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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Jul 14. 2019

캐나다의 이웃들 <52>

나를 기쁘게 하는 순간, 기억, 사람들

사진설명 이민생활에 활력을 보태주는 수요골프모임 멤버들. 몇년전 섬에서 모임을 갖기전 한컷.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구겨짐이없긴 하지만 그중에서 몇 가지는 새겨둘 만한 게 있다. 이런 게 모여서 아쉬운 이민생활에 살을 조금 보태는 지지목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1. 평일 오후 6시.

 퇴근시간이다. 아침 7시 30분부터 신나게 달려왔던 마라톤이 이젠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딱히 뭘 하겠다는 건 없는데 어떤 곳에서 해방된다는 느낌. 가게 문을 잠그고 옆집 스타벅스 야외 테이블 옆을 지나갈 때 앉아있는 사람들이 전혀 부러워지지 않는 순간이랄까. 그늘에 앉아서 몇 시간씩 잡담을 나누는 것을 보면 참 할 일 없다는 핀잔을 속으로 주면서도 나도 꼽사리 좀 낄 수는 없을까. 저 골목에 부는 솔바람을 공유할 수 없을까. 뭐 이런 짧은 생각을 뒤로 미룰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여름엔 세탁소의 더위를 참기 힘들다. 모든 장비나 기계는 스팀을 사용하기 때문에 찜통 같다.


2 평일 오후 6시 30분.

 저녁식사 20분 전이다. 손만 간단히 씻고 아일랜드에 앉는다. 불 앞에 있는 와이프랑은 1.5미터 정도. 온도 차이는 많이 난다. 우선 빈속에 소주와 시원한 맥주를 섞어 한잔 쭈욱 들이킨다. 세상 참 좋아 보인다.  술도 배부를 때보다 빈속에, 그것도 힘찬 하루를 마감하고 마시는 게 좋다. 손이 빠른 와이프는 밥 나오기 전에 취할까 봐 손놀림이 더 빨라진다. 이 보조에 맞춰 두 잔째 마신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때부터 잔소리가 조금 나온다. 속도 조절에 들어간다. 한잔을 두 번에 나눠 마신다. 이즈음 저녁이 나온다. 떨어져 있었던 동안에 발생했던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서로 얘기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무시해버릴 사소한 것도 다 끄집어낸다. 나 자신이 좁쌀로 변해가는 순간이다. 좁쌀인지 술과 함께 하면 모르고 지나가버린다.


3. 수요일 오후.

대망의 중간 휴식기. 일주일이 긴 것 같아도 수요일 쯤에 쉼표 한번 찍으면 쏜살같이 지나가버린다. 이날은 친구들과 모여서 가까운 골프장에서 공도 치고 마치면 잡담도 한다. 이때 우리말의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 언어가 약간 부족한 상태서 손님을 맞다가 전혀 막힘없는 우리말로 대화를 하면 딴 세상 같다. 속이 뻥 뚫린다고나 할까. 골프 후 이어지는 식사자리는 더욱 풍성하다. 술 담당 구이 담당 이빨 담당 각각의 임무에 소홀함이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 속도로 취해가고 기분도 업된다. 몸과 마음에 묻었던 티끌이 사라져 가는 순간이다.


4. 월요일 아침.

역설적이지만 이날이 나쁘지 않다. 직장 다니는 아들 딸은 괴로워 하지만 난 그렇지가 않다. 일단 이날은 장사가 잘된다. 주말에 나들이 갔던 사람들이 세탁물을 많이 맡기고 쉬는 날 집 청소한 손님들도 청소 부산물은 결국 세탁으로 이어진다. 장사가 쉬원찮으면 앞이 캄캄해진다. 소득과 지출을 얼쭈 맞혀 놓은 상태인데 인캄이 부족해지면 골치 아픈 일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그걸 해결하는데 머리를 썩혀야 한다. 이걸 감안해서 월요일 장사가 날 실망시키지 않으면 최소한 며칠 정도는 돈걱정이 사라진다. 그래서 몸이 부댈낄정도로 바쁜 월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5. 와이프랑 같이 도시락 먹기.

늘 같이 먹는 사람에게는 별거 아닌 것인데 나의 경우 일주일에 딱 한번 월요일만 같이 점심으로 가게서 도시락을 먹는다. 나머지 요일은 혼자 먹는다. 혼자일 때는 한국 드라마를 틀어놓고 먹는 둥 마눈둥한다. 배고픔을 조금 잊는 수준의 식사. 즐거움은 별로 없다. 게다가 중간중간 손님이 오면 끊긴다. 그러나 와이프랑 점심하면 다르다. 일단 맞있어 보인다. 배고픔을 때 우는 게 아닌 즐거움의 시간이랄까. 손님이 와도 번갈아 나가기 때문에 혼자 보다 끊김이 덜하다. 무엇보다도 대화를 한다는 게 메리트다. 혼자 멍청히 아무 생각 없이 밥만 쳐다보는 것보다 분위기가 부드럽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누군가 합류하면 점심시간이 더 풍성해진다.


6. 새 식구 며느리 맞기.

아들이 간단히 결혼을 하면서 식구가 한 명 늘었다. 어색하지 않게 서로 최선을 다하지만 불편함은 분명 존재 할터인데 나름 제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무엇 보다가 술을 마신다는 게 내겐 예쁘게 보인다. 우리 식구들은 술을 못마시고 안 마신다. 전을 펴고 음주 훈련에 들어가지만 좀체 술과 친해지지가 않는 게 우리 식구들이다. 이런 고독한 분위기에서 독야청청하고 있을 즈음 며늘아기가 술잔을 들고 나타난 셈이다. 젊은 여자애가 무슨 술을 술꾼처럼 마시겠냐마는 시아버지가 애주가고 그 주변인사들이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분위기를 겁나게 빨리 인지하고 그 공백을 메워가고 있는 게 아닐까 본다. 이건 며느리의 한 단면이고 매사 세심한 주의력이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조상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다.


7. 착한 일본인.

우리 가게 손님 중 6명이 일본인이다. 전혀 티 내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극동의 3국 한국 일본 중국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말 없는 일본인은 한국 내지는 중국인으로 곧장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들의 조용함에 대한 사례는 많다. 이들 세나라 손님이 어느 한 식당에 동시에 입장해서 식사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중국인은 식당 문을 열면 그들이 어디에 앉아있는지 알정도의 톤으로 대화하고 한국인의 경우 그 옆을 지나가면 들릴 정도라면 일본인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만 겨우 들릴 정도로 속삭인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몸에 밴 습관 같다. 우리 가게 일본 손님들 또한 경우가 바르다. 사소한 약속도 허투루 어기지 않는다. 사실 세탁소 주인과 손님과의 약속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사람이 태반이다. 게다가 조금 무시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갑질 모드로 나가는 사람도 있고. 일본 사람은 절대 그렇지 않다. 5명은 일본 이름을 그대로 쓰고 한아 주머니는 서양 이름을 사용한다 아마 남편 성을 따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일본인이라는 본성은 유지하는 것 같았다. 이런 일본인들인데 그들이 모여서 만든 일본이라는 나라는 못된 짓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얍삽한 사회에서 어떻게 저런 인성이 싹는지 아이러니하다.이제부터라도 일본인을 미워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사실 적다 보니 이렇게 노출됐을 뿐 생각지도 못하는 순간에 날 즐겁게 해 주는 게 비단 이것뿐이겠느냐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것 보다 눈을 뜨면 할 일이 있다는 사실만 해도 난 복 받은 게 아닐까. 세월을 무심히 까먹는 것보다는 일을 하고 중간중간 쉼표를 찍고 이런 저런사람을 만나 서로의 생각을 전하고 부대끼면서 산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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