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병원에서 잠깐 지켜본 여인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나이 지긋한 아들과 동반했으므로 적어도 이른 후반에서 팔순은 되었을 것이다. 군살이 없어 키가 더 커 보였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몸이었다. 연한 브라운 톤으로 신발에서 모자까지 맞춰 입었다. 상하 투피스는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플리즈" 제품이었다. 아버지와 같은 신장내과 진료를 받았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같이 머물렀다. 키와 몸무게를 잴 때 아들이 여인의 모자를 훅 벗기니 투명한 아이보리 피부에 회빛 섞인 은색 단발커트, 그 아래로 갸름한 얼굴형과 목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젊은 여자 못지않은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짙은 안경렌즈 때문에 눈매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들과 말을 나눌 때도 여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같이 쳐다보고 있던 엄마는 "돈이 있는 노인네구나."라고 한마디로 평을 했지만 그것만으로 나오는 아우라는 아니었다.
그녀의 아들은 배도 튀어나오고 대머리였다. 여기저기 안내를 하면서 "엄마 엄마"라고 호칭을 쓰는데 그 단어나 말본새가 정겨움보다는 상스럽게 느껴졌다. 자식은 그 엄마의 고매함과는 꽤나 이질적이었지만 아들 때문에 그녀의 품위가 떨어지지는 않었다.
도대체 그녀에게 나오는 분위기는 뭘까? 나이를 먹어도 저런 모습을 지니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극히 외모에 따른 판단이긴 하지만 마흔만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데 더블을 더 산 팔순의 인생을 외모가 아니면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
최근 참여한 교육프로그램에서 딸 같은 아이들과 한 조를 이뤄 고민을 한 가지씩 털어내고 서로 소통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공통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 미래'였다. 내 차례가 왔을때 나 역시 젊은 시절, 무한한 자유를 품고도 성취에 대한 조바심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힘들었고, 그것을 모두 타인이나 사회 탓으로 몰았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이를 먹었다고 무조건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그때 무얼 해야 했으며 무얼 할 수 있었는지 돌이켜보지만 분명히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다만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다 많은 걸 수용하고 겸손해지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세월이 그저 가져다주는 선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살아온 건 결국 얼굴에 다 나타나는 법이니 젊은 시절을 비롯해 숨 쉬는 동안 잘(~) 사는 건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잘 늙어가는 방법이 있을까?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른 결과물인 건 맞다. 마음고생 돈고생을 하면 얼굴이 망가질까? 내가 아는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다. 가난하지만 얼굴이 밝은 사람이 의외로 참 많다. 편안해 보인다. 의학의 힘을 받아 외관상 젊음을 유지하는 듯 보이는 분들이 그리 아름답지 않을 때도 많다.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일 수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는 아주 식상한 화두를 꺼낼 수밖에 없지만, 요즘 뇌과학에서는 편두엽의 안정화와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훈련을 통해서 낙관적 사고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니 일단 노력은 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