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번 깨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정도 충분한 잠을 잤다고 생각한 상태로)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감각. 춥거나 덥지 않은 체온에 코끝은 약간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호흡이 상쾌하고 침대시트, 베갯잇과 이불은 모두 흰색(문화심리학자 김정운교수는 5성급 호텔과 내 집 침대의 차이는 조명과 화이트 침구 때문이라고 했다)에 일체 잡내가 나지 않는다. 스트레칭을 통해 자유롭고 쾌적한 몸의 상태를 느낀다. 전날 최소 16시간 이상의 공복을 유지한 상태라 침대광고를 연상케 하는 미소를 머금으며 일어날 수 있다.
일상적 루틴 하나를 실행한다. 소금물을 적당한 농도로 만들어 3~4회 가글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켠다. 9시 전엔 클래식 FM라디오를, 이후엔 재즈 그루브채널을 선호한다. 방과 거실의 커튼을 차례로 열어젖히고 계절에 따라 적당한 넓이의 창문을 연다. 일정한 변좌온도와 온수, 타인의 흔적이 없는 나만의 비데를 쓰면서 건강한 행복감을, 이전 화장실로 들어가기 전 책 한 권을 고르면서 내 공간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이미 느낀 뒤다. 어디든 한눈에 볼 수 있고 제자리에 놓여있는 책과 물건들을 바라보며 충만함까지.
손을 씻고 전날 설거지해 둔 그릇들을 마른행주로 닦아 제자리에 정돈하고 하루 한 끼가 전부가 될 나만의 식사를 준비한다. 유통기한에 맞추거나 또는 당기는 음식 순으로 계획해 뒀던 것들이다. 냉장고도 내 몸을 들여다보듯 매일 체크하고 정리한다. 한 그릇에 오래 담아두는 음식은 없으며 한 자리를 며칠씩 차지하는 식자재도 없다. 냉동고도 마찬가지다.
마른 부직포를 끼워 방 3개와 거실. 주방을 차례로 걸레질한다. 씻어서 말려두었던 진공청소기 필터를 끼워 2차 바닥청소를 한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방영한 인간극장을 유튜브에서 시청했는데 106세 할아버지에게 장수 비결을 묻자 또박또박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 세상은 그렇게 사는 거지. 따로 방법이 뭐 있겠나?." 말씀하셨다.
바로 그거다.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하기 싫은 것을 안 하고 사는 거.
나는 텔레비전이 싫다. 목적지 없는 드라이브가 싫으며 침대 위든 바닥이든 잠자는 시간 이외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게 싫다. 밥 먹을 때 술을 마시거나 술을 마시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도 싫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하물며 천박스럽기 짝이 없는 얘기들이 난무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마음에 안온함을 주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세상, 그것들을 접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시간에 원하는 양만큼 먹는 것. 귀로 들어와 머리는 물론 발끝까지 편해지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기는 것. 내 몸이 말하는 언어를 듣고 내 처지를 알아차리며 수행해 가는 삶을 사는 것에 쓸 에너지도 달리는데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을, 그것도 천박하기 짝이 없이 각색된 삶을 쳐다보며 부러워하거나 노여워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삶도 없지 않나?
나는 인간은 정치적이며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정치가 통치자나 정치가만 하는 것인가?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 국가정치라면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타인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꿈을 실현시키는 것은 개인정치며 그것을 즐기는 과정이 곧 인생이다. 따라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내 삶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음을 뜻하는 거다. 보수나 진보, 좌파나 우파는 투표할 때뿐만 아니라 나를 정치할 때도 고스란히 녹아드는 성향이다. 내가 정치색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가치관은 물론 살아감에 사소한 취향부터 행동 방식까지 영향을 미쳐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루라도 빠트릴 수 없는 루틴, 독서다.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는 평론가가 영화보다 독서를 우위에 둔 이유 중 하나. 독서는 매일 8시간씩 평생을 해도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여기 하나를 덧붙이자면, 독서는 한꺼번에 여러 권을 접할 수 있어 다양한 경험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예컨대 소설, 인문학, 시. 전기,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물론 시간차는 생기겠지만.......엄청난 양의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한 문장씩만 읽는 독서광이 모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는데, 그의 독서법이 틀렸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 그는 그 수많은 책의 내용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시몬드보부아르의 <제2의 성>과 몽테뉴의 <수상록>과 파스칼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 막심고리키의 <어느 쓸모없는 인간의 삶>과 김재명의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그리고 <법화경>을 동시에 읽고 있다.
첨부글:나의 주말 사용기
나의 주말은 크게 올해 시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일주일은 월화수목과 금토일. 월화수목은 업무에 맞추고 금토는 술과 술안주에 적격한 음식을 늦게까지 먹으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몰두했다.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늘 상충되었고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사소한 감정손상이 왔다. 내가 의도한 페턴은 아니다. 10여 년을 그래왔던 터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거의 이런 식으로 돌아갔다. 그날! 평소에도 충분히 자주 있어왔던, 아주 단순한 불협화음. 그 사소한 충돌로 10월부터 금토일도 오롯이 내 시간이 되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내게 맞는 음식을 만들어먹고 주중처럼 주말을 살아도 되게 되었다.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지는 꽤 되었다. 그 동안 많은 사람이 비릿한 흔적을 남긴 채 멀어져갔고 마침내 가장 묵은 관계 하나마저 떨어져 나간 셈이다. 인간의 관계란 생각보다 느슨한 것이었음을, 예전에도 알았지만 늘 습관을 이기지 못했었다. 습관은 그것이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는 물론 사물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