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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Aug 11. 2022

이별, 2년 후 지금.

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근 1년 만에 들어와 보았다. 기억 한편에 묻어두다가 생각이 많아지는 조용한 시간에 간혹 생각이 난다, 이 공간은.


쌓여있는 알람에는 아직도 내 글을 좋아해 주시고, 과거의 나에게 말 걸어주시는 분들의 소식이 보인다.


그 아이와 이별했다는 소식을 올린 뒤 꼭 2년이 됐다는 사실에 픽- 웃음이 났다.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내가 글을 쓰고 있던 카페의 자리, 음료, 주변의 소리 등이 생생히 기억나는 오후다. 


2년 간의 공백을 이 글 하나로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지금 뉴욕의 한 공간에 앉아 이 글을 쓴다.


그 아이와 헤어지고 뜻하지 않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다. 그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 사람과 연애한다는 게 그렇게 어색할지 몰랐다. 그는 그 아이와 모든 게 다르다 - 성격도, 외모도, 말투도. 그러나 그는 그 아이의 참을성과 배려심을 닮았다. 오랜 연애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때로 주저하던 나를 그는 묵묵히 기다려줬다. 한국에서 1년 간의 연애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이사를 왔다. 그 아이와는 그렇게 어려웠던 일들이 이 사람과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상한 기분이다. 우리가 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행선 위를 위태롭게 달리던 내 사랑은 이제 넓은 평원을 그와 손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기분이다. 


이 사람이 사는 곳은 뉴욕이지만, 나는 미국 동부의 다른 도시에 살고 있다. 차로 3시간 - 꽤나 멀지만, 세계 반대편의 장거리 연애를 5년 넘게 버텨 본 나로서는 코웃음 칠 거리다. 그는 나를 위해 2주에 한 번 운전해오고, 나도 학기 중 남는 시간에 뉴욕으로 가 그와 시간을 보낸다. 


스물둘, 교환학생 시절 그렇게 생경하기만 했던 뉴욕은 이제 내가 지내는 동네가 됐다. 낯설지도 않고, 화려해 보이지도 않는, 내 동네. 그 사실에도 웃음이 난다. 얼마 전엔, 일하고 있는 로펌의 뉴욕 오피스를 방문하다가, 교환학생 시절 우버로 부른 리무진을 타고 인터뷰 보러 가던 어린 날의 내가 생각났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장에 뾰족구두를 신고 있는 건 같지만, 많은 게 변했다. 그때만큼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이방인도 아니고, 이제는 제법 이 도시에서 알고 지내는 이들이 많아진 탓일까. 


외국인으로 미국에 적응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미국에 첫 발을 디딘 7년 전, 그 아이가 있었기에 미국은 그나마 따뜻했지만, 추운 미국 동부의 겨울은 아직도 내게 외로운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은 다르다. 경험이 쌓이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나는 좋은 이들과 마음 편하게 미국을 누리고 있다. 


내가 다니는 로스쿨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큰 국제 로펌의 여름 인턴을 마치며 졸업 후 변호사로서의 취업도 확정 지었다. 내가 지금의 나라는 사실이 매일 감사한 요즘이다.  


물론 글로 옮기지 않을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집에 혼자 있는 순간마다 눈물이 나서 며칠간 침대에 누워있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작년쯤, 그 애에게 이별 이후 처음으로 문자를 하나 보내봤다. 


"Hey, how is it going?"


그 애를 붙잡을 생각도, 다시 잘해보려는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같은 미국 땅에 있으면서,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너는 어떻게 지내니. 5년 간의 세월을 함께한 이의 삶을 궁금해하는 천진한 질문 같은 거였다.


5분쯤 지나, 다른 사람이 답장을 대신 보내왔다. 혹시 그 사람을 찾는 거냐고. 자신은 1년 전부터 이 번호를 쓰고 있는데, 간혹 그 사람을 찾는 연락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 그렇군요, 고마워요. 짧은 답장을 보냈다.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인연이고, 닿아서는 안 되는 인연인가 보다 하고 가벼이 넘길 수 있는 내 맘이 신기했다. 또 한 번 웃음이 났다. 8년 간 국제 연애를 하다가 이별하신 후, 가정을 꾸리고 중년이 되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는 독자분의 댓글 하나가 생각났다. 그 문자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이었을까. 마지막 글을 쓰던 2년 전의 내게 물어보고 싶다. 2년 후 이게 네 삶이야. 그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고 자유롭고, 자유롭게 사랑하는 삶. 어때? 그때의 나는 고개를 갸웃하겠지. 그 문자를 받고 왜 그렇게 미소가 지어졌는지 내 맘을 모르겠다.




작년 10월에 구독자 분 한 분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이런 기능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신기하고 놀랐다.) 국제 연애를 하며 많은 고민을 하시던 분이었고, 조언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메일의 끝자락에 내게 물으셨다. 


"그래서 지금 이별 후 행복하신가요?"


이 구절을 읽는데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제 막 미국에 정착하려고 하는 그때, 그분이 던진 질문의 여파는 컸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했다. 정확히 뭐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고 그때의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독자님도 후회하지 않는 결정 하셨으면 좋겠다고 썼던 것 같다.


지금 다시 답장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그 아이와의 이별도 어쩌면 나를 지금의 이 순간으로 데려다 놓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이별 그 후가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나, 지금 제가 너무 행복하다면 잠깐 미소 짓고 그걸로 그만인 것 아닐까요 하고. 




이 글을 읽고, 과거의 내가 썼던 글을 읽었던 모든 이들에게, 영화 <V for Vendetta>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 장면을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같은 고민을 하고, 내 글에 위로받는 그 순간을 옆에서 직접 함께 할 수 없어도 늘 응원한다고. 시간이 지나 내 글들을 읽던 그 순간을 픽- 미소 지으며 추억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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