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고전이 싫었다. 꼰대들이 좋을 대로 정한 필독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싫은 것은 꼭 읽어야 한다는 강제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좋으면 당신들께서나 읽으셔요.’ 그런 마음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대단한 자유인이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3살 때부터 아침밥을 먹고 나면 하루 종일 시내 구석구석을 휩쓸고 다녔다. 어두워지면 알아서 집에 들어오기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뒀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3살짜리가 혼자 싸돌아다니게 내버려 두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변소 이야기를 했다.
‘너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더니 혼자서 변소에 가더라. 다들 질겁을 했지. 발을 벌리다가 실수라도 하면 똥통에 빠질 테니까.’
그때 변소는 다 그랬다. 아래는 똥통, 그 위에 쪼그려 앉아 일을 봤다. 어린애가 빠지면 죽을지도 모른다. 똥통 구멍은 네모였는데 너비도 만만치 않았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는.
‘너는 아무도 따라 가지 못 하게 했어. 울고 불고 난리 블루스. 변소 안 가고 배 아파 죽겠다고 협박도 했어.’
‘그 이야기는 왜 갑자기 하셔요?’
‘그러니 네가 아침 먹고 나가는 걸 무슨 수로 말려? 누가 어떻게 따라가?’
그렇겠다. 그건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네 형제 가운데 왜 나만 유치원에 안 보냈어요?’
‘너는 다섯 살쯤 되니까 한글도 다 깨치고 무협소설을 읽고 있던데 유치원에 가라고 하면 잘도 갔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투였다.
‘무슨 수로 혼자서 한글을 깨치고 무협소설을 읽었다는 겁니까?’
‘너는 세 살때부터 만화방에서 살았잖아.’
몇 살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화방에서 살았던 건 맞다. 무협소설은 집에도 가져와 밤새워 읽었다. 그런데 가만,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내가 만화방에 간 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돌아가신 지 오래라 여쭤볼 수도 없다.
나는 만화나 무협지가 대단히 재미있었다. 대충 여섯 살까지. 그러다가 화투판에 뛰어들었다. 아마 일곱 살쯤에. 당시 만화방에는 신간이 많지 않았다. 내가 읽어내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어느 날 아무리 찾아도 보지 않은 책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뒷방에서 벌어진 화투판을 구경했다. 어떻게 하는 건지 조금씩 알게 되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 끼어들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는 금방 배웠고 집중력을 훈련시켰다. 판이 진행되는 동안 깔린 것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패를 짐작하고 남은 것들이 무엇인지 추리해 나갔다. 기억력도 최대한 끌어올려야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후의 깨달음이었다. 내 패가 ‘낮다’고 해도 상대방보다 ‘높으면’ 이긴다. 블러핑을 시작했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의 블러핑을 가늠했다. 그것은 상대방과 소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내 표현에 대한 너의 해석은 뭐냐는 질문이었으니까.
모든 거짓말에 진실의 흔적이 담겨 있듯 블러핑도 마찬가지다. 뜻밖의 질문으로 그의 말을 들으며 그의 패를 추리해 내기도 했다.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으며,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는 몸동작과 미세한 손놀림에 더해진 떨림의 정도에 담긴 메시지를 읽었다. 관찰력과 기억력, 집중력을 통해 대개는 정확하게 추리해 내었다. 그러나 그런 ‘읽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초고수도 있었다.
아마 일 년 정도 그 판에서 단련되었을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통해 희노애락의 지름길을 건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발을 끊었다. 책을 멀리 한 시간이 길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이상한 것은 그 이후 만화방 책들이 시시해졌다.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