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 알레 봉골레
-다시 쓰는 사랑이야기 06
취향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육수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은 조개국물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기도 하고. 해감이 다 된 조개를 사 두었다가 요리하기 전에 한 시간 정도 물에 담가두었다가 쓰면 된다. 마늘편과 청양고추 하나쯤 썰어넣고 물을 부어 끓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조개가 입을 벌리면 불을 꺼야 한다.
조개를 따로 건져 내고 국물은 채에 받쳐 따라 둔다. 조개는 아무리 해감을 해도 모래알갱이 같은 것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 둔 조개국물을 다시 끓인다. 끓으면 잘 씻어 둔 콩나물을 넣고 2분 정도만 끓여준다. 불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조금 더 끓여도 상관은 없다. 당장 먹을 것이라면. 2분 정도만 끓이라는 건 차가울 때 먹기 위해서다. 조개국은 차가울 때 아주 맛있는데 하루나 이틀이 지나도 콩나물의 아삭아학한 맛과 잘 어울린다. 특히나 그 전날 술을 마셨다면 해장국으로도 기가 차다.
해물은 그게 무엇이든 육류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금방 익기 때문이다. 고등어조림 같은 것은 조금 오래 끓여야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잠깐이다.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더욱이 조갯살은 오래 익히면 질겨서 맛도 없을 뿐 아니라 너무 쪼그라들어서 먹을 게 없다.
특히 조개국을 끓일 때는 굳이 간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개가 소금물을 상당히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조개국물에 콩나물을 넣고 다시 끓였는데 싱겁다면 새우젓이나 멸치액젓으로 간하는 게 좋다.
스파게티 알레 봉골레spaghetti alle vongole를 만들 때는 맛의 개념이 조금 다르다. 봉골레는 조개clam라는 뜻의 이탈리아 말이다.
파스타는 대개 칠 분 정도 삶는 것이라 물을 안치고 십 분은 걸린다. 다른 준비물은 당연히 조개와 올리브유, 편으로 썬 마늘, 페페론치노(또는 청양고추), 다진 이탈리안 파슬리, 아주 드라이한 화이트와인이 필요하다.
쉐프들에 따라서 프라이팬 선택이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스테인이나 무쇠 프라이팬을 쓴다. 팬을 먼저 달구고, 올리브유를 듬뿍 붓고 거기에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부셔 넣는다. 이때는 약한 불(또는 중불)을 쓰는 게 좋은데 마늘향과 매운맛이 올리브오일에 스며들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어가며 조금 기다리면 마늘이 황금색에서 갈색으로 변한다. 익숙해지면 갈색으로 변하기 전의 순간을 알아챌 수 있는데, 그 시점에 이탈리안 파슬리를 넣고 준비해 둔 조개도 넣어서 쉑쉑해준다. 그러고 일이 분 정도 뚜껑을 덮어 둔다. 조개가 입을 벌리면 다 익은 것이다. 거기에 삶은 파스타를 넣고 다시 쉑쉑하면서 조리듯이 볶는데, 면수를 두세 국자 정도 부어 주어야 한다. 면수가 올리브유와 파스타를 결합시킬 수 있도록.
여기에서, 이탈리안 파스타를 아주 많다 싶을 만큼 넣어주고 버터를 조금, 레몬즙을 조금 넣어주면 풍미가 꽤 달라진다. 기본형에 대한 약간의 변형이다. 어떤 것이든 자주 하다 보면 조금 지루해질 수 있다. 그럴 때 작은 변화를 주면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언젠가 강의하다가 봉골레 스파게티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적이 있다. 그날따라 중년의 여자 분들이 자꾸만 키득거렸다.
“저는 갈수록 조개가 좋아요.”
그 말에 한두 사람이 터졌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성격이 활달한 사람이 말했다.
“선생님이 자꾸만 조개, 조개 하시다가 갈수록 조개가 좋아, 하시니까 그러는 거예요.”
“...... 그게 왜......?”
“아시잖아요. 조개가 무슨 뜻인지......”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지금 그 뜻으로 들었다고? 나는 모르는 척하고 말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와 찾아보았다. 한국에서만 그런 뜻으로 쓰는 건가? 아니었다. 속어의 의미로는 대부분 비슷했다. 이탈리아어 봉골레Vongole도 여성명사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요리 과정은 섹스의 은유로 쓸 수 있다. 장보기에서 준비하는 과정, 뜨거운 불과 시간, 맛있게 먹는 클라이맥스까지. 함께 식사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의미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