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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디허니 Jan 03. 2018

내가 음악을 선택하게 된 이유

새해를 맞아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던 아이였던 나는, 중학교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 어머니의 권유를 통해 당시 비교적 경쟁률이 높았던 외국어 고등학교의 입학시험을 보게 되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당시의 외국어 고등학교는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설립 취지에 온전히 부합하기보다는, SKY라고 불리는 국내 상위권 대학과 해외 유명 대학에 가급적 많은 학생들을 진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또한 그런 목표와 꿈을 가진 학생들이 시험을 통해 입학하는 곳이기도 했다.


 한 반의 학생이 40명이었던 때에 시험을 치면 보통 10등 정도를 하였으니, 그렇게 공부를 뛰어나게 잘 한 것도 아니긴 했다. 그때 같은 중학교에서 함께 입학시험을 치러 갔던 13명의 학생 중 나보다 전교 석차가 낮았던 친구는 2명 정도밖에 없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운 좋게도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4명 중 한 명이 내가 되었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합격 통지를 받아보신 뒤에,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게 되는 시나리오를 이미 머릿속에 그리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나는 공부에 큰 뜻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는 오락실에 가서 리듬게임을 하는 데에 용돈을 다 쓰고, 그것도 모자라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리듬게임을 접하게 된 뒤로는 직접 그 프로그램에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에 제대로 된 개념도 모른 채 미디(MIDI) 편집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하여 이것저것 만져보는 게 그때까지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내가 졸업한 뒤에는 교장이 되신 무서운 인상의 수학선생님께서 수업 도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도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너희들의 진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볼 나이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잠시 수업에서 벗어나, 머릿속으로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를 하여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점수에 맞춰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면 기다리는 것은 직장생활일 터였다. 내가 보아왔던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곧 부모님의 모습이었고, 그것은 곧 상하 체계가 갖춰진 조직, 반복되는 업무, 그리고 월급날만을 기다리는 생활이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왜인지 그때는 그러한 미래가 전혀 내키지 않았다.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해 본 끝에, 나는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일, 책을 읽는 일, 컴퓨터 게임 등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당시의 내가 지금처럼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얼마 후 찾아왔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학교에 머무는 일과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이어졌기 때문에, 평일에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해가 지고 나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의무적인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던 토요일 오후가 일주일 중 유일하게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창문을 통해 기울어가는 태양의 햇볕이 따스하게 감싸 오는 느낌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에, 평소처럼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휴대용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영화 '타이타닉'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따뜻한 햇볕과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셀린 디온의 노래,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겹쳐지면서 이상하게도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던 그때 '음악이라는 건 정말 신기하게도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 순간,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느낌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 뒤로 며칠 동안은, 매일같이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와서는 이미 주무실 시간이 지난 부모님을 붙잡아두고 앉아 음악을 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물론 처음 말씀을 드렸던 날, 부모님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는 곧 내 뜻을 존중해 주셨고, 이후 어머니가 주변을 수소문하여 지인의 따님이었던 나의 첫 음악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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