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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un 17. 2022

'예술인 패스'가 말했다 "거저 주는 거 아니다"


예술인이 되자.


예술인 패스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으로 인정된 회원이 발급받을 수 있는 일종의 할인카드다. 모든 예술 관람을 다 할인받을 수는 없지만, 지정된 음악 공연, 미술 전시의 수가 적지 않은 데다 지정 카페 등에서 식음료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토록 매력적인 카드라니! 남편에게 예술의 전당 가서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음악 듣고 싶다고 가끔씩 부르짖었던 터이니 예술인 패스는 강력한 아이템이다. 나는 바로 이 예술인 패스를 받기 위해 복지재단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패스를 받으려면 먼저 예술인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예술인 경력 정보시스템'에서 진행한다.


홈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어쩔 수 없이 돈! '창작 준비금' 지급 관련 배너였다. 전에는 아무리 돈을 못 버는 예술가라도 가족 구성원의 소득을 합산했기 때문에 가족의 소득이 많으면 창작 준비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나도 대상자가 아니었다. 어차피 나랑 상관없는 그까이꺼...가 아니라 올해부터는 가구원 수와 상관없이 본인 소득만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준다고 한다! 돈 못 버는 예술인, 그게 바로 나요! 나중에 창작 준비금 지원 사업 공지가 뜨면 한번 신청해 보기로 하자.


https://www.kawfartist.kr/hkor/userMain/hkorMain.do?sso=ok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 준비금을 받기 위해 복지 재단에 가입하는 줄로 안다. 그만큼 예술가로 살아남기가 고된 것일 테지. 예나 지금이나. 이 땅에서 예술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창작 준비금 없이 오로지 자신의 예술 활동만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 이제 밥값을 하자.


어쨌든 회원가입을 하고 예술인 등록 신청을 시작했다. 문학 분야를 선택하고, 웹에서 내 작품을 검색해 화면을 캡처해서 증빙자료랍시고 올렸다. 서류 검토 결과가 나오기까지 딱 두 달 걸렸다. 코로나 피해 지원하느라 바쁜갑지, 하고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문자가 왔다.


[신청하신 예술활동증명 자료 중 일부 보완이 필요하여 연락드렸습니다. ...]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보완 요청 글이 있었다. 무려 A4용지 2장 분량.... 완전히 새로 제출하라는 의미다. '이따위로 화면 캡처할 거면 URL 기재하시오', '본인 증명 서류에 왜 본인 정보가 없소', 뭐 그런 의미다. 자세한 설명을 보고 처음부터 다시 했다. 발표한 작품 표지, 판권 페이지, 본문 일부, 본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계약서(날인 포함)와 문단 증서를 스캔해서 올렸다.

보완한 지 보름 후. 문자가 왔다.


[예술활동증명이 완료되었습니다.]


옳다구나!

그동안 공식 예술인으로 인정받으려 서류 넣고, 심사 받고, 기다리고, 보강 통보받고, 보강 서류 넣고, 기다리고, 그렇게 몇 달을 보낸 결과, 드디어 나는 예술인이 되었다.

인기도 없고 사회에 끼친 영향도 없고 다음 작품 발표도 요원하나, 그럼에도 예술인이 되었으니 예술인 패스 발급 신청을 하자! 모바일 패스가 발급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애인이거나 70세 이상, 스마트폰 미사용자일 경우 실물 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인패스(모바일)


이 예술인 패스를 맨 처음 사용하게 될 곳은 어디인가! 기대된다.

아니 근데... 문득 나 같은 사람이 예술인 소리를 들어도 되나 싶은 죄책감 같은 게 들었는데, 한편으로 오기가 움튼다.


'그럴수록 더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작품 만들 생각을 해야지 원, 이 무명작가야!'


이것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앞으로 이 신분증이 부끄럽지 않게 예술 활동을 지속하라는 의미로 주는 당근이다. 이 당근을 먹으며, 올 하반기에는 새 작품의 반석을 깔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세우고 세간살이를 들이고 집주인들을 초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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