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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영 Oct 20. 2024

모범생은 인생 중반쯤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로버트 스티븐 캐플런 '나와 마주서는 용기'를 읽고

'나와 마주서는 용기'의 책표지는 여느 자기계발서 표지와 다르지 않게 화려한 부제 '하버드대 10년 연속 명강의'를 달고 있다. 저자는 하버드 MBA 졸업 시 상위 5% 안에 들었으며, 골드만삭스 투자은행에 고위직을 거쳤고, 하버드대학 비즈니스 스쿨 교수이다. 제목과 표지와 저자 약력까지 봤을 때, 밋밋한 '하버드~' 책류로 판단이 되었지만(하버드에는 명강의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지), 누군가 어떤 사회적 '인정' 체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있다 생각되었기에 끝까지 집중력을 갖고 읽었는데, 정말 생각과 같았다.


이 책의 독자로 가장 적절한 대상은, 최소 20대 후반 이상이며, 모범생 성향이 있고, 어느 정도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앞의 두 개에 해당해서 이 책이 크게 와닿을 수 있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책이 보내는 메시지는 '인기 있는 직종'을 쫓아다니는 패턴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모범생들은 학창 시절 높은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때, '정답'이 있고, 정답을 맞히면 '점수 = 사회적 인정'을 보상받는 것이 확실한 환경에 익숙하게 된다. 인생의 선택에서도 그러기가 쉽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있을 때, 모범생은 많은 사람들의 데이터호 검증되어 이론 상 가장 '좋은 직업'으로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며, 그 직업은 확정적인 돈과 명예 등의 보상을 주는 패턴을 보인다. 그러다가 인생의 중반에 현타가 가끔씩 온다. 사회의 게임에 충실한 나머지 '나'라는 존재만의 독보적인 가치나 기준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책이 자신을 돌아보는 데 도움을 준다.


본인도 모르게 수용적으로 사회 가치체계를 받아들이며 살아왔을 모범생들은 사회경험을 일정 시간 해본 후에는, 사회의 추세에 따라 선택한 것들이 자신에게 정말 만족스러운 보상을 주었는지, 본인의 가치 체계와 사회의 평균적 가치체계가 일치하는 것이 맞는지,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맞으면 계속 따르면 된다). 자아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는 타인들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한 선택이 합리적일 수 있겠으나, 자기 인생의 경험치가 충분히 쌓인 상태에서는, 자기 고유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그들은 세상이 자신들에게 하라고 부추기는 것들을 귀 기울여 들었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물질적 부를 획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이고, 본인의 가치와 신념에 더 충실하며, 일과 인생에서 더 열정적이고 성취감을 느끼는 또래를 만났을 때 그동안 자신이 걱정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확연히 드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나침반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나침반에 기대어 길을 찾아가는 습성이 있다. (p.35 )

지금 당장이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 그 열정을 밀고 나갈 생각입니까? 과연 3년 혹은 5년이 지난 후에 완전히 다른 업계로 이직하기가 그렇게 쉬울까요? (p.29)


사회에서 '잘 나가는' 수많은 모범생들이 자기 가치체계를 점검할 수 있도록, 저자는 그들을 코칭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졌다고 한다. 그중에 내게 와닿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직업적으로 대성공할 것이라고 확정돼 있다면 지금 당장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는가? (p.106)

어떤 커리어를 밟는다 해도 그 영역에서 상위 5%에 들어간다고 상상하자, 나의 경우 경제적 대가가 훨씬 높은 커리어보다는, 내가 일의 주도성을 더 가질 수 있는 커리어를 스스로 훨씬 선호하고 있음이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또 한편, 내가 후자의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경제적 대가가 매우 높은 커리어는 잘 안 풀려도 사회 평균 이상의 경제적 대가를 얻을 수 있지만,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커리어는 실패하면 사회 평균 이하의 경제적 대가를 얻는다. 모든 길이 성공한다는 가정을 하니 선택이 쉬워지는 나를 보며, 그동안 내 진로를 선택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스스로의 선호를 헷갈린 것이 아니라 '실패 확률에 대한 두려움'이 때문이라는 점이 확실해졌다.



저자는 또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바로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로 결론짓지 말고, 한 뎁스 더 나아가, 원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라고 권한다.

자네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의 일을 그만두겠다면 이해할 수 있네... 그러면 자네가 새로운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문득 그는 자신이 새로운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단 한 번도 자문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99)

책 속 내담자는, 처음에는 자신이 현재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저자를 찾았으나, 추가 질문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사실 자신은 지금 하는 일의 본질은 여전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커리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현재 커리어에서 하기 싫은 작업만 덜어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부분의 메시지는 이직 시장의 일반적인 조언과도 비슷하다. 이직할 때, 현재 직장이 싫어서 퇴사하면 절대 안 되고, 합격처를 받아놓은 후 면밀하게 새 회사를 레퍼 체크하고 나서 이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이 통용된다. 어떤 욕구가 있을 때는, 이것이 싫어하는 것에 대한 회피목적의 반작용이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 내용 외에도, 책에서는 자신의 단점을 들여다보고 코칭을 받을 것,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의견을 낼 것 등 직장생활 꿀팁을 전수하고 있으데 이 부분은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은 나에게는 신선하지 않아서 스킵하며 읽었다. 그러나 위의 인사이트만으로도 읽은 시간이 가치 있었다. 역시 모범생의 문제가 뭔지는, 세계 최정상급의 모범생이 더 잘 알고 있다!



책 평점(5점 만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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