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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Nov 08. 2021

SNS를 끊었다

앱을 삭제한 뒤 내 문제들을 마주 보았다

SNS를 끊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앱을 스마트폰에서 지워 버렸다. 퍼거슨 감독이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했건만, 나는 그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자기 비하 습관과 이유 모를 피로감이 바로 SNS 때문이었음을, 앱을 삭제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오죽하면 페이스북도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콘텐츠가 십대들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숨겼겠는가. (그게 다 돈 때문이다.) 그 사실이 폭로된 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주주 탈출 러시를 경험하는 바람에 페이스북은 사명까지 바꾸었다.


SNS는 내게 다섯을 주고 열을 빼앗아갔다. 

혼자 일하는 직업 특성상 사람을 만날 일도 잘 없는 데다 코로나 여파로 더더욱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SNS 안에서 지인들의 삶을 지켜보고 내 삶도 공유하는 것이 일종의 소통처럼 여겨졌었다. 고립된 현실에서 클릭 한 번이면 세상에 접속할 수 있으니 언제든지 동떨어진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놈의 '언제든지'가 문제다. 이 단어 때문에 하루 종일 SNS만 들여다보고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남의 반응을 신경 쓰다가 정신력이 방전됐다. 신세 한탄과 자기 비하는 습관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직업 능력 상실'이었다. 글을 못 쓰게 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집중력 부족, 또 하나는 자기 검열. 하루 종일 남들의 잘난 면들만 보고 있으니 내가 하는 모든 게 쓰레기같이 느껴질 수밖에.


앱을 삭제한 뒤에야 문제가 뚜렷하게 보였다.

24시간 온라인에 접속된 기분으로 살다가 SNS를 확 끊어 버리고 나서, 처음에는 적응을 못했다. 외로움과 지루함이 번갈아 밀려왔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능력을 상실한 터라 잘 되지 않았다. 책을 읽어 보려고 했지만 일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을 제외하고는 집중해서 오래 읽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려니, 그건 또 어찌나 어색하던지. 유튜브와 넷플릭스 삼매경에 빠졌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볼 게 없다.


블로그와 브런치도 끊었다. (원래도 자주 쓰지는 않았다.) 남들의 반응에 신경 쓰기 싫었고, 쓸 것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쓰기 근육이 어찌나 흐물흐물해졌는지 끼적이는 것들 중에 글다운 글이랄 게 당최 없는 것이었다. 글을 못 써서 머릿속은 난리가 났다. '이 등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이러지?'


무능력에 한숨 쉬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너무너무 심심해서(!) 글을 썼다. 세상에. 내가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니! 전에는 알 수 없는 조급함 때문에(혹은 완벽주의 때문에) 오히려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는데, 집중을 방해하는 놈들이 사라지니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와 어휘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SNS와의 거리두기 덕분에 집중력과 필력이 조금 회복된 건가? 지금은 여기에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이제 소설도 집필해야 할 텐데, 나는 아직 자기 검열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작품을 쓰기도 전에 스스로 아이디어를 검열해 보고 지레 좌절하는 버릇을 못 고쳤다. 가끔 아무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몇 달 동안 지내며, 검열의 압박을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의 기쁨을 느껴 보고 싶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 버리는 게 아닐까.

SNS를 안 해서 홀로 도태되면 어쩌지, 나만의 세계에 갇혀 버리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언제는 나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다진 적이나 있었던가? 나만의 세계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적이나 있었던가? 나의 세계가 이렇게나 빈약한데, 무슨 깡으로 이 넓은 세상에 함부로 머리를 들이밀었지? 자신의 세계가 빈약하면 이리저리 휘둘리고 현혹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내가 여태껏 SNS 세상에서 매일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선 나부터 단단해지자. 걱정은 그다음이다.


나처럼 자기 통제 능력이 약한 사람은 무심코 SNS에 발을 들였다간 큰일 난다. 요즘 시대에 먹고 살려면 SNS 활동이 필수라고는 하지만, 내 경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그만두었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투자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옛날, 싸이월드 시절 당시 남자친구는 인터넷에 사생활, 즉 일상을 공유하는 게 이상하고 싫다고 했다. 헤어지던 때까지도 그는 끝까지 싸이월드 계정을 만들지 않았다. 역시 그가 현명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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