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white-vill
처음으로 집을 보러 온 것은 아직 안산에 살 때였다. 구멍이 송송 뚫린 빨간 성산대교를 건너면서 안산 성포초등학교 1학년 3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사 갈 집에 도착하자 친절한 집주인이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원목으로 된 연갈색 바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어릴 때 살았던 집의 구조와 비슷해서 어딘가 정감이 갔다. 집주인은 안방을 보여주었다. 붙박이장이라는 단어를 거기서 처음 들었다. 나는 옮길 수 없는 장롱을 분해하면 방이 얼마나 더 넓어질지 상상했다.
부모님이 집을 더 둘러보는 동안 나는 동생과 박스를 오리면서 놀았다. ㄱ자로 총 모양을 만들어 그 위에 사인펜으로 집주인이 알려준 현관 비밀번호를 적었다. 92로 시작하는 여섯 자리 비밀번호였다. '누구의 생일일까? 아니면 결혼기념일?' 나는 그것을 외우며 부모님을 기다렸다. 그때 베란다에서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와 아빠, 집주인이 베란다 안에 갇혀 있었다. "인서야! 문 좀 열어줘!" 엄마가 웃으며 나를 불렀다. 그때 집이라는 공간이 결코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나를 가두기도 하고, 바깥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감금의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순식간에 느껴졌다. 나는 겁에 질린 채 베란다 문에 달린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미닫이도, 여닫이도 아닌, 처음 보는 모양의 문이었다. 나는 손잡이를 마구 돌리며 베란다 문을 흔들어댔다. 그러자 덜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고 사람들이 나왔다.
이런 형태의 샷시를 가진 창문은 닫기도 어렵다. 먼저 두 손으로 고정된 창문을 힘껏 빼내고 왼쪽으로 밀어야 한다. 그다음 창문을 오른쪽으로 세게 당면서 반동을 이용해 틀 안에 들어맞도록 창문을 두 손으로 밀어낸다. 그러면 보통 철컥 소리를 내면서 창문이 틀 안에 쏙 들어간다. 그러나 내 방에 있는 창문은 레일이 녹슬었는지 고정하는 장치와 잘 맞물리지 않는다. 그럴 때 머리끝까지 화가 나곤 한다. "좆같은 놈! 쓰레기 창문!" 욕을 하면서 창문을 마구 흔들면 어느샌가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힌다. 문을 어떻게 닫았는지, 왜 성공했는지 알 수 없는 나는 창문을 흔들 때보다 더 큰 짜증을 느낀다. 에어컨을 튼 보람이 없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침대에 드러누우며 독립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