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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May 26. 2020

이슬은 학문도 하고 정치도 한다

이슬은 청각장애인, 뇌병변장애인이다. 보청기를 끼는 데다 발음도 어눌하다. 거기다 왼쪽 다리가 고장 났다. 사람들은 '뇌병변'이라 하면 영화 마라톤의 초원이를 떠올린다. 뇌병변 장애인은 지적 장애인과 다르다. '뇌'에 이상이 있는 건 맞지만 지능은 비장애인 수준이다. 뇌에 이상이 생겨 다리를 절거나 팔 한쪽이 작동이 안 되는 사람들이 뇌병변 장애인이다.


장애인 사회 운동가 중 뇌병변 장애인이 많은데, 이슬도 그중 하나다.

 이슬은 학문을 한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 이슬은 옆에서 전공 책을 읽는다. '사회 조사론', '사회 분석론', '사회 보장론'. 수강 과목도 아닌 전공책을 이슬은 작은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겨가며 계속 읽는다. 사회학과에서 특수교육과로 편입한 이슬은 특수교육 인스타그램도 만들었다. 가끔은 구독자가 나랑 찬영이 밖에 없는 유투브를 열어 특수 교육 라이브 방송도 한다. 방송을 하는 이슬의 옆에는 나랑 찬영이가 앉아 있다.

 이슬은 정치도 한다. 어느 날은 자기를 이제 '진보 소녀 최이슬'로 불러달라길래. 나는 진보 소녀라는 말이 웃겨 휴대폰을 잡고 푸하하하 웃고 말았다. (너무했나?) 그런데 이슬이 정말로 한 정당의 장애인 대표 청년 운동가로 인터뷰를 하고 신문에도 나왔다. 나는 글 쓸 거야, 책 낼 거야 말만 하는데. 말하는 대로 뭐든 이뤄내는 이슬이 대단했다.

그런 이슬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종종 무시받는다. 이슬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 사회 정책론 수업이었다. 3대 3으로 토론 평가를 하는 수업이 있었다. 이슬은 논쟁을 즐긴다. 내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읽는 동안 이슬은 토론을 준비했다. 작은 손으로 스마트폰을 누르며 이것저것 찾아보고. 심지어는 자기 발언을 녹음하며. 어느 부분이 어눌한지 듣고 또 듣고. 다시, 다시 연습했다.

 이슬이 기다리던 토론 평가 날이 왔다. 개네들은 이슬이 말하기만 하면 애기가 말하는 것 마냥 지켜봤다. 이슬의 말이 어눌하고 느리긴 했어도 내용에 부족함은 없었다. 이슬의 발언이 끝나고 개네들의 발언 시간이 왔다. 이슬은 개네들의 입모양을 보고 보청기를 곤두세우며 누구보다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개네들은 이슬의 질문에 대답도 잘 안 하고 넘어갔다. 나는 개네들이 너무 얄미웠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토론이 끝나고 이슬에게 그저 수고했다고 다독였지만 이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슬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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