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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Sep 26. 2020

'역시 나는 안 되나 봐'... 하지만!

그래도 계속한다 글쓰기

글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게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주 빠진다. 재능을 탓하기도 하고, 산만한 기질을 탓하기도 한다. 훌륭한 작가들이 참 부럽다. 어떻게 긴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글만 쓸 수 있나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또 쓴다. 오래 집중하지는 못하지만 쓰려고 노력은 한다. '역시 나는 안 되나 봐' 하다가도 계속 쓰는 이유를 오늘 알았다. 나는 그저 성취감이 좋았던 것이다.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 만족감. 결과물이 쌓이면 그게 졸작이라도 아무튼 기분이 좋다. 결과물의 목록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없던 활기가 솟아난다.


성취감 때문에 행동한다는 게 별 것 아니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성취감이 일상생활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인 경우가 적지 않다. 요리 과정은 귀찮지만 결과물을 밥상에 내놓았을 때, 가족의 즐거운 식사를 바라볼 때, 요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좋아서 다음에 또 요리에 도전한다. 좋아하는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가도 어느새 한 마디, 두 마디 진도가 나가고 완주의 순간을 맞이하면 연습 과정에서 겪었던 괴로움들이 모두 기쁨 아래에 묻혀버린다. 그 기분이 바로 행동의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글쓰기가 큰돈이 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어떨지도 알 수 없다. 돈을 버는 것보다도 작품을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좋고, 그 작품의 감상을 공유하는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 나 자신이 꽤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걸 보면 한량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가족이 도와주고 있기에 가족에게 더없이 고맙고 때로는 미안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싫은 순간들'을 버텨내야 한다고 했다. 글을 쓰는 동안 힘들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고 돈 되는 일을 찾아야 할까 고민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기어서라도 꾸역꾸역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면 결과가 어떻든 기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나 보다. 여전히 느리고 산만해서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걸 보면, 영락없다. 나는 글쓰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헬로. 곤니치와. 올라. 잡다하게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미처 예상못했다. 어쩌면 호기심이 집필의 원동력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게토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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