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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Nov 29. 2024

언제 이렇게 컸지

수림이는 10개월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자랐나. 매일매일 보는데 언제 자라는지 모르는 건 정말 이상하고 신비한 일이다. 누구보다 먼저 아기의 변화를 알아차리지만, 아기가 언제 어떻게 자라는지 가장 모르는 사람이기도 한다. 일주일이나 열흘마다 오는 수림이의 할머니는 늘 새로운 눈을 하고 수림이가 언제 이만큼 컸냐며 감탄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본 수림이의 모습이라 그녀의 호들갑에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아기의 팔다리가 길어진 걸 알아챌 때나 밥을 먹다 ‘밥’이라는 나의 말에 따라서 ‘밥’이라고 말하거나, 책장을 잡고 서서 자기 키보다 높은 곳에 손을 뻗어 인형을 집을 때는 놀란 눈이 된다. 언제 이렇게 컸지. 수림이를 꽉 안고서는 묻는다. 언제 이렇게 컸어. 순간순간이 답이겠지. 순간순간 크고 자라고 있다. 알아차리는 건 언제나 뒤늦은 일이고, 그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첫눈은 하루아침에 펑펑 쌓인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냈다. 오전에 수림이와 진하게 시간을 보내고, 정오 즈음 낮잠을 재웠다. 그동안 달래와 산책, 집안일을 조금 하고, 밥을 먹고도 수림이가 깨지 않아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달래와 수림이는 자고, 집안은 고요하고, 바깥은 햇살에 살짝 녹은 지붕이 보이지만 여전히 눈이 덮인 풍경이었고, 살짝 눈이 나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 혼자였다면 눈이 내린 밤이나 새벽의 풍경을 직접 봤을 수도 있었겠지. 이제는 밤에는 고단한 몸을 누이기 바쁘고, 조금이라도 잠을 자려고 애를 쓴다. 밤과 고요, 새벽과 정적은 나의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한낮으로 시간이 옮겨졌다. 수림이가 자는 시간. 이것도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아주 잠깐이지만 멍 때릴 시간과 나를 위한 시간이 있는 것이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수림이가 자는 시간을 틈타 쓴다.


푹 자고 일어난 수림이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나갈 준비를 했다. 3월에 다닐 어린이집에 미리 방문하러 가는 날. 주석도 잠깐 회사에서 시간을 내어 온 가족이 오후 4시에 출발했다. 차로 5분 정도의 거리. 아기들이 하원하는 시간이라 보호자의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수림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둘러보고, 선생님의 소개를 들었다. 수림이는 내년 1월에 1살이 되지만, 3월에 입소하고도 0세 반이라고 하였다. 아이마다 자신의 그림이 부여되는 게 귀여웠다. 각종 꽃과 나무와 솔방울 같은 그림들. 한글을 읽기 전인 아기들은 자신의 그림으로 자기 신발을 놓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타인과의 생활에서 나의 자리를 찾고, 다른 사람의 자리를 인정하는 걸 먼저 배운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은 한 달에서 한 달 반으로 서서히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을 늘린다고 하였다. 간식과 점심밥도 챙겨준다고 하니 밥을 덜 하게 되어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주석은 이 조그만 아기가 어린이집에 간다니 약간 속상해했지만, 나는 솔직히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함께 아기를 양육하는 양육자가 늘어나고,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놀이를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으니. 나의 시간도 확보되니 그 시간 동안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일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을 테니 생각만으로도 숨이 트이는 기분이다. 앞으로 어린이집 입소까지 3개월. 엄마랑 꼭 붙어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수림이랑 더 진하게 시간을 보내야지. 이후에는 나보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더 빨리 아기의 변화를 알아차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배워오는 말이나 행동에 깜짝깜짝 놀라겠지.


이제 곧 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수림이가 태어난 1월이 다가오고 있다. 가장 싫어했던 계절이 가장 기다리는 계절이 되었다니. 다가오는 12월엔 돌잔치 준비를 해야지. 수림의 첫 생일. 호들갑스러워하고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나이지만, 수림이의 첫 생일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축하해주고 싶다. 나중에 꼭 알려줘야지. 너의 탄생과 첫 생일을 축하해 주는 어른들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네가 자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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