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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Aug 27. 2020

우리가 망친 자연, 히어로는 어디에 있나

자연은 타노스를 선택했다

어벤져스와의 첫 만남

SF도, 영웅물도 별로 관심이 없어 남들이 ‘어벤져스’와 ‘아이언맨’에 열광할 때 나는 그들의 대화에 잘 끼지 못했었다. 그나마 재밌게 본 영화라면 ‘아바타’ 정도였다. (‘아바타’는 지금까지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명작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팬이 아닌가. '어벤져스 2'가 개봉을 했다. 남편은 같이 극장에 가자고 했다. 나는 시간낭비일 것 같아 보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이 원하니 데이트 삼아 극장엘 가기로 했다. 시리즈들을 찾아보지 않은 탓에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어벤져스의 서막을 알리는 ‘퍼스트 어벤져’를 방영해주었는데, 우연히 보기 시작한 그 영화가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모두 챙겨보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그 길로 어벤져스 시리즈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감상했다.



인류를 악으로부터 구하는 어벤져스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비교적 단순하다. 인류를 악으로부터 구하는 것. 악의 주체는 외계인일 수도, 같은 인간일 수도 있다. 그들이 구하고자 하는 대상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이다. 인류를 매번 위기에서 구해내는 히어로들의 용감함에 관객은 늘 감동받는다. 그런데 때로는 인류의 절반을 날려버리려는 타노스의 편에 서기도 한다. 어찌 보면 선한 대의와 철학을 가진 악당. 그는 건틀렛을 끼고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세계를 구원하려 한다. 그가 말하는 세계의 구원,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세계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지구상에 넘쳐나는 인간들도 폐기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어벤져스는 어디에

그렇다면 자연의 중심에 있는 것은 누구일까? 자연의 모든 것을 정복하고 소유하고 파괴하는 인간은 자연의 중심에서 탐욕과 이기에 취한 악당이 되어버렸다. 지구는 인간들에 의해 망가져가고 있는 별이다. 지구에게 악당은 타노스가 아니라 인간인 셈이다. 


감기에 걸리면 몸은 바이러스와 싸운다. 그러는 동안 열이 나고, 열을 식히기 위해 땀이 나고, 땀이 나면 오한이 오고, 다시 열이 나는 과정이 반복된다. 적과 싸울 에너지를 소화활동에 낭비하지 않기 위해 식욕도 떨어뜨린다. 자연은 내부의 적과 싸우는 중이다.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이 이제는 자연의 적이 되었다. 자연은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폭염과 폭우, 질병이라는 타노스를 출동시켰다. 인간은 인간을 구하는 어벤져스에 열광했지만, 자연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타노스를 선택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무엇을 응원하고 구원해야 할까.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헬로. 곤니치와. 올라. 잡다하게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미처 예상못했다. 어쩌면 호기심이 집필의 원동력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게토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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