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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Oct 04. 2023

여행

가을여행

여름이 끝났다. 사계절 중 가장 선호한 계절이 여름이었는데 23년 여름을 분기점으로 이제 가을과 겨울도 좋아해 보려 한다. 그만큼 이번 여름은 힘든 여름이었다. 이번 가을은 여행과 독서로 채우면서 좀 더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게 다니기 위해 운동시간을 잠시 킵했다. 10월 단양을 시작으로 속초, 울진코스로 목적지설정 후 리조트를 예약했다. 첫 번째 등반은 금수산이다. 금수산은 지난 5월 산행 후 재등반이다. 초봄 산행이 도피와 회피였다면 이번 산행을 단정하긴 힘들지만 최소한 피난처는 아니다고 정의해 본다.


초봄 우중산행 하산 시 길을 놓쳤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생각의 번뇌는 길의 번뇌로 옮아와 고립무원의 두려움 속에 갇히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119 산악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긴급전화 후 몇 분 간은 차단번호가 자동으로 해제된다는 점이다. 스팸이 범람하니 차단된 번호가 쌓여있었는데 이 모든 번호들이 일시에 해제된다는 점이다. 산은 쉽게 길을 내주지 않기에 결국 도움의 손길은 오로지 사람의 손길이다. 보이스피싱이든 대출보험이든 꼴보기 싫은 놈번호이든 그 순간만은 다 해제된다.


그 순간만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야만 도움 손길을 잡을 수 있다. 디지털 정보 속 간직한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었다. 틀 안에 갇히고 벗어나지 못한 우둔함, 맹목적으로 의심하고 경계하는 습성을 버려야만 그 구조의 손길을 잡을 수 있다. 이번 산행은 하산 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려왔다. 이제 회피와 도피처로 산을 찾진 않을 것이다. 단순한 생각을 하며 즐겁게 하산할 것이다. 빽빽한 나무속 날카롭게 우뚝 솟은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 날카로움을 상쇄시키며 길을 내는 부드러운  따라 내려가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아름다워야 한다. 절벽을 뚫고 유유히 흐른 물은 평온한 평지 이치는 드넓은 강으로 결국 도약한다. 틀 안에서 명명백백 분류하고 분노하고 사안을 밝히기 위해 지금의 이 쉼의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 아닌 것을 나는 잘 알기 때문에 분기점에서 쉼을 선택한 것이다. 뜬금없지만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장면에서 김지원의 활짝 웃는 모습 그리고 영화 '노팅힐'엔딩부에 휴그랜트의 프러포즈를 수락한 줄리아 로버츠의 그 활짝 웃는 모습이 내가 도달하여할 하산(下山)의 지안(至安) 아닌가 싶다.

- 2023년 10월 4일 다음의 목적지를 기대하며 단양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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