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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림 May 15. 2024

저 멀리서 9억이 굴러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첫 아파트 청약당첨기

‘우리 아무래도 사고 친 것 같지?’ 


젊은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버거운 것들 중 하나이다. 결혼 생각이 있는 우리 역시 방심할 순 없었다. 급한 대로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는 방법, 지역 조사들을 시작했다. 월세, 전세, 분양, 재건축 투자 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서울 집값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가격이 높았다. ‘소확행’을 누리며 살겠다는 말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학위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서 선택한 방법은 ‘분양’이었다. 작년 5월을 기점으로 서울 끝자락 아파트와 경기도 광명의 청약 예정일을 확인하고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모집 공고가 뜰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청약을 넣었다. 그렇게 5번째 도전이었을까. 하필(?) 내가 상당히 앞쪽 예비번호를 받았다. 


‘어,,,? 오빠, 이거 되겠는데,,,?’

‘그러게? 준비해야 될 것 같아.’


그 후로 일주일 동안 편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 ‘지금부터 하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연필을 쥐고 자금 조달 계획서를 하나씩 작성해 가는데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인 내가 미래에 베팅해 10억이 넘는 돈을 마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솔직한 심정을 남자친구한테 털어놓고 합의하에 기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도전이 마무리되나 싶었다. 반전이 있기 전까지는.


두둥!


‘나 당첨된 거야? 내가 이렇게 큰 짐을 맡아버리다니!’ 

‘오빠는 할 수 있어! 내년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면 되지~^_^’


이번엔 남자친구 차례였다.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의 어깨가 살짝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그만큼 내 기분은 들뜨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졸업 예정일이 정해져 있는 터라 조금은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볼 수 있었기에 그가 맡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손을 꼭 잡고 분양 사무실에서 동호수를 뽑고, 최고층이 걸렸다며 돈 더 내게 생겼다며 울먹거리다가도 역까지의 거리는 10분 내로 갈 수 있는 동이 걸렸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뒷모습을 보자하니 든든했고 첫 걸음을 내딛었음에 감사한 마음도 컸다.


현재는 옵션 선택은 어떻게 할지,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재테크 계획, 세금 공부 따위의 농도 짙은 대화들로 우리 사이를 채워가고 있다.


매일 밤 산책하며 당첨 기원을 외치며 걸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파트 청약의 모든 과정을 처음으로, 같이 경험했다.늘 그랬듯이 투닥거리며 팍팍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점점 커지며 굴러오는 돈 눈덩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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