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직장에서 두 번이나 반복된 일
기대에 부풀어 디지털 마케터로 입사했는데...
첫 직장에 디지털 마케터로 입사할 때만 해도 나는 '마케팅만' 할 줄 알았다. 작은 회사와 큰 회사의 차이를 잘 몰랐던 나는 곧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을 맞이했다. 해외에 진출한 후 처음으로 국내에 시장을 넓히고 있는 상황이었고 제품의 특성상 영업의 역할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당시 회사엔 영업을 하는 사람이 대표님밖에 없었고 나는 영업 마케팅팀의 신입이었기 때문에, 나도 영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업의 규모와 인력 구조상 예상되는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마케팅을 하면서도 영업 사원이 되어 전국에 전시회를 다니고 대면 미팅을 수차례 다녔다.
발로 뛰며 직접 고객을 만나면서 배운 건 생각보다 많았다. 고객의 피드백을 듣고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건 물론, 그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마케팅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었다. 내가 마케터고 영업사원이었기 때문에 두 직무가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몸소 익혔다.
이런 배움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일에만 집중해서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고 싶은 갈망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코로나 시기의 암흑 같은 취업난 속에서도 퇴사를 한 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더 큰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 입사했다.
그런데 또 영업을 하라고요?
입사한 기업은 영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곳이기에, 공채 입사자는 3개월 동안 실제 영업 사원과 똑같이 영업 활동을 통해 일정 실적을 내고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었다.
첫 직장에서는 하드웨어와 앱을 시연하면서 파는 것이었다면, 이번 직장에서는 화장실과 주방 리모델링 제품을 파는 것으로 더 복잡했다. 매장에 온 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구매 의사가 있는 경우 직접 집을 방문해 실측하고, 화장실과 주방을 설계한 후 설치까지 이어지는 긴 영업 프로세스였다.
집마다 각기 다르게 생긴 화장실과 주방을 줄자로 실측하고,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맞춰 디지털 도면을 그리고, 자재가 제때 도착하도록 발주하고, 설계대로 공사가 진행 됐는지 체크하는 것까지 그 어느 하나 익숙한 게 없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처음 만날 때는 천사 같던 고객들이 작은 실수 하나에 '악마'처럼 돌변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쓴소리 듣는 게 약한 나였는데, 이 경험을 통해 흘려듣기의 기술을 연마하고 맷집도 꽤 키울 수 있었다.
마케팅을 잘하기 위해 작은 기업에서 시작했지만, 영업과 마케팅을 병행하다 보니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큰 기업에서는 잘할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또다시 영업을 경험하고 영업에 의존하는 마케팅을 하게 됐다.
내 커리어 여정을 돌아봤을 때 마케팅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는 데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제너럴리스트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덕분에 스타트업에서 꼭 필요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B2B 마케팅은 영업팀과 마케팅팀이 긴밀하게 협업을 해야 하는데, 영업팀이 어떤 필요가 있을지 알기 때문에 협업을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경험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내 계획과 다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특히 직무상 강점이 뚜렷하지 않은 주니어에게 느껴지는 혼란은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처음엔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모든 경험이 결국 내 커리어에 큰 자산이 되었다.
여러분도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일이, 현재 예상치 못하게 자산이 된 경험이 있나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댓글로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