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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May 22. 2021

역마살 낀 도시 유목민이 찾은 직업

떠돌이의 직업

40년 인생 이사만 열 번

서울 강동구 신혼집에서 살다가 경기도 의왕으로 이사 왔을 때, 강동구 토박이인 남편에게 물었다.

"난생처음 강동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 온 기분이 어때?"

의외로 향수에 젖어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남편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듯했다. 넓고 예쁜 신축빌라, 호수가 보이는 풍경과 북적이지 않는 거리, 그리고 가까워진 직장이 향수병을 잊게 했나 보다.


나는 경북 영주 출신이다. 태어난 곳은 안동이지만 영주가 고향이나 다름없다. 7살 때까지 안동에서 의성으로, 의성에서 영주로 이사를 다녔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입학 직전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 영주에서 살았는데 영주 안에서도 대여섯 번 이사했다. 홀로 집을 구해 나간 것을 제외하고도 그렇다.


성인이 되어서는 충주로, 서울로, 성남으로, 결혼하면서 다시 서울로, 그리고 지금은 의왕으로 이사했다. 떠돌이 세입자의 삶이 으레 그렇다. 더구나 상경한 시골뜨기라면 이 정도 방랑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이 정도면 역마살이 낀 거다

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나쁜 기억들만 떠오르는 게 아닌가. 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나쁜 기억은 늘 오래, 강력하게 남아있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들이 훨씬 많다. 다만 나쁜 기억의 강렬한 색채에 가려져 무의식의 심연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내 경우에는 나쁜 기억 때문에 고향에 애착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생활이 성격에 영향을 준 것인지 천성 자체가 유목민 기질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취미생활에서도 떠돌이다. 친분이 쌓일 만하면 거리를 두고, 실력이 쌓일 만하면 다른 데로 눈을 돌린다. 식당에 가도 주인이 나를 알아보는 게 불편해 얼마 안 가 발길을 끊는다. 모임에서도 혼자 붕 뜬 느낌으로 겉돌다가 결국은 떠난다. 지금 유지하고 있는 모임도 코로나를 핑계로 머지않아 떠나지 않을까 싶다.


여행할 때는 떠돌이 기질이 좋았다. 나는 여행을 지도대로, 계획대로 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큰 여행을 할 때는 계획대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어쩐지 재미가 없고 기억에도 안 남는다. 충동적으로 떠나는 여행, 무계획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남편이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몇 번 함께 해보니 이제는 자기가 더 신났다. 몽골 유목민의 게르(천막) 생활처럼, 어느 강변 주차장에서 함께 차박하며 공중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았던 낯선 경험을 그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노매드의 일거리

역마살일까. 떠돌이 기질은 일을 할 때도 발현한다. 짧게는 하루 동안 여러 가지 일을 벌여놓고 계속 갈아타고, 길게는 몇 년에 한 번씩 직업을 바꾼다. 지금은 직업작가와 출판사 대표, 편집자를 겸하고 있는데,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하질 못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과제가 바뀐다. 소설을 쓰다가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SNS 포스팅을 하고 책 편집을 하고 낙서를 한다. 글쓰기에는 깊은 사유가 필요하기에 집중력과 끈기가 관건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게 안 된다. 산만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도 못한다. 늘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맨다. 때로는 방에서, 거실에서, 침실에서, 카페에서, 작업실에서, 도서관에서, 공원에서 글을 쓴다. 일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이 자주 옮겨 다니는 노매드적 성격과 닮았다.


오랫동안 그 점에 대해 죄책감을 가진 채 살아왔다. 왜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하지 못할까,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좋을 텐데,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세월을 다 보내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나버릴 한량 같아서 가족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 가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게 어쩌면 내 장점이고 내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런 일을 찾아서 하면 되지 않을까? 늘 새롭고 변화무쌍하며 싫증 나지 않는 일 말이다. 글쓰기란 것도 늘 새롭지만 그리 흥분되는 일은 아니다. 새로움에 느끼는 흥분보다 장시간의 몰입이 더 요구되는 일이다.


얼마 전에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출판 편집을 경험하면서, 내가 홀로 오랜 시간 동안 새로운 이야기 한 편을 만드는 것보다는 다양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편집하고 출판하는 일이 더 즐겁고 적성에도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자는 늘 새로운 작가, 새로운 이야기와 만난다. 처음에는 겁을 냈던 기획 일도 막상 출사표를 던지고 나니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과 부침이 있지만 그게 스트레스라기보다는 스무고개를 넘어가는 과정 중 하나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릴 때는 소명을 찾느라 길을 떠났다면, 마흔 살이 된 지금은 여러 길을 헤맨 끝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직업을 찾기 위해 '직업적성'을 애써 맞추려 하기보다는 '적성' 그 자체에 집중해 깊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내 적성을 알고 그것을 인정할 때 직업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어야지'보다 '어떻게 살아야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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