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팀 '유난한 도전'을 읽고
토스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는 부정적인 부분이 더 많았다. 미끼성 마케팅하며 트래픽 만드는 회사, 야근에 대해 엄청난 푸시를 주는 회사, 수익이 적어서 내 데이터를 어디에 팔아먹을까 걱정되는 회사라는 것이 토스에 대한 나의 일차적인 인식이었다. 다만, 한국에서 몇 안되게 정말 애자일 하고 Product 중심의 조직문화를 갖춘, 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점은 두루 들었기에, 직장인으로서 흠모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토스에 대한 궁금증과 편견을 갖고 있을 때, 토스에 간 지인이 추천해서 이 책을 사고, 이제야 읽었다.
결론적으로 책을 읽고 나니 이 회사에 부족하다고 느꼈던 '신뢰와 인간미'를 이제는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다투고 삽질하고 고생했구나, 미끼성 마케팅을 한 데에는 돈 타는 냄새 속의 절실함이 있었구나,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하느라 업무적으로 압박적인 분위기가 되었구나, 편견으로 갖고 있던 많은 부분이 책의 서사 속에서 이해가 되었다.
책은 마치 역사 전기를 쓰듯이, '누구누구는 무엇을 했다. 당시 기업가치 X원이었다.' 식으로 중립적 위치에서 과거를 말하려 애쓴다. 여러 사실을 솎아내고 이어 붙이는 과정에 저자의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으나, 최대한 중립적으로 담고자 노력한 저자의 노력 덕분에 나는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당시 토스 사무실로 들어가 현장을 생생히 관전할 수 있었다. 책의 두께를 보고 읽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화장실을 참아 가며 반나절 안에 읽을 정도로 책은 몰입도가 높고 재밌었다.
토스가 겪은 실패와 성공에는 배울 점이 많았다.
첫 번째로 배우고 싶은 것은, 시장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워렌 버핏이나 스티브 잡스, 레이 달리오 등은 탭댄스를 출 수 있고 가슴이 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한다. 토스팀도 처음에 '자신들의 생각에 세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재밌게 만들 수 있는 아이템'들에 처절하게 실패했다. 토스팀이 시도한 ‘오프라인 만남 기록’, '모두가 의견을 내는 토론장' 등은 나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봤을 정도로, 사용자 참여의 가정 하에는, 재밌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것 같은 아이디어다. 그러나 한 단계만 들어가서, 시장 규모와 경쟁 해자와 초기 사용자 모집을 고려하면 정말 성공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이었다. 토스팀은 와신상담 끝에 시장 수요가 있고, 본인들이 기능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아이템인 간편 송금에 도달하게 된다.
"상인은 자기가 파는 물건의 품질과 그것을 생산하는 수단을 철저히 이해하고, 물건을 완벽한 상태로 생산하거나 획득하여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가장 싼 가격으로 분배할 수 있도록 모든 지혜와 정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 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간편 송금 사업의 시작과 성장 이후에도, 토스팀은 중도에 사업 로드맵에 있어서 다시 한번 뼈아픈 실패를 맛본다.
지금껏 토스팀이 의심 없이 믿어온 두 가지 전제는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2년 동안 '송금으로 사용자 모아서 결제로 전환하면 게임 끝!'이라는 명제를 신봉해 왔는데, 한 번에 무너졌어요."
어렵다. 스타트업이라면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될 이유 하나를 봐야 하면서도, 스스로 ‘내가 믿고 싶은 대로 현실을 해석하는 게 아닌지’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한다. ‘눈은 하늘에 발은 땅에’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간접적으로 체감했다. 나도 다음에 사업을 한다면, (1)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할 것, 그리고 (2) 아무리 반응이 좋아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무 시뮬레이션을 철저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는 배우고 싶은 것은, 담대한 마음이다. 토스의 역사를 보면 정말 내가 대표였다면 미칠 듯이 쫄릴 순간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한 순간에 돈의 유동성이 막혀 다 망해버릴 것 같고, 팀원에게 말했던 모든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헛된 망상인 것이 드러나, 모두를 실망시켜 버릴 것 같은 순간들. 모든 스타트업 대표들이 다 힘들다고는 하지만 국내 빅테크기업과 경쟁하는 한편, 정부와 금융사를 상대하고 설득해야 하고, 비전 펀드 같은 막대한 자금줄을 한 번에 확보하지 못했지만 늘 시장의 주목을 받는 토스의 대표는 몇 배나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승건 대표는 끊임없이 조직을 성장시켜 흑자전환 유니콘을 달성했고, 지금도 상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추측건대 그의 타고난 자질도 있겠지만, 팀원과 투자자들이 그의 리더십을 따름으로써 열심히 일하고 지지함으로써 그가 가진 모든 잠재력을 꺼내고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압박한 것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팀원과 투자자들이 험난한 여정 속에서 그를 따른 데에는, 표면적 능력보다도 어떻게든 끝까지 세상을 혁신해 내 보겠다는 그의 담대한 마음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에는 이승건 대표의 심정을 담은 말이 있다.
"우리는 미친 것처럼 보이는 꿈을 꾸지만 결국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낼 것..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토스팀이 죽기 살기로 노력한 것은, 꿈이 미친 것처럼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이승건 대표와 토스팀의 담대한 마음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솔직함이다. 기술 장애가 나거나, 잘못된 방향의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을 때, 토스의 PR 담당자와 리더십은 해명과 사용자 보상에 있어 정면돌파를 선택해 왔다. 노력해도 해명이 안되면 그냥 서비스를 접었다(토스 대부). 그렇데 여론 악화 및 그에 따른 정부/금융사 견제의 여러 고비를 넘겼다. 토스가 남다른 윤리 의식이 있어 솔직했다기보다, 그냥 그 방법 밖에 없었을 거라고 추측되지만 현명한 대응이었다.
오늘.. 약 3시간 5분 동안 토스 서비스가 원활히 제공되지 못했습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복구에 더욱 긴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고객님들께 진심으로 송구한 마음입니다. 불편을 겪으신 고객님들에 대한 저희의 마음을 담아 아래의 보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2) 장애 시간 중 발생한 중복 송금 건 전액 반환.. 토스팀은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인프라를 조속히 강화할 계획입니다. 불편을 겪으신 고객님들께 깊이 사과드리며,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토스 장애 사과문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매우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였다. 동료에 대한 평가든, 안건에 대한 의견이든, 구성원들에게 적당히 침묵 속에 넘어가기보다 각자 자신만의 뾰족한 의견을 제시하는 태도가 몸에 베인 듯했다. 감정적 마찰을 감수하면서도 논쟁에 임하는 태도에서, 나는 토스팀이 자신들의 일이 제대로 되게 하는 것에 진심이라고 느꼈다.
"광고만 늘어놓는 건 사용자 경험을 해치는 일이에요", "제품을 피봇 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세운 가설을 제대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방향이 아니잖아요", "시도해 볼 수 있는 건 시도해 보면 좋겠습니다"
- 대출 맞춤 추천 서비스 출시를 논하며
"지난 1년간 실험한 결과, 데이터상 유의미한 이득은 없는 것으로 검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진행하는 건... 이게 맞는 방향이라는 직감이 있어 제가 가진 신뢰자원을 소비하더라도 진행하려고 합니다."
- 이승건
솔직함은 원활한 소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자, 애정의 증표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책의 서사에서 사업의 흥망에 따라 나도 토스팀과 함께 감정이 고저를 오갔다. 당사자분들은 '당시에 너무 힘들었고 돌아보고 나서야 아름다운 여정이었다'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워서 읽은 제삼자라서 일까, 너무 재밌고 멋있는 여정으로 보였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 IT업계 종사자 분들 혹은 업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토스의 여정을 간접 경험하고 사업의 전략/인사/마인드를 배울 수 있기에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