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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07. 2021

1991.7.10 그날의 기억 (1)

눈을 번쩍 떠보니, 눈 앞에는 불길이 가득했다.

1991년 어느 날이었다. 어느 동생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3시간 후면 내가 3일 작정 금식기도를 시작한 지 꼬박 만 3일을 채울 기간이었다. 그런데 이 웬 끔찍한 날벼락이란 말인가. 서울에 사는 큰 남동생네 집에 불이 나서 식구들이 다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큰 동생네 가정이 구원받게 해달라고 3일이나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그 가정에 불이 나고 모두 죽다니….

하나님! 이게 어떻게  일입니까?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잘못 전달된 소식 아닌가요?  하필이면  가정입니까! 제가  가정을 위해 얼마나 애타게 기도했는지 주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너무 애가 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물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떨렸다. 가뜩이나 3 동안 금식해서  그래도 기운은 없지만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고 사실 확인을 위해 서둘러 동생네 집으로 가야 했다. 발걸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어쩌면 좋은가.  동생네 화재 사고 소식은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고 기가 막혀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겨우 정신 차리고 서울의  병원으로 달려가 처참한 현실과 마주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질  같았다. 남동생은 화재 현장에서 이미 죽었고, 한강 성심 병원으로 실려 갔던 올케는 화재 사건 발생 4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영이의 동생 한호는 3 화상을 입고 올케와 같은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부모의 사망 소식을 전혀 모른 .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다. 가족 넷 중 셋은 죽거나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유일하게 자영이만은 머리카락 하나도 타지 않았다. 무슨 영문일까. 자영이가 말했다. 한방에서 식구들과 잠을 자는데, 잠결에 누군가가 갑자기 “자영아!”하고 큰 소리로 불러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방안이 불길에 휩싸여 있더란다. 그때 누군가가 자기를 번쩍 들어 방 밖으로 던지는 느낌이 들었고, 순간 자기가 문 밖으로 뛰쳐나온 상태에서 너무 놀라 “불이야!”하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화재현장을 피해 문밖으로 나온 후 가족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건만, 한 사람도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서럽게 울었다. 화재 사건의 전후를 따져보아도 잠든 자영이를 누가 불러 깨운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짐작은 되었다. 아마도 그날 그 위기의 순간에 자영이를 보호한 것은, 믿음의 사람을 돌보고자 하늘에서 파송한 천사의 목소리와 손길이 아니었을까…….


- 김정희 저,  [하나님의 딸, 정희] 중에서




몇시쯤이나 되었던 것일까? 눈 앞에 밝은 섬광이 스치는 동시에 내 이름이 귓전을 때렸다. 눈을 번쩍 떠보니 눈 앞에는 불길이 가득했다. 아빠, 엄마 그리고 한호는 방 한 구석에 모여있었다. 이미 불길에 휩싸인 채.

엄마와 아빠는 내게 손짓했다. 어서 밖으로 뛰쳐 나가라는 신호였던 걸까.

옆방을 통해 밖으로 나가 '불이야, 불이야' 연거푸 외쳤다. 사람들이 뛰쳐 나왔고, 누군가가 119 불렀다. 골목은 비좁았고, 소방차는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불길 속에서 남동생이 나왔다. 동생 말로는 아버지가 자신을 불길 밖으로 던졌다고 했다. 뜨겁다고 소리치는 동생을 마당의 수돗가로 데려가 물을 끼얹어 주었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본 동생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 몸은 극심한 화상으로 이미 허물이 다 벗어졌고, 머리털은 바짝 타버린 채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구급대원을 불렀고, 동생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7월이었는데 너무 추웠다.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께서 자신의 한겨울 코트를 입혀주셨다.


아버지는 화재 현장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날이 밝아왔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경찰차를 타보았다. 경찰차를 타고 엄마와 남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한여름에 한겨울 코트를 입은 채로.


이 때의 나는 14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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