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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Nov 13. 2020

유튜브가 허무해 책을 펼친다

교보문고 강남점

전자책으로 넘어온 지 오래되어 종이책 서점에는 정말 오랜만에 들렀다. 역시 서점과 도서관은 보물섬이다. 책을 펼쳐서 읽지 않아도, 제목과 표지만 훑어도 가슴이 설레는 곳이다. 오늘 나에게 발견될 보물은 어느 쪽에 있을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책이 뿜어내는 기운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매혹적인 카피를 만드는 수많은 작가와 편집자의 에너지가 한 곳에 찰흙처럼 똘똘 뭉쳐있으니,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장사가 없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인데 서점에는 책이 차고 넘친다. 오늘 하루 서점에서 스친 책들만 모아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읽을 것 같다. 누가 이렇게 책을 쓰는 걸까.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아서 매일 서점으로 쏟아붓고 있는 걸까.



유튜브에서 이런 저런 영상을 찾아보고 추천받아 또 보고 관련 영상까지 다 보고 나면 머릿속에 이명이 울리는 느낌이 든다. 영상을 멈춤과 동시에 이상한 허무함이 찾아오는데,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두 가지로 결론을 내렸다. 하나는 단절이었고, 또 하나는 갈증이었다.


집에 고립된 지가 벌써 몇 달이다.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자기의 일상과 생각, 정보를 공유하는 유튜버들의 현란하고 재치 있는 입담을 시청하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내가 홀로 고립되어 있음을 잊는다. 그래서 영상을 끊지 못한다. 유튜브를 끌 때마다 찾아오는 정적과 허탈함이 철저히 쓸쓸한 현실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요즘은 스스로 검색한 영상보다 유튜브에서 추천받은 영상을 더 많이 본다. 하나같이 내 취향을 저격한 추천 영상들은 내 정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절대 달아나지 못하게 붙잡아둔다. 그래서 추천 영상 몇 개를 보고 나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소비한 시간과 내가 얻는 것이 비례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생각하며 곱씹어 볼 새도 없이 정신은 이미 다음 영상에 끌려가 있다. 추천 영상을 많이 보면 볼수록 정신은 사나워지고 피로는 는다. 주제에 대한 갈증이 심해진다. 장시간 보고 나면 골이 아프다. 장시간 봤는데 머리에 남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때서야 나는 책을 집어 든다.



독서 후에 허무감을 느낀 일은 많지 않았다. 몰입 경험은 짜릿하고 벅찬 쾌감 같은 것을 준다. 몰입하고 있는 중에는 자아마저 잊어버리는 무아지경 상태에 빠져있다가, 몰입이 끝나고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벅찬 감동과 짜릿한 쾌감 등 다양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칙센트미하이 <몰입> 참조). 책과 영상은 모두 콘텐츠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해갈감 등 만족도 면에서는 영상이 책을 따라오지 못했다. 수년간 여러 방식의 콘텐츠를 접해본 내 나름의 소회랄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책의 이런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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