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로 사람들의 상환 능력을 판단하는 일을 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눈앞의 카드값이나 대출 이자를 내느라 쉽지 않아 보인다.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에 다들 힘이 부친 것 같다. 전세자금 대출, 캐피탈, 카드론 등 다중채무자도 늘었다. 돈이라는 게. 돈이 돈을 벌기도 하지만, 돈이 돈을 잡아먹기도 한다는 걸 잊고 있는 듯하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 오인주(김고은 역)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동생들과 아파트에 살고 싶은 첫째 언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 세는 걸 좋아했어. 마음속으로 계속 돈을 세고 놀았어, 아주 큰돈은 무조건 먹을 걸로 바꾸지. 단팥빵 100개, 짜장면 100그릇. 그래야만 그 돈이 얼마나 큰지 가늠이 됐어.”
“우리한테 이 돈 있었으면, 넌 원하는 공부 했을 거고, 인혜는 그림 잘 그리고 잘 웃는 여고생이 됐겠지.”
“바보야. 니가 다르게 사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 거.”
부자가 되고 싶은 인주의 마음. 다들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품어보지 않았으려나.
나는 사람들이 (인주처럼 700억을 줍긴 어렵겠지만) 부자가 되길 바란다. 대출 만기 연장해 달라며 민망한 웃음 짓지 않고, 이번 달 나가야 하는 돈에 전전긍긍 고민하지 않으면 좋겠다.
밥값이 더 오르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고 외식 문화가 줄어든다고 한다. 대신 삼겹살 가게에서 상추를 주지 않듯. 양과 재료가 줄고 있다.
회사 앞 짜장면 가게에 ‘아끼면 망한다.’라는 현수막이 하나 붙었다. 백종원 아저씨가 좋아할 것만 같은 문구긴 한데.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 셀프코너의 양파들이 자꾸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