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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Oct 07. 2018

삶이 메마르자, 눈이 말랐다.

메마른 삶이 내게 남긴, 안구건조증

사무실의 공기에 익숙해진지 딱 두 달이 되던 날.


모니터 속에서 눈을 지팡이 삼아 이리저리 걸어 다니던 내게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찾아왔다.


눈에 누군가 자갈을 흩뿌려놓고 억지로 깜빡이게 한다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쓰고 있던 안경을 던지듯 벗어던지고 눈을 부여잡았다. 메마른 눈에 필요한 단 한 방울의 눈물만 있으면 된다, 스스로를 달래며 눈을 감아봐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차라리 슬픈 생각을 해서 펑펑 울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통증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다시 안경을 쓰고 일을 했을 나지만, 그 날만큼은 뭔가에 홀린 듯 '병원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별 안코 벌떡 일어나 사무실 앞 안과로 향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 안으로 밝은 빛이 쏟아진다. 정면, 왼쪽, 오른쪽 여러 방향으로 빛을 쐬고 사진을 찍던 의사 선생님께서 흠칫 놀라신다.


환자 정보를 한 번 보시더니 사진을 번갈아보며,


"눈 건조한 지 꽤 오래됐나 봐요, 아직 어린데."


"아.. 많이 심각한 편인가요?"


"여기 사진 한 번 볼까요?"


내 눈을 저렇게 크게 찍어놓은 사진은 또 처음 보네. 밝은 빛을 비춰 찍으니 각막에 수없이 많은 작은 흰색 점들이 붙어있었다. 


"이쪽 흰 점들 보세요, 하늘의 별만큼 많죠? 이게 다 스크래치 난 거예요. 각막이 오랜 시간 동안 건조하면 이런 상처들이 나는 거죠."


하늘의 별만큼 많다니요? 쓴웃음이 나왔다. 




나는 집중하면 눈을 오랫동안 깜빡이지 않는 습관이 있다. 눈을 깜빡이면 무언가를 놓칠까 봐,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봐 두려운가 보다. 각막에 난 상처들은 내가 불안함에, 초조함에 눈 감지 못한 시간들이 남긴 흉터였다. 


일을 시작하며 눈 감지 않는 버릇은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업무에, 대답해야 하는 이메일과 메시지에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 


사무실을 나와서도 내 눈은 지하철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과 옆에 서 있는 이의 피곤한 얼굴 대신 작은 화면 안에 머무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메마른 일상은 눈도 바싹 메말려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안과에서의 충격적인 진단 뒤, 내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안약과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어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라 30분에 한 번씩, 혹은 한 시간에 한 번씩 나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에 힘을 집중해 똑- 단 한 방울의 안약이 떨어지도록 하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크게 숨을 쉬고 여유를 찾는다. 안약 한 방울에, 큰 숨 한 번. 


안약이 마를 때까지, 인공눈물이 지나던 자리를 내 눈이 스스로 만들어낸 진짜 눈물이 채울 때까지, 잠시 쉬는 것. 어쩌면 이 처방은 메마른 내 눈뿐만 아니라 메말랐던 삶 역시도 촉촉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이 순간에도 메마른 눈을 비벼가며, 작은 핸드폰 속에 파묻혀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은 누구보다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자 열정이 타다 남긴 혈흔이다. 

하지만 이제는 메마른 눈을 모른 체 할 것이 아니라, 물과 여유를 채워 넣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각막의 상처들은 오아시스의 별들만큼 아름답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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