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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dam Jul 16. 2018

#9 우붓 스쿠터 여행

고아가자, 뜨그눙안 폭포, 뜨레갈랑 계단식 논

오늘은 숙소에서 스쿠터를 빌려서 우붓 근교에 있는 관광지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기 친구 스쿠터를 빌려준다고 해서 흔쾌히 빌렸다. 하루 대여에 70000 IDR을 줬는데 스쿠터는 상태도 좋았고 헬멧과 보험까지 챙겨줬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저렴한 곳은 하루에 50000 IDR 정도도 하는 것 같았지만, 너무 저렴할 경우 스쿠터 타이어가 마모되어 있거나 브레이크가 잘 안 드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안전을 위해서는 돈 조금 더 주더라도 좋은 스쿠터를 빌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난 전에 1년가량 등교용으로 스쿠터를 몰고 다닌 경험이 있긴 했지만, 발리는 차선이 반대여서 처음엔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붓은 교통량도 많지 않고 차선도 적어서 그냥 다른 스쿠터들을 따라서 천천히 다니니 생각만큼 헷갈리지는 않았다. 발리는 기본적으로 걷지 않는 곳이라, 현지인들은 어딜 가던 스쿠터를 타고 다니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죄 다 외국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걸어가다 보면 30초에 한번 꼴로 "Transport? Taxi?"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스쿠터를 타고 가니 더더욱 현지인에 한걸음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아 가자(Goa Gajah)

첫 번째 목적지는 코끼리 동굴이라는 뜻의 고아 가자 사원이었다. 코끼리 형상의 힌두교 신인 가네샤를 모시는 사원이라고 한다. 여행 책자에서 동굴 입구 사진을 보는 순간 여기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스쿠터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어서 구글맵으로 길을 대충 확인하고는 출발했다. 다행히 우붓은 길이 몇 개 없어서 길 찾기가 굉장히 쉬웠고, 외우기도 쉬웠다. 갈림길도 별로 없고, 잘못 들어설 길이 없어서 헤맬일이 없다고 해야 되려나. 


한참을 스쿠터를 타고 달렸는데, 고아 가자 팻말이 보이지 않자 조금 불안해졌다. 사실 발리에서 스쿠터를 몰려면 면허가 따로 있어야 하는데, 다들 면허 없이 모는 분위기지만 경찰한테 걸리면 벌금(혹은 뒷돈)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자꾸 멈춰 서서 구글맵을 확인하면 경찰과 만날 확률이 커질까 봐 최대한 길을 외우고 출발했는데, 고아 가자 팻말이 보이지 않아서 경찰이 있나 확인한 후 스쿠터를 조심스럽게 세우고 지도를 확인했다. 그런데 웬걸. 휴대폰 GPS상 현재 내 위치는 정확히 딱 고아 가자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바로 옆에 주차장 입구 같은 게 있었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고아 가자에 도착하였다.


입구 앞에 상점들이 즐비한데, 사원에 들어가려면 사롱이 있어야 한다며 사롱을 판매하고 있다. 엄청 저렴한 값에 판매하고는 있으나, 사원에서 무료로 대여해 주므로 굳이 살 필요는 없다. 사원 입구에서 사롱을 빌려서 입장했다. 사원 전체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면 고대 목욕탕이 있는데, 오랫동안 묻혀있다가 1950년대에 와서야 발굴되었다고 한다. 엄청나게 오래전에 지어진 목욕탕일 텐데, 온천수를 끌어왔다고 하며, 섬세한 여신상이 들고 있는 항아리에서 물이 나오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정화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고아 가자의 하이라이트, 동굴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책자에서 본 것보다 실제로 보나 더 멋있었다. 괴물이 입을 벌린 모양인데, 주변의 열대 나무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에 들어가는 길은 매우 어두컴컴한데, 조명이 별로 잘 되어 있지는 않아서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면 여러 힌두교 신 상들과 남근상이 있다. 발리 여기저기에서 남근상이나 조각 등이 많은데, 남근 숭배 사상이 있는 모양이다.


동굴을 다 보고 옆의 사원 쪽으로 가면 숲길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숲길이 너무 멋있었다. 작은 폭포와 그 밑에 일부 조각이 되어 있는 이끼가 잔뜩 낀 바위들이 있었는데, 판타지 게임 속 세상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신비로웠다. 분명 판타지 게임 디자이너들은 발리에 다녀갔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아 가자 입구의 고대 목욕탕
고아 가자
불교 사원이라고 쓰인 팻말을 따라 내려가면 멋진 숲길이 나온다
외계 행성 유물같이 보이던 조각된 바위들
나무 뿌리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숲속의 작은 폭포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열대 느낌이 물씬한 작은 연못도 있다


Warung Balifornia

그다음 목적지는 쭉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뜨그눙안 폭포였다. 고아 가자에서 뜨그눙안 폭포를 가는 길은 한적한 시골길이여서 스쿠터 몰고 달리기에 너무 좋았다. 차도 거의 없었고, 푸른 하늘에 양 옆에 아름다운 논밭이 펼쳐지다가 작은 마을들이 하나씩 나오고, 작은 사원들도 계속 나왔다. 풍경을 즐기며 쭉 달리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졌는데, 아무리 달려도 식당이 보이지 않아서 열심히 찾다가 Warung Balifornia라는 식당이 나와서 들어가서 스프링롤과 사테를 먹었다. 손님이 나 밖에 없었는데, 내가 들어오니까 서둘러 영업 준비를 하고 음악도 켜주고 하는 것 같았다. 가족이 운영하는 듯 한 식당이었는데, 분위기도 좋고 맛도 있고 친절하고 음악도 좋았다. 특히 사테는 발리 와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다! (그래서 폭포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번 더 갔다)


뜨구눙안 폭포(Tegenungan Waterfall)

구글 지도 상에서 뜨구눙안 폭포까지 길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일단 가장 근처에 있는 길까지 가보기로 하고 스쿠터를 몰았다. 경치를 구경하며 천천히 가고 있는데, 내 앞으로 금발머리 서양 언니 두 명이 스쿠터를 타고 추월해서 지나갔다. 아 저거다! 발리에서 관광지를 찾기 힘들 때는 외국인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나도 속도를 높여서 그들을 따라갔다. 따라서 달리다 보니 역시 뜨구눙안 폭포 표지판이 나왔다. 스쿠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입장료를 내고 폭포 쪽으로 내려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멀리에 뜨구눙안 폭포가 보인다. 너무 멋있어서 감탄사가 절로 났다. 열대 우림 속의 커다란 폭포는 정말 그 어떤 형용사로도 묘사하기 힘들 정도로 멋있었다. 원래 자연경관 중에 폭포를 좋아하는 폭포 매니아인데, 최근에 봤던 폭포 중에 최고였다!


폭포까지 가까이 가려면 계단을 상당히 많이 내려가야 해서 가까이 안 가는 분들도 있던데, 꼭 가까이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가까이 가서 보면 더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한 폭포수를 즐길 수 있다. 나는 걸어 내려가서 폭포 앞까지 갔다가 거기서 추가 입장료를 내고 폭포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다시 입구까지 걸어 올라왔는데도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많은 서양인 관광객들이 폭포에 뛰어들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폭포 근처에는 인스타용 포토스팟과 그네 등이 있었다. 폭포 앞에서 폭포 위로 올라가려면 또 따로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폭포 위의 경치도 보고 싶어서 입장료를 내고 올라갔다 왔다.

입구쪽에서 본 뜨구눙안 폭포
내려가는 길에 미니 뜨구눙안 폭포도 있다
뜨구눙안 폭포
수영하는 관광객들
폭포 반대편의 경치도 멋있었다
저 위에 보이는 건물이 입구이다
폭포 위의 풍경
위에서 바라본 뜨구눙안 폭포. 아찔하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찍은 폭포의 옆모습
계단을 꽤나 많이 걸어야 한다.
다시 봐도 너무 멋있는 뜨구눙안 폭포


폭포를 다 보고 나니 하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려서 소화가 다 되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아까 갔던 Warung Balifornia를 다시 갔다. 식당 주인한테 아까 폭포 보러 갈 거라고 길 물어봤었는데, 2시간 만에 다시 돌아오니 날 알아보고 폭포는 잘 구경했냐며 반겨줬다. 난 운동했으니까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며 스테이크를 시켜먹었다. 이 집은 스테이크보다는 사테가 더 맛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가격(만원도 안 했다)이라면 너무 만족스러웠다.


발리의 식당들은 물속에서 자라는 식물을 키우는 화단이 많이 있는데, 이 식당에도 그런 화단이 있었다. 앉아서 서 밥 먹는 동안에 동네 개가 두 마리나 차례로 들어와서 물을 마시고 나갔다. 우붓에서도 가게 화단/어항(?)에서 물 마시는 개를 많이 봤었는데, 절대 쫓아내거나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둔다. 그래서 동네 개들이 항상 단골로 오는 식수대(?)들이 있는 것 같다. 여기도 그런 집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물 마시러 온 까만 개
만원도 안 하는 스테이크
물 마시러 온 누런 개
스쿠터로 달리기에 환상적이었던 길
스쿠터로 달리다 보면 옆에 논밭도 오리도 나온다.


뜨갈라랑 계단식 논(Tegallalang Rice Terrace)

사실 우붓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미지는 계단식 논이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실망했다는 글이 많았고, 한국 다랑이논이나 비슷하고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달리 다른 일정이 없었으므로 스쿠터 빌린 김에 뜨갈라랑 계단식 논까지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뜨갈라랑 계단식 논은 우붓 북쪽으로 꽤 올라가야 있었는데, 나는 우붓 남쪽까지 내려왔으므로 1시간 넘게 타고 올라가야 되었다.


뜨갈라랑 계단식 논 가는 길은 폭포까지 왔던 길보다 훨씬 안 좋았다. 멋진 경치도 없었고, 차가 줄지어 계속 다녀서 매연도 심한데 길 포장 상태도 안 좋았다. 양 옆에는 그저 가게들만 즐비하게 있었는데, 가는 길이 멋지지 않아서 그런지 가도 가도 목적지가 나오지를 않았다. 중간에 몇 번 멈춰서 구글 맵을 확인 했는데, 볼 때마다 목적지까지 너무 많이 남아서 놀랐다. 게다가 파란 하늘 밑에 펼쳐진 논 사진을 찍고 싶어서, 스쿠터 대여도 화창한 날이 될 때까지 기다렸는데,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구름이 많아지더니 곧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이 되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 사진 한방은 찍고 가야지 하면서 계속 달린 끝에, 길이 갑자기 매우 관광지스럽게 변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 후기대로 뜨갈라랑 계단식 논은 별로였다. 딱 사진 한 장에 나올만한 규모의 계단식 논이 다 였는데, 너무 상업화된 느낌이었다. 내려가는 길목 곳곳에 Donation 하라고 써져 있는데, 너무 사람들을 붙잡고 계속 돈 내놓으라고 하는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다. 특유의 농기구 등을 들고 있는 농부 들도 있었는데, 이 분들도 농사하는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으면 돈을 받았다. 외국인들에게 농기구 들고 사진도 찍게 해주었다. 물론 돈 받고.


뜨갈라랑 계단식 논의 분위기에 실망해서 굳이 들어가지 않고 위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다시 우붓으로 돌아왔다. 1시간 타고 가서 5분 정도 둘러보고 돌아온 것 같다. 그래도 오늘 가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생각났을지도 모르니, 방문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뜨갈라랑 계단식 논
뜨갈라랑 논 앞 길 가에 관광객을 위한 상점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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