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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승태 Jul 31. 2020

묵언 수행하는 직원

예전에는 직장에서 상하 관계가 명확했었다. 그러다보니 관계에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비교적 단순했었고 대부분의 문제는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하는 직원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요즘은 교육이나 코칭을 통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상하가 없이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상사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직원들이 많이 있지만 직원들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상사들 역시 많이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얼마 전 코칭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한 영업 부장의 이야기이다. 

부서원이 10여명 되는 부서의 리더로 있으면서 일도 일이지만 직원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정말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시간이 갈수록 리더의 자리가 익숙해지고 점점 더 잘해낼 줄 알았는데 웬걸 시간은 무심하게 그냥 흘러갈 뿐 자신을 더 나아지게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잠깐 쉴 때면 옥상에 올라가 끊었던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고 멍하니 고개을 들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단다.


“누가 부장님을 이렇게 힘들게 하나요?”

“뭐 누구랄 거 있나요......”


힘들게 하는 직원들 중 한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코치님 제가 그 친구 때문에 몸에 사리가 생길 것 같아요.”


다른 지역에서 옮겨 왔을 때 선한 얼굴이 첫인상이 참 좋았다. 늘 허허 웃으며 사람 좋은 모습을 보였고 기존 직원들과도 별다른 트러블 없이 잘 녹아져 어느새 한 팀이 되어 있었다. 

문제랄 게 딱히 없어보였던 참 무던했던 직원이 조금씩 힘들게 하더니 어느새 어깨를 억누르는 무거운 짐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문제는 답답함이었다. 

처음에는 말이 별로 없는 것이 어색해서 그런가 싶었고 오히려 우직하고 듬직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이 없는 모습은 시간이 가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는 말이 많고 누군가는 말이 별로 없다. 수다스러운 모습을 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하는데 해야 할 때도 침묵은 계속 이어진다. 특히 회의를 할 때면 그의 묵언 수행의 정도는 더 심해진다. 

“김 대리 어떻게 생각해요?” 라고 직접 물어도 묵묵부답이던가 아니면 기껏 대답을 한다는 것이 “괜찮은 의견 같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정도다. 

업무 지시를 했을 때 대답은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실행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지시를 잘못했나 싶어 다시 지시를 하면 또 대답은 바로 하는데 역시 실행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따로 불러서 뭔가 문제가 있는지, 어려움이 있는지 물어봐도 역시나 대답 없는 너 일뿐이다.

말 많고 사고치는 직원 뒤처리 하느라 힘든 적이 있었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결코 덜 힘들지 않다.


이야기를 듣고 회의실 밖으로 나가 사무실을 둘러봤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직원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오가면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직원이었다. 어떤 스타일인지 대략 이해가 되었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몇 가지를 더 확인하면서 먼저 성향을 파악하였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보통 갈등 상황을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누군가와 부딪히는 것이 싫고 아예 미리 피하는 편이다. 갈등까지는 아니어도 의견이 다른 것 정도도 이들은 피하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뭐 먹을까 라고 묻는다면 먹고 싶은 것이 있더라고 그것을 말하지 않고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갈등을 피하려다보니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의견이 다른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가는 것이 더 편하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거나 적극적인 반대 의견이 있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닌 그냥 내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또 업무지시를 받았을 때 자기 생각이 지시 내용과 다르고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이 될 때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그냥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곤 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지시 사항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고 반복적인 지시에도 반응이 없다면 소극적인 거부 의사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러면 이렇게 갈등을 싫어하고 의사 표현을 안 하는 직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선택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선택 자체를 힘들어 하고 특히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면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웬만하면 묻지 않는 것이 좋다. 

꼭 물어야 한다면 주관식보다는 객관식이 대답을 듣기에 수월할 것이다. 

그리고 관찰이 필요하다. 대답을 기다리기보다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결정 사항이나 업무 지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 그들의 의사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꼭 기억할 것은 답답하다고 다그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입을 굳게 닫히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오히려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 천천히 마음을 먼저 열어야 입이 열릴 수 있다.  


이 유형의 직원에 대해 답답하게 느끼는 리더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리더를 얼마나 편하게 해 주는지는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 내의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며, 리더의 의견을 대체로 큰 불만 없이 잘 따라주는 좋은 직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큰 강점들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약점쯤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부장님 그래도 부장님 마음 살피는 건 그 직원밖에 없죠?”

“네……. 그건 그러네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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