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세 분의 귀한 손님이 다녀갔어요. 남자 두 분, 여자 한 분. 점심때쯤에 와서 밤 열시 넘어서 돌아갔어요.
점심은 참나물국수를 말아 내었어요. 육전을 곁들었고요. 참나물 두 단을 했는데 싹싹 긁어드셨어요. 무슨 참나물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냐며. ^^ 함께 차려낸 땅콩조림과 표고버섯 조림도 역시.
손님들은 포도주를 한 박스 가지고 오셨어요. 저는 그걸 다 마시고 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처리할 테니까 부엌 바닥에 내려놓으시라고 했죠.
안주로 고추잡채를 만들었어요. 저도 오랜만에 한 병쯤 마셨어요. 글차나도 마음 아픈데 잘 되었지 뭐예요. 울고 싶은데 뺨을 맞는 기찬 타이밍.
해 저물녘에 산책을 나섰어요. 손님들은 가는 길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끽연자들이었군요. 담배 피우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었나 봐요. 한강 둑을 걷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일기예보에는 아홉 시라고 했는데, 그때 겨우 여섯 시였어요.
황급히 집 쪽으로 돌아섰어요. 중간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서 비 피하게 하고는 저 혼자 집으로 뛰었어요. 차를 가지고 돌아와 태우니 비가 많이 긏었더군요. 괜히 뛰어다녔나 봐요.
집에 들어와서 저녁식사로는 뭐가 좋겠느냐고 물었어요. 봉골레 스파게티래요. 참 희한한 일이에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봉골레 스파게티를 외쳐요.
요즘은 동죽조개가 아주 맛있는 철이에요. 적당히 잘 삶기만 하면 국물 맛도 기가 차지만 조갯살 맛도 아주 달아요.
스파게티 면이 맛있으려면 ‘소금 간을 적절하게 한 물에 적당한 시간 동안 삶기’가 중요하고, 마늘 편과 페페론치노를 적당히 넣어 향을 낸 ‘좋은 올리브유’에 잘 볶아야 해요. 그게 전부는 아니죠. 조개 맛이 배여야 하니까요. 조개국물과 올리브유가 따로 놀지 않게 볶아내야 해요. 그 사이사이에 파슬리와 바질을 적당히 넣어야 하고요.
다들 처음에는 ‘조금만’ 먹겠다고들 하더니 ‘많이들’ 먹었어요. 세 번쯤 리필했을 거예요. 하나같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기찬 맛’이 나냐며 물어요. 집에 가서 식구들에게 만들어주고 싶다면서.
글쎄요, 제가 판단하기에 요리 레시피의 핵심 키워드는 ‘적당한 양’이에요. 예를 들어, 조갯살이 맛있을 정도로, 국물은 감칠맛 날 정도로 삶으려면 몇 분이면 적당하냐고 묻는 분이 있어요. 그게 정해진 게 있을 수 없어요. 불의 세기가 다 다르고, 조개 양도 정확하게 같을 수가 없잖아요, 차가운 정도도 다르고, 어떤 냄비로 끓이느냐에 따라서도 조금 달라요. 감각으로 익힐 수밖에 없어요. 그날도 그런 설명을 했어요. 설명이 안 된다고 설명한 거죠.
결국 병아리 감별사 이야기까지 나왔어요. 감별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안 되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그런데 베테랑 감별사들의 감별 확률은 무척 높아요. 과학자들이 덤벼 보았지만 소용없었어요. 참 희한한 일이죠. 극미한 세계의 양자도 ‘알면서’ 병아리 감별은 '모르겠다'니까요.
제가 느끼기에는 요리도 좀 그래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만든 과정을 보면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어떤 건 맛있고, 어떤 건 맛이 없을까요? 글쎄요.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얽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불확실성을 믿어야 하는 거죠. 확실한 것이 있을 수도 없잖아요.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요소는 생각보다 아주 많아요. 요소 하나하나가 그때그때 다 다른 것이기도 하고요. 주재료도 그렇지만 양념들, 그러니까 소금이나 간장, 고추장, 들기름, 참기름, 올리브유...... 불, 기름, 시간, 내 입맛까지도. 이름은 같지만 사실은 언제나 다 다른 것들이에요. 감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