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톰슨의 집, 짜뚜짝 시장
방콕에 온 지 둘째 날이 되었다. 어제 새벽 일찍 방콕에 도착했으나, 새벽 비행기의 여파로 하루 종일 호스텔에서 골골댔는데, 거의 하루 종일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좋아지질 않았다. 딱히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데 끝도 없이 졸리고 꼼짝도 하기 싫었다. 발리 마지막 날 무리하게 6시간이나 서핑을 한 여파가 좀 크긴 했다. 그놈의 그린 웨이브 한번 타보겠다고 미친 듯이 패들링을 했더니 양쪽 어깨 근육에 무리가 왔는데, 그 후 무거운 캐리어와 백팩을 들고 발리에서 방콕으로 이동하면서 아픈 어깨로 짐들을 싣고 내리고, 계단을 들고 오르락내리락했더니 어깨가 완전히 망가진 느낌이었다. 호스텔 2층 침대를 오르락내리락할 때 사다리를 잡고 팔에 힘을 조금 줄 때마다 어깨가 너무 아팠다. 클라이밍 빡세게 한 다음날 어깨 통증보다도 훨씬 심해서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잘 쉬면 낫겠지 하고 파스 붙이고 늦잠 자고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어제저녁에 잠깐 밖에 나갔다 온 게 다지만, 방콕은 발리에 비해 더워도 너무 더웠고 매연도 심하고 차 소리도 너무 심해서 도저히 밖에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젊었을 땐(?) 대도시로 여행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는데, 발리에서 힐링하다 와서 그런지 어쩐지 대도시의 혼잡함과 소음이 너무 거슬렸다.
그래도 벌써 방콕에 온 지 30시간이 넘어가는데 호스텔에만 박혀있을 수는 없어서 어디든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방콕에 뭐가 있는지, 어디를 가야 하는지 하나도 공부를 안 했다는 것. 호스텔 로비에 추천 방문 장소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기는 했는데, 대부분이 식당/카페/바/마사지샵에 대한 추천이었다. 여행 책자 하나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에 방콕 필수 코스들을 찾아봤는데 딱히 끌리는 데가 없었다.
마침 어제저녁 호스텔에서 잠깐 대화했던 이탈리아 언니가 추천했던 짐 톰슨의 집에 호스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서, 일단 거기라도 가보자 하고 간신히 무거운 몸을 끌고 호스텔을 나섰다.
방콕에 와서 처음 가는 관광지인 짐 톰슨의 집. 나의 첫인상은 굉장히 상품화가 잘 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짐 톰슨이라는 서양인이 태국에 반해서 눌러살던 집인데, 이 사람이 방직 쪽에 조예가 있어서 태국의 실크 산업을 크게 발전시켰다고 한다. 또한 태국 전통 가옥과 서양식 가옥을 혼합해서 독특한 양식의 집을 짓고, 동남아 여기저기서 힘들게 공수해온 각종 수집품들로 실내를 꾸며놓아서 방마다 볼거리가 꽤 있기는 했다.
하지만 개인 자유 관광은 불가능하고, 티켓을 사면 언어별로 일정 시간에 모여 그룹별로 가이드와 함께만 들어갈 수 있었다. 짐도 모두 락커에 맡겨야 했고, 정해진 장소에서 신발도 벗어야 하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 돌아야 하고 사진도 절대 못 찍게 해서 굉장히 통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서양인 한 명이 왜 사진을 못 찍냐고 묻자, Postcard를 팔아야 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념품 판매점에서도 백만 원대를 호가하는 실크제품들과 가방 등을 팔고 있었고, 여기도 역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정원이 멋있다고 했는데, 발리에서 여기보다 백배 멋있는 정원들은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무료로 볼 수 있었는데, 규모도 작고 그다지 멋있지도 않아서 실망했다.
자유 그 자체였던 발리에서 있다 와서 그런지, 관람하는 내내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관광코스로 상업화 하나는 잘 시켜놨다는 생각은 들었다. 입장료도 비쌌고 기념품들도 비쌌는데 돈벌이는 매우 잘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방콕에서 혼자서 툭툭을 타보는 것은 조금 꺼려져서 안 타기로 결심했는데, 짐 톰슨의 집에서 큰 길가까지 운영하는 Free shuttle bus가 툭툭이여서 툭툭을 짧게나마 한번 타볼 수 있었다. 툭툭을 탔던 게 여기 방문해서 제일 좋았던 점..
짐 톰슨의 집에서 꽤나 실망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방콕은 정말 정말 더웠는데, 더운 것을 좋아하는 내게도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웠다. 단순히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아서 더운 게 아니라, 도시 열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각종 버스와 건물들에서 에어컨을 풀가동해서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도로마다 꽉 막혀서 밀집되어있는 차들에서 나오는 열기, 어딜 가나 북적이는 인파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너무 불쾌하게 더웠다. 또한 거리 곳곳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그 열기에 푹 썩은 악취 냄새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숙소에서 다시 나가기가 싫었다.
숙소에 누워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다가, 방콕에서 오래 묵지 말고 빨리 떠나자는 결론을 냈다. 오히려 빨리 떠나려는 결론을 내고 나니 컴팩트하게 관광지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가 추천한 짜뚜짝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이라는데 마침 토요일이었으므로 지상철(BTS)을 타고 짜뚜짝 시장으로 향했다.
BTS Mo Chit 역에서 내리면 짜뚜짝 공원이 보인다. 공원의 남쪽에 짜뚜짝 시장이 있었고, 그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외국인)이 매우 많으므로 따라가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짜뚜짝 시장은 중국 거주 시절 자주 갔었던 상하이의 크고 작은 시장들하고 비슷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좀 더 트렌디한 제품들을 더 많이 파는 느낌. 쇼핑을 할 작정을 하고 왔으면 천국이었겠지만, 계속 여행을 해야 하는 나(무거운 캐리어 들다가 어깨 파손된 사람)는 짐을 단 1개라도 더 늘리면 안돼서 구경만 했다.
태국 음식에 대한 극찬들이 많아서, 쇼핑보다는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 먹어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구석 쪽으로 가니 음식 파는 가게들이 쭉 있는 구역이 있었다. 거기에서 서성이다가 어떤 집으로 들어가서 팟타이를 시켜 먹었다. 꽤나 맛있긴 했는데, 너무 기대해서 그런지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았다. 이 집이 별로 맛이 없는 집인가 생각하며, 나와서 오렌지 주스를 사 먹었는데 너무 달았다. 지나가는데 로티를 줄 서서 먹길래 나도 로티를 하나 시켜봤다. 맛있긴 했는데, 너무 달았다. 단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에게는 태국 음식이 별로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손님이 별로 없는 집에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는데, 굉장히 담백하고 맛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장을 돌다가 다른 집에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샀는데, 사고 나서 보니 가게 위에 진열된 토핑에 벌과 파리가 잔뜩 앉아있는 것이었다.. 한입 먹어봤는데 정말 안 신선한 맛이 났다. 비위가 확 상해서 한입만 먹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입에 너무 맛없는 맛이 남아있는 게 싫어서, 다시 시장을 돌다가 좀 더 깨끗해 보이는 곳에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다시 사 먹었지만, 첫 집처럼 맛있던 맛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첫 번째 집을 다시 찾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서 포기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짜뚜짝 시장을 떠났다. 날씨도 너무 덥고, 인파도 너무 많고, 너무 시끄러워서 더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숙소로 향했다. 아마 몸 컨디션이 안 좋은 것도 한몫 했을 것 같지만, 방콕의 첫인상은 별로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
숙소 근처의 노점에서 손질해놓은 망고를 사 먹었는데, 망고가 정말 맛있었다. 망고 덕후인 내겐 발리의 망고도 맛있었지만 훨씬 더 달고 푹 익은 맛이 나서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방콕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발리에 좀 더 있을 걸.. 하는 생각을 하며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아마 몸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부정적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일단 컨디션 조절을 위해 푹 쉬자고 생각하며 일찍 숙소에 와서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