전히 싫어하지만 삶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감사하다. 아직 사고 싶은 물건은 딱히 없지만 더 이상 심드렁하지 않다. 내친김에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편지도 썼다. 전쟁과 기후 위기와 원전 오염수 방류에 맞서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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