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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May 17. 2019

범생이, 자퇴생이 되다.

누구나 그렇게 자퇴생이 된다.

자퇴서를 인쇄했다.

자퇴서에 이름을 썼다.

자퇴서에 사인을 받는다.

자퇴서를 냈다.


그렇게 나는 자퇴생이 됐다.


사무실 문을 나서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어?

'저 자퇴하고 싶어요'라는 한 마디를 꺼내기까지 돌아온 거리와 시간들은- 흰 종이 한 장에 담겨 그렇게 내 손을 훌쩍 떠났다.


물론 다행인 건, 대학 졸업장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석사 과정에서 자퇴했다. 에이-석사 자퇴가 별 일이야?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별 일이었다. 너무나 큰 별 일이라, 학교를 떠나 휴학했던 1년 동안에도 연구실 안에 갇혀 죽는 악몽을 꿨다.


이건 스트레스라기보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증상이었다.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을 만난 느낌은 생경했다. 매일을 타인에게, 스스로에게 '너, 그거밖에 안 돼?'라는 말을 들었던 한 해 동안 나는 망신창이가 됐다.




나는 지난 여름 연구실에서 도망쳤다.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폐 속 깊숙이 들이마셔야 했던 종이 냄새가 싫었고, 논문에 줄을 긋던 형광펜의 사각거림이 싫었다.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늙어서 편안한 교수가 되는 거야'라는 말로 동기 부여를 해주던 어른들이 싫었다.


논문을 위한 논문을, 목표가 없는 이론을, 배움이 없는 학문을 한다는 사실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위험 신호는 아주 일찍부터 존재했다. 석사 입학 후 첫 수업, 교수님께서 이론의 흐름을 설명하시는데 자꾸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귀를 누군가가 손으로 덮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선 교실 문이 보였다. '저 문을 열고 뛰어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순간 강하게 일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학부를 다니던 수년간 늘 앉아있던 교실이었는데, 학부 수업을 가르치시던 똑같은 교수님이었는데, 그땐 뭐가 그렇게 달랐는지.


처음 내 이름이 적힌 연구실에 들어가자, 옆 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선배가 날 반겼다. '네가 이번에 입학한 ㅇㅇ지? 얘기 많이 들었어. 학부 우등 졸업하고 왔다며? 언제쯤 자퇴할지 궁금하네' 하며 웃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신입생에게 입학 첫날 자퇴 얘기를 꺼내다니. 도대체 무슨 맥락에서 나온 얘기인가요 하니, 요새 학부 우등 졸업을 하고 들어온 석사 신입생들이 얼마 못가 우르르 자퇴서를 내고 나간다는 얘기였다.


난 그 얘기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 '나를 그런 나약한 사람들하고 비교하다니, 어디 본 때를 보여줘야지.'


그땐 몰랐지. 내가 코웃음 칠 때가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할 건 관성이었다. 그것이 좋은 관성이던, 나쁜 관성이던, 관성은 때로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어'하고 속삭인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만이 안전한 길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였던 거다.


내가 훌륭한 학자가 될 거라고 다짐했던 모든 순간들은, 결국 돌아가던 팽이를 계속 화전시키는 물리적인 힘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관성은 내가 그 힘을 떨쳐내려 하는 순간 무섭게 따라붙는다.


휴학생이라는 보류의 시간은 마냥 달콤하지 않았다. 결정의 순간을 미루고 미룰수록 늘어가는  '내가 틀린 선택을 했음' 현실이 되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 뿐이었다. 최근 많은 이들은 자퇴생을 용기 있다고 칭찬하지만, 그 칭찬은 실패한 자퇴생의 몫이 아니었다.


성공하는 그 순간, 자퇴라는 결정은 용기와 결단력으로 합리화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성공이라는 마침표가 붙는 순간에야, 자퇴 이력은 예쁜 포장지에 담겨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끝까지 버티지 못하는 사람'

'쉽게 질려하는 사람'

'성실하지 않은 사람'

'똑똑하지 않은 사람'


나는 내 인생에 이런 낙인들을 결코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낙인이 가려 보이지 않을 만큼, 내 삶은 다른 무언가로 가득 차야만 한다.


그건 이미 내가 아는 나라는 사람의 숙명일거다. 그 운명은 내가 자퇴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정리되어 버린, 꽤나 명쾌한 사실이었다.




 

졸업 논문 대신 자퇴서를 내고 학교를 나서는 길. 장장 6년을 걸어 나오던 길인데, 기분이 이상했다. 우선 날씨가 너무 좋았고,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은 학교 안으로, 나만 학교 밖으로 나서는 느낌이었다. 흠, 눈물을 흘릴 타이밍은 아닌 것 같고, 환호성을 지르기에도 좀 애매한 느낌이다.


저 이제 학교 그만둡니다, 하고 인사를 갔던 '어른들'의 입가에 띄워진 억지스러운 미소를 봤다. 그 기묘한 마지막 미소를 떨쳐버리려고 나는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울지 말자, 화내지 말자, 실망하지 말자, 되뇌며 집에 돌아왔고, 나는 밝게 웃으며 가족들에게 자퇴 소식을 알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혼자 침대에 누워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다 밤을 새웠다.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하고 물어보면 솔직히 모르겠다. 그건 가봐야 아는 거겠지. 학업 대신 선택한 이 길이 정답이 아니어도, 나는 그들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틀렸고 내가 옳았다고 증명할 필요도 없다.


내 삶은 그들의 내기 거리가 아니다. 언젠가 내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이 결정을 후회한다 해도 그들은 내 인생을 실패작이라고 부를 수 없다. 자퇴생이 되던 날, 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자퇴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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