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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dam Nov 23. 2018

#18-1 방콕 셋째 날

왓 사켓, 카오산 로드

어제 일찍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는데도 컨디션이 좋아지질 않았다. 12시간 정도 잤는데도 불구하고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어깨는 아직도 움직일 때마다 아팠다. 여행 18일 차가 되니 여독이 몸에 쌓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계속 누워있다가 배가 고파져서 뭔가를 먹기 위해 드디어 몸을 일으켜 숙소를 나섰다.


태국 와서 먹었던 음식들이 대부분 크게 성공하지 못해서, 그냥 숙소 앞에 있는 맥도날드를 갔다. 진리의 빅맥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들어섰는데, 메뉴판에는 꼬부랑 태국 글씨만 가득했고, 사진만으로 빅맥을 가리기가 쉽지가 않았다. (본인은 주변 지인들이 인정한 맥덕후이다. 30 평생 거의 주 2-3회씩 맥도날드를 사 먹은 VVIP로써 한 방에 빅맥 사진을 알아보지 못하여 부끄러웠다) 태국 글씨 밑에 아주 작게 영어가 써져있었는데, 시력이 좋지 않아서 실눈을 뜨고 집중하여 쳐다본 끝에 빅맥 세트를 시킬 수 있었다. 많은 한국 여행자들이 추천하던 콘파이도 사 먹었는데,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애플파이가 백만 배 맛있는데.. 태국 스타일 입맛과 내 입맛이 별로 맞지 않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맥도날드로 배를 채우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케찹을 자유롭게 퍼갈 수 있는 점은 마음에 쏙 들었음


발길 닿는 대로 가기

방콕에 대한 공부를 1도 하지 않고 도착한 탓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방콕에서 가장 대표적인 여행지라는 방콕 왕궁에 가고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여기는 문 여는 시간에 가지 않으면 인파 때문에 아무것도 못 보며, 특히 주말은 피하라고 되어 있어서 월요일인 내일 가기로 결심하고 오늘은 그냥 올드시티 쪽에 가서 되는대로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사실 어딜 가야 할지 몰랐고, 공부하기도 귀찮았다)


구글 지도를 켜서 대충 시내 아무 데나를 찍었는데 마침 숙소 근처에 있는 운하에서 수상보트를 타고 가는 루트가 나오는 것 아닌가. 이거다 싶어서 수상보트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으로 갔는데, 정류장 비스무리한 것도 없고, 허름한 동네만 쭉 이어질 뿐이었다. 담벼락에는 그래피티가 잔뜩 되어 있고, 길거리에 삼삼 오오 모여있는 현지인들은 외국인이 여길 왜 왔냐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뭔가 안전한 동네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멈춰 서서 길을 찾기는 무서웠기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쭉 직진했다. 한참 걷다 보니 반대편에 정류장 같은 게 있었는데, 그쪽에서 타도 올드시티를 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운하를 건너서 그 정류장으로 가보았다.   

구글 지도에는 여기쯤에 정류장이 있었는데..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류장(?) 선착장(?)을 발견하였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가려는 방향 쪽으로 가는 듯한 보트가 도착했고, 외국인들 몇 명이 타길래 그냥 따라 탔다. 운하에 갈림길도 딱히 없어서 그쪽으로 가겠거니 짐작하고, 옆자리의 외국인한테 올드 시티 가냐고 물어보니 간다고 했다. 그 외국인이 운임료도 알려줘서 돈도 순조롭게 지불했다. (보트 엔진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의사소통하기가 거의 힘들었다. 돈 걷어가는 직원은 원숭이처럼 보트 난간을 걸어 다니며 돈을 걷고 있었는데, 도저히 그 직원과 목적지와 비용을 문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계획에 없던 수상보트를 타고 운하를 지나가니 꽤 재미있었다. 방콕에 와서 너무 지쳐 있었는데, 수상보트에 타서 바람을 맞으며 운하를 가르며 나아가니 서서히 기분이 좋아졌다. 운하의 물은 꽤 더러워 보였는데, 보트가 지나가다 보면 똥물이 보트 내부까지 가끔 튀었고, 이를 막을 수 있게 손잡이를 당기면 가림막이 올라올 수 있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가림막이 다 올라와도 물이 완전 막아지진 않았지만, 어차피 밖에 나오면 땀범벅이 되어서 씻어야 될 텐데 똥물 조금 튀면 어떠랴.

보트 내부
앞에 보트 번호가 붙어있다


올드시티 부근의 한 선착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나도 따라서 내렸다. 내려서 어느 쪽으로 걸어가 볼까 하고 주변을 쭉 둘러보았는데, 근처에 번쩍거리는 사원이 보여서 그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좀 걷다 보니 서양인들 여럿이 그쪽으로 걸어가길래 따라서 들어갔다. 계획 없이 여행할 땐 관광객들을 따라가면 프리라이딩을 할 수 있다.(성공률 90%) 매표소 쪽에 와서 보니 Golden Mountain이라고 써져 있었다.


왓 사켓(Wat Saket/Golden Mountain)

내가 도착한 골든 마운틴은 나중에 찾아보니 왓 사켓이라고 꽤 유명한 관광지였다. 한국 여행정보 책자나 블로그에서는 대부분 왓 사켓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는데, 구글 지도나 매표소에는 내가 읽을 수 있는 영어로는 Golden Mountain이라고만 써져있어서 왓 사켓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태국어로만 왓 사켓이라고 써져있으니 읽을 수가 없다. 태국 와서 문맹 된 기분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들은 대부분 알파벳을 쓰거나 한자문화권이어서 대부분의 표지판이나 간판들을 음이라도 읽을 수 있었는데, 태국어로만 가득한 동네에서 돌아다니려니 꽤나 힘들었다. 앞으로 3주간 태국에 있을 건데, 태국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왓 사켓은 평지인 태국에서 유일하게 야트막한 인공 산 위에 있는 사원이라고 한다. 예전에 라마 3세 국왕이 이곳에 높은 탑을 지으려다가 무너져서 언덕처럼 방치되고 있던 곳 위에다가 다시 작은 탑을 세운 게 바로 이 왓 사켓이라고 하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오르기 쉬운 얕은 계단이 나선형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올라가는 길에 볼거리가 많아서 전혀 힘들이지 않고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십이간지 조각상이나, 일렬로 나열된 종들, 징 등등이 계속 있었고, 현지인들은 소원을 빌면서 종을 치며 올라갔다. 스피커에서 태국어로 불경 외우는 소리(아마도..)가 계속해서 나와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정상에서는 방콕 시내 전경이 다 보여서 꽤나 좋았다. 정상에서 보니 방콕 시내에는 황금색과 흰색이 섞인 크고 작은 사원들이 정말 많았다.

멀리서부터 보여서 따라갔다
왓사켓 매표소가 어딘지 모르면 관광객들을 따라가면 된다
터치스크린 자판기
매표소
입구
올라가는 길에 십이지상과 불교 석상들이 있다
얕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 오르기 쉽다
소원을 빌며 종을 치는 것 같았다
왓사켓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방콕 시내
왓사켓 꼭대기층의 불상
옥상의 탑
소원을 빌며 탑을 도는 태국인들
왓사켓에서 내려다본 방콕 시내


왓 사켓에서 내려와서 어딜 갈지 고민하며 구글 지도를 살펴보다가, Giant Swing이라고 써진 곳이 있길래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거리 구경을 하면서 걸었는데, 어딜 가던 1차선이던 발리에 있다 오니 유난히 넓은 차선들이 눈에 띄었다. 또한 여기저기에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태국 사람들은 국왕을 굉장히 존경한다는데, 이렇게 존경받는 국가 지도자가 있다는 게 매우 신기했다.


지나가다 보니 관광객들이 엄청 줄 서있는 가게들도 몇몇 보였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주 유명한 팟타이 집들이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저렇게 줄을 서서 먹나 싶어 나도 먹어볼까 했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계속 길을 갔다. 목적지인 Giant Swing에 도착했는데, 정말 엄청 큰 그네가 하나 있었다. 아마 행사 같은 게 있을 때 저 그네에서 뭔가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본 넓은 차선
가는길에 찍었는데, 뭔지 모르겠다
운하 옆에는 판자집 같은 집들이 많이 있었다.
엄청나게 줄 서서 먹는 팟타이 집
Giant Swing


Giant Swing 바로 옆에 시청 건물이 있었고 앞의 광장에 노점들이 있길래 그쪽으로 가보았다. 시청 광장에 발을 딱 들이 서는데, 갑자기 경비들이 호루라기를 불더니 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길가던 사람들이 모두 멈춰 서서 차렷 자세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나도 같이 멈춰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는데, 아마 6시 정각마다 이런 공공장소에서 국가 제창을 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태국 국가도 들어보고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시청을 지나서 길거리를 구경하며 쭉 걸어가니 Democracy Monument가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며 지도를 봤는데, 그 유명한 카오산 로드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서, 카오산 로드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마침 해가 슬슬 지고 있었으므로 카오산 로드를 가기에도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콕 시청
국가가 울려퍼지자 모두 국기를 향해 멈추어섰다.
Democracy monument
길가다 발견한 Bangkok city library


카오산로드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모인다는 카오산로드. 여행자 특유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카오산로드. 카오산 로드에 대한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방콕에 가면 꼭 카오산 로드를 가보리라고 생각했기에 매우 기대를 하며 카오산 로드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카오산 로드에 도착해 보니 큰 기대와는 달리 그냥 평범한 여행자 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여행할 때 갔었던 여행자 거리, 중국 여러 도시에 으레 있는 보행자 거리, 발리에서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꾸따의 르기안, 뽀삐스 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상점들에서 파는 물품의 종류는 더 다양하지 못한, 어디서든 본 적 있는 느낌. 조금 더 걸어가 보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하고 계속 걸어가 봤는데, 식당과 마사지샵에서 너무 심하게 호객을 해서 구경을 하기에도 힘이 들 지경이었다.


카오산 로드 노점에서 파는 팟타이가 세계 최고로 맛있었다는 글을 봤던 기억에, 사람이 꽤 북적이던 노점 하나를 골라 팟타이와 스프링롤을 사 먹었다. 흠.. 근데 그 팟타이 맛도 그냥 그랬다. 아마 팟타이는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닌가 보다. 스프링롤도 그저 그래서 대부분 다 남겼다. 향신료 잘 먹고 볶음면에 환장하는 나인데 이상하게 팟타이는 별로 맛있지가 않았다. 원래 맵거나 시큼하거나 단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짠맛 덕후이다), 태국 음식들이 대체로 엄청 맵거나, 새콤달콤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카오산 로드는 사실 밤이 깊어지면 여기저기서 파티가 열리고 다들 술에 취해 미친 듯이 놀아재끼는 매력이 있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술 먹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고, 혼자서 밤늦게까지 취객들 사이에 있을 자신은 없어서 여기는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오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쉽지만 카오산 로드에서 떠났다.


다행히 카오산 로드에서 숙소까지 한방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그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는데, 또 구글 지도에 적힌 정류장 위치에 정류장이 없는 것이었다. 태국에서만큼은 구글 지도가 잘 안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정류장이라고 적힌 곳에서 버스들이 지나가는 걸 유심히 관찰하면 그 근처에서 정거장을 찾을 수 있다. 이번에도 구글 지도에 표시된 곳에서 2-3분 정도 더 걸어서 정류장을 찾을 수 있었다.


태국 버스들은 목적지에 따라 가격이 다르므로 버스 안내양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버스비를 지불하면 된다.(중국과 비슷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영어는 통하지 않고 나는 태국어를 못하므로, 스마트폰으로 내가 내릴 정거장 이름을 보여주고 손바닥에 동전을 잔뜩 보여주면 버스안내양이 알아서 버스표를 끊어준다. 사람이 많지 않을 때는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알려주기도 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표정과 손짓 발짓에서 친절한 태국인들을 느낄 수 있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버스에 앉아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현지인들 틈새에 앉아 시내 구경을 하다 보니, 태국이라는 나라에 서서히 적응되는 게 느껴졌다.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고, 태국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카오산 로드
팟타이 노점이 매우 많다
팟타이와 스프링롤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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