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 Nov 04. 2024

박경리의 <토지>: 김거복(김두수)

소설 속 인물 분석

소설 속에는 끝까지 변하지 않는 악역이 등장한다. 최근 완독한 박경리의 <토지> 속에서 최대의 빌런을 꼽으라면 조준구와 김두수 중 누구를 첫 번째로 고를지 고민이지만 악행의 수준과 스케일로 보면 단연 김두수다. 



김거복(김두수)의 생애


그의 본명은 김두수로 최참판댁이 있는 하동 평산리의 몰락한 양반 김평산의 장남이다. 아직은 신분 차별이 있던 시대라 김평산은 과거 양반이었다는 사실로 거들먹거릴 뿐 아니라 성질도 고약했다. 이런 아버지를 닮아 김거복은 어릴 때부터 손버릇이 나쁘고 거칠고 포악했다. 반면 중인 출신의 어머니 함안댁은 곧고 바른 성격으로 이런 거복의 행실을 크게 나무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의 삯바느질과 길쌈 등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이들에게 큰 불행이 닥친 것은 김평산이 최참판댁의 수장인 최치수 살해사건에 주모자 격으로 밝혀지고 처형당하고부터였다. 함안댁은 그 충격에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하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남겨진 김거복과 그의 동생 김한복에게도 싸늘했다.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함안댁의 장례를 치른 후 거복은 소나무에 머리를 찧으며 피를 흘리고 울며 울분을 토한다. 그 후 두 형제는 평사리를 떠나 외가로 간다. 



거복과 한복, 두 형제의 인생은 이때부터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한복은 고향이 그리워 평사리로 다시 돌아와 어려운 시간을 견디며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하며 잘 살아가는 모습이 <토지>에서 그려진다. 반면, 거복은 자신의 약점인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지우기 위해서 조선을 떠나 만주 용정에 간다. 그리고 조선인의 반대편에 서서 '김두수'라는 이름으로 조선인을 잡는 밀정이 되어 순사부장의 자리에 까지 오른다.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을 잡아가는 것은 당연하고 여성 편력으로 어머니, 함안댁을 닮은 심금녀를 사랑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자 강제로 데리고 와 고문하여 자살하게 만들기도 한다. 배운 것은 없지만 두뇌 회전이 빠른 김두수는 사람의 약점을 간파하고 이용하여 모든 수단을 써서 목적을 달성하는 치밀함도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돈과 자신이 생각하는 명예만 추구해 온 김두수가 약해지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동생인 김한복.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동생을 만나게 되자 악행으로 모은 재산으로 조선에 있는 가난한 동생을 도우며 인생의 낙을 느낀다. 그러던 중 나이도 들고 일제에게 이용가치가 떨어져 자신의 처지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 김두수는 조선으로 돌아와 서울에 정착한다. 심금녀 이후로 집착하게 된 송인숙과 강제로 혼인을 하고 자녀도 두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불행하다. 송인숙도 김두수에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김두수 역시 아내와 자식들을 믿지 못한다. 그가 믿는 유일한 사람은 동생, 한복뿐이다. 



김두수의 심리분석: 껍데기의 삶


- 애정결핍: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주는 방법을 모름: 여성편력, 한복에 대한 태도, 결국엔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함.

- 내면의 두려움, 겁이 많음: 오히려 겉으로 과격하고 거칠고 폭력적인 행동과 말로 위장하려고 함.

- 시기심: 잘난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도 엿보임. 본인은 추한 외모, 몰락 양반, 살인자의 아들, 배운 것 없음에 대한 자격지심이 강함

- 자존감은 없고 자존심은 셈: 수치심, 모멸감 덩어리

- 잘한 건 내 덕, 못한 건 네 탓


조선으로 돌아온 형의 신변을 걱정하는 한복에게 오히려 역정 내는 김두수는 일본은 절대 패망하지 않으며 만일 그럴 경우엔 조선인들을 모조리 저승길에 앞세우고 갈 거라고 말한다. 다음은 한복과 김두수의 대화 중 일부이다. 


"형은 조선 사람 아닌 것 같소."
"내가 어째서 조선 사람이야! 나는 벌써 옛날 옛적에 조선 사람은 사양했다. 내가 이놈의 땅에서 받은 게 뭐야? 천대와 학대, 배고픔뿐이었다. 그 서러운 세월을 내가 잊어? 못 잊는다! 내 마음속에는 저주와 미움밖에 없어! 너는 어릴 적 일을 잊었나? 병신 같은 놈아! 너는 어릴 적 일을 다 잊었다 그 말가!"
울부짖는 짐승과도 같은 모습이다.
"그건 억지소리요. 우리가 천대받으며 살아온 것이 어디 나라 탓이오? 아버지 죄업 탓이지."

마로니에북스, <토지> 20권 중 193쪽


살아가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좋을 때는 내 편, 싫으면 네 편' 혹은 '잘하면 내 덕, 못한 건 네 탓'을 많이 한다. 김두수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자기 민족과 나라를 혐오하게 된 경우이지만 이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부족한 탓이다. 살아가면서 항상 성공하는 곧은길,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환경 탓을 하며 혐오한다면 실리적으로 따져도 내게 남는 것은 없다. 오히려 욕하고 증오하느라 중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고 어떤 대상에 복수를 했다고 쳐도 내게 무엇이 돌아오겠는가? 남는 것은 허무함 뿐일 것이다. 


우리는 범죄자들이 자기변호를 하며 '불우한 환경'때문이라며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모두 '복된 환경'덕분에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박경리의 <토지> 속에서 완전히 같은 환경이었던 형제, 김거복과 김한복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라를 탓하며 같은 민족을 팔아먹으며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려 했던 형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준 아우의 삶은 극명하게 달랐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현실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감내할 것은 감내하고 이겨나가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진심을 다해서 노력하면 된다. 지금 당장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조금씩 내 정성과 나와 세상을 향한 사랑이 쌓이게 마련이다. 김거복은 재산을 모았어도 늘 불안하고 불행했고 곁에 아무도 없었고 김한복은 가난했어도 아내와 자식들과 행복했으며 늘 곁에 이웃들이 함께였고 결국은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다음 편 예고: 동생 김한복 인물 분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