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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의 나라 Mar 23. 2021

송경동 시인과 김진숙 선생님의
화창한 봄날을 응원하며

기록관리와 노동자

  어느 날 신문을 보다 우연히 송경동 시인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이 썼다는 시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읽고 나는 경책 당한 듯 한동안 멍하게 시를 바라만 봤다. 이어 그분의 책 “꿈꾸는 자 잡혀간다”와 그저 뉴스에 나온 정보로서만 접했던 김진숙 선생님이 쓴 “소금꽃나무”도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새벽마다 일어나 책을 읽는데 그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늘 상쾌했던 새벽이 답답하기도 하고 목이 막힌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울기도 하고, “노동자”가 뭔지 검색도 하고, 김진숙 선생님의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는 등 이 두 권의 책을 읽는 시간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다만 “살아있는 글”이 무엇인지, 책 너머 들려오는 누군가의 생생한 외침을 내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책들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내가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서 뭐 좀 안다고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다만 오늘도 어딘가에서 농성을 벌이는, 나의 일터 옆에서도 농성을 벌이는 그들이 낯설지 않다는 것, 농성으로 생기는 각종 불편들이 감수가 된다는 건, 그나마 이 책들로 노동과 노동자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덕분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책, 또 다른 주제로 생각은 전환되었다. 또 다른 책은 그 전 책들의 흔적을 무의식 속으로 사라지게 한다. 전에 읽었던 책들이 의식의 영역으로 다시 들어오는 건 책과 연관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이다. 나에게 다시 김진숙, 송경동을 무의식에서 의식의 세계로 불러들인 건 내 업인 기록관리를 하는 중 물리적 노동이 소요된 때였고 하루에 삼천 보를 걷지 않는 내가 만보를 걸었을 때였다. 


  기록관리 업무에는 육체적 노동을 요하는 일들이 꽤 있다. 부서에 있는 기록을 서고로 이관하거나 서고 기록을 정리하거나 활용성과 보존가치를 상실한 기록을 폐기하는 일까지 기록관리를 하는 연구사는 다양한 물리적 노동을 수행한다. 많은 기관에서 기록관리를 수행하는 인력이 1~2명인 점을 감안하면 물리적 노동은 결코 그들 스스로 하기엔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록연구사라는 명칭에 “연구사”라는 딱지를 떼고 기록노동자로써 1차적인 기록관리 업무를 1년 동안 수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고 다행히 그러한 시간을 아끼고 기록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용역업체 등에 일부 업무를 위탁해 그분들과 함께 기록 관련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다행히 후자의 경우였다. 


  지난겨울, 나는 연구사의 시간을 가진 후 올해 봄 그 기록을 폐기했다. 

  기록을 폐기하기 전 연구사들은 살아있는 기록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 기록은 아직 보존가치가 있는가?” 기록 생산자가 아닌 업무를 승계한 후임자는 이 기록을 다시 볼 필요가 있는가?” “시민들은 이 기록으로 그들의 권리를 지킬만한 내용이 있는가?” “이 기록은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산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생산자와 평가 담당자인 기록연구사들 그리고 또 다른 평가 전문가들의 답을 거쳐 모두 “아니요”라는 답변이 나오면 기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2021년을 알리는 화창한 봄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기록을 용역업체 직원들과 함께 폐기하기로 했다. 약 4만 권, 40톤의 기록이었다. 기록연구사 생활 10여 년 동안 적잖은 용역업체 사람들과 기록물 폐기업무를 진행했다. 그동안 나는 업무의 문제없는 결말만 생각했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폐기만 잘하면 될 일, 큰 문제만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나 이번 업무수행에서 느낀 감정은 달랐다. 업체 직원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물리적 노동에 단련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의뢰자인 나의 요청사항을 정확히 이해했으며 단정하고 신속하고 깔끔했다. 작업 중에 그들은 그들의 가족 이야기, 본인의 이야기를 동료들과 종종 나누며 고된 작업을 웃음으로 승화했다. 관리자의 지시는 명확했고 어린 직원에게도 00 씨라 부를 정도로 서로를 존중했으며 직원들은 관리자의 지시에 스스럼없이 따랐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이 왜 내게 낯설게 느껴졌을까? 아마 그 전 수행한 폐기 용역업체 사람들과의 모습이 비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전 용역업체 직원들은 대부분 처음 만난 사람처럼 어색함이 감돌뿐 그들 간에 견고한 연결은 없었다. 주어진 물량을 빠르게 처리하고 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노동”이라는 단어가 고되다는 것만을 증명해 주듯 편안함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두 업체가 수행한 일의 결과에서는 큰 차이는 없었다. 나의 요구를 업체들은 성실히 수행해줬고 결과는 부족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번 폐기 작업을 함께하며 나의 마음이 의도치 않게 “사람”들로 향하면서 나의 만족과 달리 그들도 만족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루의 일을 온전히 마치고 동료들과 웃으면서 술 한잔 하고 집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하는 여유가 되는가이다. 그리고 내일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가이다. 혹여나 일을 하다가 다쳤을 경우 그들이 치료하는 동안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은 충실히 작동되고 있는가이다.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들을 나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계속 던졌다. 이러한 두서없는 생각들과 함께 내가 느낀 그분들의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답은 업체 과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소속감”

  그 전 업체에 소속된 사람은 위탁된 일용노동자였으나 이번 분들은 해당 업체에 직접 고용된 직원이었던 것이다. 직접 고용된 그들은 일을 마치면 함께 밥을 먹을 친절한 동료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회사도 있는 것이다. 또한 갑작스러운 재난에 그동안 납부했던 4대 보험은 그들을 지켜줄 것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앞에서 힘든 노동이지만 그분들의 마음은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창한 봄날, 2021년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단정했던 그분들과 함께 “아니요”라는 답을 받은, 한때는 소중했던 나의 기록을 폐기했다. 

  그리고 그 시간, 김진숙 선생님과 송경동 시인을 생각했다. 추운 겨울, 실제로는 본 적이 없었던, 실제로 봤다면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보기에도 아찔한 크레인에 올라가 소리치며 울지 말기를, 제 발로 내려오지 못한 동료를 기리며 추모하지 말기를, 나의 기록관리가 시민들에게 공감받고 이해받기를 원하듯이 그들의 요구도 정의 앞에 위로받기를. 

  따뜻한 봄날 나와 함께 충실히 업무를 진행하는 업체 직원들을 보며 두서없는 생각과 함께 김진숙, 송경동의 화창한 봄날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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