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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Jun 14. 2019

지극히 현실적인 국제연애의 단면

설렘은 예고편일 뿐이야.

국제연애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연차 같다. 이쯤 되니 주변에서 "국제 연애를 4년씩이나 하면 힘들지 않아?"라는 코멘트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요즘 외국인 코드 없이 돌아가지 않는 한국 예능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듯, 내가 국제연애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인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국제연애는 로맨틱 코미디 30부작이라면, 현실은 인간 극장 5부작이랄까?

나의 인간극장을 한 장면으로 표현하자면.... 죽겠어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국제연애의 가장 현실적인 단면을 그려보고자 한다. 연애 초기 풋풋함의, '24시간 붙어있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와 같은 귀여운 투정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들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감상이니, 모든 국제커플의 고민거리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1. 함께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꽤 많이.


특히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라면, 데이트에 드는 비용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국제연애를 하는 나의 경우 1년에 한 달씩 두 번 (총 2개월 남짓) 남자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1년에 60일 정도로 계산을 하면, 매 주말 데이트를 하는 커플보다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 우리는 둘 다 학부생일 때 연애를 시작했고, 지금은 소득이 있는 사회인이다. 연애 초기에 비해 소득이 넉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 년에 두 달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는데 지불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그저 한 달간 즐겁게 해외여행 다녀오는 비용과 비슷할거라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여러 번의 여행 끝에 느낀 바는 다음과 같다.


남자 친구가 한국을 방문할 때면, 이는 데이트라기보다 외국인 손님을 맞이하는 듯한 방한 행사가 되어버린다. (그것도  가족이 동원되는)


'손님에게는 가장 좋은 것만' 모토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음식도, 가는 곳도 내가 평소에 먹고 즐기던 이상의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기 쉽다. 식비와 기타 관광 비용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시간문제다.  


현재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나의 가족들이 불편해할까 봐) 남자 친구는 별도의 숙박 비용을 지불한다. 장소를 불문하고 한 달 살기에 들어가는 숙박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다.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으면 비용은 추가된다. 오히려 국제커플 같은 경우 서로의 가족들과  긴밀한 대화를 하는  같다. 보통 우리는 서로의 가족 선물들까지 모두 챙긴다. 여기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돈을 아껴 쓰자'라는 얘기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얼굴 보는 시간도 짧은데, 더 많은 걸 해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앞선다.


우리가 일 년에 두 달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보통 커플이 일 년에 지출하는 모든 데이트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 같다. 특히나 장소가 미국이나 물가가 매우 비싼 유럽이라면 출혈이 더욱 커진다.


브라질은 생각 외로 물가가 서울보다 훨씬 비싼 편이다. 특히 브라질 국민들의 소득 수준과 물가 수준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내가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남자 친구와 가족들이 지출했던 '상대적인' 비용 수준을 나중에 듣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아무리 호스트를 해주는 쪽에서 대부분의 비용을 지출한다 해도, 몸만 덩그러니 와서 대접을 받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여행을 하든, 양쪽 모두에서 비용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번엔 네가 냈으니 다음번엔 내가 낼게!'가 어려운 세팅이다.)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와서 간단한 가계부를 작성해보면 '이걸 다 썼다고?' 하며 눈을 비비게 되는 경우가 많다.




2. 직장인의 국제연애 난이도는 ★★★★★


아, 방학이라는 제도는 참으로 신성해서 학생들은 연간 4개월 정도의 시간적 자유가 생긴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과 브라질이라는 초장거리를 4년 동안 극복해온 데에는 방학의 역할이 팔 할 일지도 모른다. 일 년에 두 달을 오롯이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학교를 떠나는 순간 희귀해진다.


다행히 남지친구의 경우 미국의 대학교 박사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에 방학 제도의 혜택이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연구를 위한 실험이 필요한 분야라 학부생 때보다 길게 자리를 비우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연차가 20일 남짓 발생하더라도, 그 20일을 한 번에 사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한 달이나 두 달로 유지해오던 재상봉 기간이 몇 주 단위 혹은 며칠 단위로 쪼개지는 시점이 바로 이 순간이다. 짧게, 여러 번 만나기 위한 여행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둘 다 학생이라는 신분일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 명이 아직 학생이라도 이렇게 어려워지는데, 양 쪽 모두 직장에 몸이 매여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운이 좋아 연차를 100% 활용해 1년에 40일 남짓을 함께 보낸다고 해도, 매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요] 메일이 뜨면 확인 안 할 수가 없잖아요...)


특히 두 사람이 직장인이고,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기가 되면, 고민은 더욱 심해진다.  사람 모두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커리어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국제연애는 접점을 향해 가는  아니라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게 마련이다. 


‘나는 내 커리어 포기 못하니까, 네가 포기하고 이쪽으로 와서 살도록 해.'라는 말을 누군가 꺼내기도 쉽지 않다. 대게는 어느 한 명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점쳐보다가 '그래, 나 정도면 이 나라로 간다고 해도 굶어 죽지는 않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상대방이 살고 있는 나라에 자리를 잡는 경우를 꽤 목격했다.


커리어를 그대로 이어나가면서 원하는 나라로 이직을 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좋겠지만, 수요가 많은 특정 기술이 없는 한 만족스러운 해외 이직이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커리어적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때로 당장 눈 앞에 있는 일이 급할 때 혹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같은 순간에 문득 국제연애를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함께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은 적지만, '내가 이 사람과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중대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기 때문에 늘 자잘한 스트레스가 많다.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커리어 고민, 직장인으로서의 국제연애는 어려운 주제다.


3. 네가 가족이 되면, 우리 가족은?


최근 남자 친구와 결혼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만났고, 4년째 안정적인 (?)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면 제3국 (아마도 미국일 것 같다)에 자리를 잡자는 얘기를 은연중에 해왔던 터다.


과학자를 꿈꾸는 남자 친구는 이미 작년 미국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 원하던 공부를 넉넉한 펀딩까지 받으며 하고 있다. 그에 반해 나는 커리어 고민 끝에 석사를 자퇴하고, 스타트업에서 근무 중이다. 하지만 조만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남자 친구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남은 건 나뿐인데 생각 외로 마음이 쉽사리 떠날 채비를 하지 못한다. 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지식을 배우고 싶어 꿈꿔왔던 미국 유학이고, 4년 동안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남자 친구와 드디어 한 대륙(!)에 있을 수 있는 기회인데 왜 발이 안 떨어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 친구와 미래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어느 날, 내가 '솔직히 내가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라며 말을 흐리자 남자 친구가 내게 무슨 걱정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What about my family?"


이 문장을 내뱉자마자 내가 늘 품고 있었던 고민은 현실이 됐다. 내 가족을 떠나 '네 가족'이 되는 길이 이렇게 슬프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이건 브라질에 가족을 두고 떠나온 남자 친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가족 곁에서 삶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보다, 미국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나의 고민을 완전히 이해시키기 쉽지 않다.


부모님이 아직 연로하시지 않았으니, 나 하나쯤은 어디에 가서 살던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순진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엄마의 흰머리와 아픈 관절이, 한 달 전에 비워졌어야 하는 아빠의 혈압약이, 노후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한숨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뭐든지 알아서 잘하는 첫째 딸의 숙명이란 이런 걸까, 늘 나 하나의 행복이 가족의 안위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나도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는 딸이고 싶은 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잘 안된다. 상대방이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정착할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 이런 고민은 끝이 안 보인다.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 내가 가정을 꾸렸을 나이에 부모님은 어떤 모습이실까? 그때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네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내 가족을 떠나야만 하는 걸까? 결혼을 고민하고, 내 나라를 떠날 고민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가족은 언제나 눈시울을 붉히는 주제다.



4. 내가 평생 외국인과 살 수 있을까?


주제를 크게 써놓고 보니 자칫 인종차별적인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런 맥락은 아니다. 국제연애를 하는 특정 시점에서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상대방이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내가 눈 감는 날까지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하게 될 때는 얘기가 다르다. 평소에는 웃어넘겼던 우리 둘 사이의 문화적 거리, 다른 감정의 이해, 언어의 차이와 유머 코드의 차이가 증폭되고, 내게 수많은 물음표를 남긴다. 내가 정말 이 사람과 평생 살 자신이 있는 거야? 한 나라에서 자고 나란 사람들도 숱하게 헤어지는 세상에 이렇게 다른 사람과 같이 살 수 있을까?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답답해하기만 하면 어쩌지? 문득 두려움이 앞선다. 문득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생각이 나도 언어의 한계로 둘이 같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늘 남는다. 특히나 둘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데에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감성을 평생 동안 함께 이해하고 공유하지 못할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하다.




국제연애의 설렘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설레는 감정을 모두 걷어내고, 지극히 이성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다. 4년이라는 시간도 부족했는지, 그런 현실적인 고민은 아직도 나를 따라다닌다. 이제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고민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더 좋은 것들을 배웠다.


그를 닮아 더 평화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국제연애의 지극히 현실적인 면이 누군가에는 커다란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할 면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이마저도 낭만이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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