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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Mar 30. 2021

그날 내가 지나쳤던 어린 고양이

작은 행동, 커다란 책임

그날, 나는 어린 고양이를 지나쳤다.


집에 가는 길, 인도 옆 작은 비탈에 자라 있는 풀 사이에서 어린아이 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덤불 속에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동물의 표정은 여전히 읽어내기가 쉽지 않지만, 그 고양이는 한눈에 보아도 울상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애타게 울고 있었다. 아마 어미를 부르는 모양일 테지. 지나가던 내 또래의 여자가 “앗, 깜짝이야!” 짧은 감탄사를 날리고는 고양이에게서 달아나듯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내 친한 친구 하나는 크기가 크든 작든 개라면 몸서리치도록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개나 고양이가 모두의 눈에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집에 오는 동안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나친 그 새끼 고양이는 어미에게 버려진 것일까, 어미와 잠시 떨어진 것일까. 누군가는 그 녀석을 보고 가엾다며 자기 집으로 데려가 키우려 할 수도 있겠지. 나도 가끔은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 시골에 계신 어머님이 시바견 한 마리를 임시보호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본 검은 시바견이 그만 내 마음을 홀딱 빼앗고 말았다. 진심으로 데려다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했다. 불혹에 가까웠던 그 당시의 나는 충동과 이성 사이에서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모르겠다. 내가 내리는 결정에 나뿐만 아니라 타인이, 심지어 짐승까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이기에, 나는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녀석을 데려오지 않은 데 대해 후회는 없다. 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다. 단지 내 눈에 예쁘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외롭다는 이유로 동물을 강제로 곁에 둘 권리가 나에게 있는 게 아니다.


새끼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얼마 전까지 동네 풀밭의 항상 같은 자리에서 일광욕을 하던 어른 고양이가 혹시 그때 그 녀석일까. 그 어른 고양이는 지난겨울 이례적인 한파가 맹위를 떨친 뒤 사라져 버렸다. 너무 추워서 얼어 죽었는지,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인지 모르겠다. “먹이라도 좀 줄 걸 그랬어”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뭐라고 남의 삶에 끼어드느냐고, 우리가 뭐라고 이해하지도 못할 야생동물의 삶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생태계를 흔들어 놓느냐고, 저들에게는 저들의 삶이 있으니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먹이를 주는 작은 행동이 바꾸게 될 많은 현상들과 그에 따를 어마어마한 책임을 나는 감당하고 싶지 않다.


소장은 창고 안으로 들어가 깊숙한 곳 구석 바닥에 놓인 두 개의 커다란 봉투 앞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하나는 개 사료, 또 하나는 고양이 사료였다. 뜯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봉투는 아직 꽤 묵직했다. 쪼그리고 앉아 개 사료 봉투를 열어 보는 소장의 입에서 “이놈들을 다 우짜면 좋노…….” 하는 소리가 한숨과 함께 새어 나왔다.

-소설 《게토의 주인》 '부작용'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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