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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영 Oct 05. 2024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독서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버립니다.

독서 안 하는 장서가

어릴 적부터 책은 내 집착의 대상이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좋아하면서도 똑같은 문제를 푸는 것은 정말 싫어했던 내게, 학원 선생님과 부모님은 내게, 최상위권이 되기 위해서는 위해 비슷한 문제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풀며 실수를 줄이고 빨리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언의 본질은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른들과 내가 원하는 것은 같았다. 바로 여러 권의 문제집을 사는 것이었다. 나는 문제집을 다 풀 자신은 없었지만, 다양한 그림과 서체, 종이 향을 가진 문제집을 소유하는 것에서 왠지 모를 충만감을 느꼈다. 그렇게 거의 학기에 과목당 3권 이상의 문제집을 사고, 1권도 채 풀지 못하는 패턴을 반복하며 학창 시절이 지나갔다.

 

대학 졸업 후 문제집에 대한 소유욕은 일반 도서로 확장되었다. 일반 도서는 학기 같은 특정 기간 내에 소비할 의무도 없는 물건이고 크기도 작아서 소장하기가 더 좋았다. SNS에서 유명한 사람의 책 추천 글을 읽을 때, 산책하거나 약속 사이에 남은 시간이 있을 때, 나는 서점에 방문해 책을 샀다. 독서 모임에 참여할 때는 책을 사서 30% 이하의 분량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기 일쑤였다. 재직하는 회사에서 도서비가 지원될 때는, 매달 지원비 한도만큼의 책을 구매하며 책을 축적했다. 책을 사는 것은 여전히 설레는 일이었다. 표지를 감상하고, 저자 약력, 서문 3장을 읽은 것만으로도 나는 책의 감성과 아이디어를 소유한 것 같았다.


30대가 되어, 그렇게 산 책이 300여 권을 넘어섰다. 10평도 되지 않는 좁은 원룸에서 3단 책장과 모든 개방형 수납장이 책의 차지가 되었다. 몇 번의 이사를 했지만, 이 책들은 한 번도, 한 권도 이탈 없이 나를 따라 거처를 옮겼다.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분들은 끈으로 묶인 십여 개의 책 보따리를 보며 물었다. "아니, 다른 짐은 적당한 수준인데... 왜 이렇게 책이 많아요?"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당황했다. 책을 많이 소유한 것에 대해, 집에 방문한 친구들이 '멋지다' 칭찬하면 했지, 부정적인 시선으로 본 적은 없었다. 이삿짐센터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만스러울 수 있는 사항이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어려웠다. "책을 좋아해서요, 소중한 물건이에요"와 같은 일반적인 장서가의 대답을 나는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진 책들을 모른다.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고, 읽었다고 해도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그러게요, 책을 진정으로 좋아하며 자주 읽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책을 갖고 있을까요?'


내 책들의 본거지, 3단 책장


8년간 4번의 이사를 할 때마다 이 질문을 떠올렸지만, 매번 이삿짐 뒷정리를 하고 나면 바쁜 일상에 밀려 그 질문은 자연스레 잊혔다. 그러던 최근, 이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다시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물건을 총 70개만 갖고 산다는 유튜버 '미니멀유목민'의 콘텐츠를 자주 본 것이 자극이 되었다. 전부터 그 채널을 알았지만, 요즘 삼십춘기를 맞아 인생의 혼란이 커진 탓인지 '미니멀리즘' 키워드를 가진 그의 콘텐츠가 내 알고리즘을 파고들었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인 그의 유튜브 영상들은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자유를 얻어라’라는 통일된 메시지를 갖고 있다. 콘텐츠의 영향으로 나는 이것저것 버릴 것을 몇 가지 찾았지만, 사실 진짜 버려야 할 것은 저 3단 책장이라는 것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이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왜 300권의 책을 갖고, 무엇 하나 버릴 수 없이 안고 있을까?' 틈틈이 이 질문을 떠올린 지 한 달쯤 되었을까? 어느 개운한 아침, 마침내 나는 나의 심리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가능성"


책은 나에게 가능성의 결정체였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인생 계획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고 살았다. 유명한 사업가 손정의는 10년 단위로 20대부터 60대까지 계획을 세웠다는데, 나는 1년 연간계획도 없이 졸업 후 10년을 보냈다. 대신 다양한 방향의 진로에 관심을 두며 살았다. 재테크를 잘해서 '경제적 자유'를 얻고 은퇴한 직장인이 되고 싶을 때는, 책장 1열 가장 왼쪽에 위치한 '워렌 버핏'. ’찰리 멍거', ‘피터 린치'의 책들에 마음을 기댔다. '남녀 심리', '명상', '자존감'에 관한 책들은, 정서가 안정되며 매력적이고 성숙한 내가 되도록 도와줄 것 같았다. '사업' 관련 책은 책장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그 책들은 내가 '게임', '쇼핑몰', 'B2C IT 서비스' 영역에서,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 스케일의 기업가 정신을 갖고 창업하여 '안드레센 호로이츠'와 '피터 틸'의 투자를 받을 확률을 만들 것을 기대하게 했다. 책장 가장 구석의 '자취 요리'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심플하게 산다' 같은 책들은 치열한 일상에서 살림도 잘하는 생활 습관을 키워줄 것 같았다.


되고 싶은 나의 모습, 나를 도와줄 코치들이, 책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책을 버리는 것은, 그 모든 미래가 시야에서 없어진다고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의 내 모습은, '투자에 대한 기본 상식', '정서적 안정'이 없고,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투자를 받을 사업계획서를 초안조차 쓴 적이 없으며, 배달 타코야끼를 즐기고 아침에는 복잡한 옷장 구석에서 옷을 찾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 내 옆에서 이 책들은 미래의 내가 현재와 다른 사람인 듯 착각하게 해주었다. 나는 300여 권의 책들이 가진 '가능성'까지 포함하여 스스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10년 동안 그 가능성들은 그저 책의 형태로 책장에 있었지, 어느 하나 내 안으로 들어와 커지지 않았다. 또 어리석은 점은, 각각의 책이 가진 가능성의 방향을 모두 벡터 합하면 0, 즉 원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가능성 중 어느 하나조차 놓지 못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독서

지난 10년의 내가 가능성의 착각 속에 있었음을 하루아침에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시간이 그랬듯 앞으로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저 책들이 보여주는 미래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그러나 착각이 아닌 희망적인 사실 하나는, 내가 지금이라도 책 없는 나의 초라한 자아를 새롭게 인식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자아 인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새로운 행동을 선택한다면, 지난 10년과 다른 새로운 추세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300여 권의 책들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 가능성들을 버리기 전에 나는 책을 완독하고 최대한 내면으로 흡수해 보려 노력할 것이다. 내면에 남은 작은 가능성들만 내 것으로 인정하고 키우며, 대단하진 않지만, 지금보다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Project 52]
1. 약 1년 후의 이사일 이전, 최소 52권의 책을 버린다.
2. 그를 위해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그 책을 버린다. (판매/기부 형태)
3. 책에서 내게 흡수된 부분은 독후감으로 남긴다.

2024년 9월 30일

갑자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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