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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Sep 29. 2020

내가 믿고 있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

인간은 원래 그렇다

© moritz320, 출처 Pixabay



복수 패는 순종 패를 겁쟁이라며 무시했고, 순종 패는 복수 패를 무식하다며 무시했다.

소설 《게토의 주인: 23일 폐쇄구역》 중에서



소설 《게토의 주인》에서 주인공 덕근(개)과 칠백(고양이)은 공원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사이이지만, 인간의 유기동물 포획사건을 계기로 갈등을 겪게 된다. 인간에게 복수를 할 것이냐, 순종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덕근은 전자를, 칠백은 후자를 선택한다.


인간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들이 있다. 정치적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패거리가 생기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다. 모두의 입맛에 맞는 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정책에 찬성했다가도 나중에 반대편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나는 한때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에 많은 댓글을 달았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기도 했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의견을 표현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했었다. 뭘 모르는 인간들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의 그런 태도에 질려서 떠나버린 친구, 지인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실이라고 믿던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주입된 정치 인식과 어른이 된 후에 내 눈으로 본 실제 정치 사이에서 많은 혼란을 겪었다.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나만의 잣대로 구분지어놓고 옹호하거나 욕하다가, 그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자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내가 알던 것과 믿던 것들로 세워진 나만의 세계가 무너져버렸다.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을 계기로 댓글과 카페글 쓰기, 블로그 포스팅 모두를 그만둬버렸다. 나는 내가 언제나 옳지는 않다는 생각에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기로 결정했다. 경계에 서 있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책까지 발간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경계에 서 있으려 애쓴다. 모든 의견에는 반대급부가 있기 때문에 글쓰기는 늘 조심스럽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회색분자라 욕할지도 모른다. 자기 의견이 없는 것이라 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색깔을 갖는 것이, 뚜렷한 주관을 갖는 것이 과연 올바른 걸까. 융통성 면에서는 차라리 회색분자가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유기동물문제를 주제로 쓴 소설 《게토의 주인》에는 분명히 인간 혐오의 시각이 들어있다. 몇 번의 퇴고를 거치고 여러 번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인간의 못된 행태를 혐오하다가도, 한번 더 생각해보니 '인간도 동물이고 자연의 산물이니, 원래 지닌 습성대로 사는 게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책에서 던지는 모든 질문에 답을 하자면 밤샘토론을 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어떤 작가님과 술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다. 내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답을 내기 어렵다고 우려스럽게 이야기하자, 그 분이 그랬다.

"소설가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지요."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헬로. 곤니치와. 올라. 잡다하게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미처 예상못했다. 어쩌면 호기심이 집필의 원동력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게토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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