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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진 Mar 02. 2019

영화제 휩쓸었던 이 영화, 왜 배우들은 상을 못 받았나

[리뷰]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포스터. ⓒ (주)피터팬픽쳐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인생의 허무함을 보여주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추구한다. 영화는 인생의 허무함을 죽음으로 보여준다. 영화 스토리의 중추를 담당하는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는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아들에게 살해당한다.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마담 D(틸다 스윈튼)의 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도 연인의 부를 상속받으며 방탕한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총 한 방에 죽는다.

호텔 로비 보이 제로(토니 레볼로리)와 케이크 가게 종업원 아가사(시얼샤 로넌)는 온갖 역경을 헤치며 결혼으로 사랑을 완성하지만, 2년 뒤 아가사와 자녀는 지금의 의술로 일주일이면 낫는 단순한 병에 걸려 죽는다. 아무리 욕망을 추구해도 인간은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잃는다. 나이든 제로는 순수했던 아가사를 추억하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존한다. 영화는 '인생은 허무하지만 순수한 사랑은 남는다'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영화는 이를 미장센을 통해 좀 더 촘촘하게 드러낸다. 지난 10월, 약 4년여 만에 재개봉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를 다시 봤다.

1. 상승 구도로 드러내는 욕망 추구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영화는 인간이 욕망을 추구하는 모습을 상승 구도를 활용하여 나타낸다. 보다 높은 계층으로 향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욕망이다. 영화 초반 장면에서 구스타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제로를 인터뷰한다. 제로가 하위계층에서 상위계층으로 올라가는 진입로에 들어선 걸 암시하는 장면이다.

상승 구도는 루츠성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구스타브는 마담 D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그녀에게 가야겠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자신에게 남겼을지 모르는 유산을 알고 싶어 한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루츠성 입구부터 끊임없이 올라간다. 위로 향한 계단은 돈으로 신분을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사과를 든 소년'을 구스타브가 몰래 떼는 장면에서도 상승 구도가 나타난다. 당대 최고 예술작품으로 평가되는 '사과를 든 소년'은 미적으로 칭송받지만 화폐 교환 가치로 더 크게 주목받는다. 구스타브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그림을 떼어낸다. 돈으로 신분을 상승시키고자 하는 모습이다. 구스타브 옆에 있던 제로도 의자를 밟고 올라가 그림이 있던 자리에 다른 그림을 걸어놓는다. 순수함으로 상징되는 '사과를 든 소년'이 있던 자리에 여자 두 명이 성애를 나누는 천박한 그림이 걸린다. 포장되었던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을 비꼬는 미장센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호텔에 있는 금고 안에 그림을 숨길 때도 구스타브는 의자를 밟고 올라간다. 계속되는 상승 구도다. 이후 경찰에게 쫓길 때도 구스타브는 호텔 문밖으로 달아나는 게 아니라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간다. 잡힐 게 뻔한데도 계단으로 올라가는 행동은 포기하지 못하는 구스타브의 상승 욕망을 보여준다.

구스타브가 탈옥에 성공하는 장면에서도 상승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구스타브는 하수구 구멍을 통해 위로 올라온다. 감옥이라는 하층계층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욕망의 세계로 상승하는 형태다. 구스타브는 은신처도, 변장 도구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제로의 말에는 침착하지만, 불어로 '허영의 공기'라는 뜻을 가진 '레어 드 파나쉬 향수'를 잊은 제로를 크게 질책한다. 악취가 뿜어져 나오는 날것 그대로인 자기 모습을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구스타브가 향수를 찾는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을 보여준다.

순수함으로 상징되는 아가사도 상승 구도를 보여준다. 짐을 챙겨 제로와 달아나려는 아가사는 제로가 훔친 그림 위치를 알려준 쪽지를 챙긴다. 이 장면에서 아가사는 지붕 위에 열린 창문을 닫으러 올라간다. 창문은 제로가 아가사에게 그림 위치가 담긴 종이를 주고 달아나며 열어놓고 간 것이다. 하지만 아가사의 행동은 돈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보기 힘들다.

밤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장면에서 아가사는 창문을 닫는다. 닫힌 창문에서 어두운 밤과 대비되어 새어 나오는 빛이 보인다. 어둠이 표상하는 욕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는 아가사가 그림을 챙기는 이유가 단지 제로를 도와주기 위한 행위일 뿐이지 그림을 판 돈으로 신분을 상승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그림을 챙겨 달아나려던 아가사는 마담 D의 아들이자 구스타브를 추격하고 있는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와 마주친다. 내려오던 방향을 틀어 급하게 계단을 다시 올라가지만 드미트리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된다. 이 장면에서도 상승 구도가 나타난다. 그림이라는 돈을 좇는 드미트리의 욕망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부유한 노인이 된 제로와 그를 인터뷰하러 찾아온 작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제로는 아가사와 이 호텔에서 잠깐 행복했다며 호텔을 지키는 이유를 말한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여기서 나타나는 상승 구도는 돈에 대한 욕망 추구가 아니다. 제로와 작가가 대화를 나누던 아래층은 가진 것은 없지만 순수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공간이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가는 공간은 노인이 된 제로의 현실 세계인 상층부다.

2. 하강 구도에 나타나는 인간 본래의 모습
 
영화는 하강하는 이미지를 통해 인간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려 한다. 처음 도입부에서 남자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애니메이션이 삽화되어 있다. 장면은 그대로 평행이동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모습을 보여준다. 호텔의 상층부가 욕망의 상징이라면 하층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여기서 남자 둘은 과거의 제로와 구스타브, 현재의 늙은 제로와 제로의 이야기를 인터뷰하는 작가, 또는 제로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작가와 이를 듣는 손자로 해석될 수 있다.

도망치다 잡힌 구스타브와 제로가 감옥에서 면회하는 장면은 하강 구도를 보여준다. 구스타브는 계단을 걸어 내려온다. 구스타브는 간수와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육탄전을 벌여 얼굴이 흉측해진 상태다. 시를 즐겨 읊고 향수를 뿌려대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겉치레를 벗어 던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탈옥하는 장면에서도 끊임없이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며 인간 본래 모습을 보여준다. 탈출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동료가 죽어도 그저 넘기는 장면은 살기 위한 본능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강 이미지는 마담 D 저택의 집사 서지를 살해한 조플링(윌렘 대포)을 추격하는 구스타브와 제로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설원에서 썰매를 타며 끊임없이 내려간다. 성당과 흰 눈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장면은 구스타브가 추구했던 욕망을 회개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이들의 하강은 출발선을 지나 결승선까지 이어진다. 결승선을 넘는 장면에서 급경사 때문에 상승하지만 곧바로 뚝 떨어진다. 제로는 거꾸로 눈밭에 파묻히고 구스타브는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다. 급격히 하강하는 모습은 과도한 욕망을 추구해도 본래 나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조플링은 구스타브를 살해하려다 제로에 의해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다. 아가사와 함께 순수의 상징인 제로가 욕망 덩어리인 조플링을 밀어버림으로써 욕망이 순수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한다.

3. 환원론적 인생관을 보여주는 미장센과 구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영화는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환원론적 관점을 드러낸다. 늙은 작가가 늙은 제로를 인터뷰하는 장면에 작가의 손자가 함께 등장한다. 세대교체를 암시하는 장면이다. 성인과 어린 남자아이가 동시에 등장하는 상황은 구스타브가 탈옥 후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구스타브는 호텔 안내원들이 결성한 십자열쇠협회에 공식적으로 특별 서비스를 요청한다. 이때 도움을 요청받는 성인 남성 옆에 항상 남자아이가 있다. 남자아이는 도움에 응답하는 성인 남성이 하던 일을 대신 맡는다. 아이가 자라면 성인 남성과 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암시다. 구스타브가 죽고 제로가 구스타브가 하던 일을 이어받는 것 역시 돌고 도는 환원론적 인생을 보여준다.

제로와 작가가 등장하는 구도를 통해서도 환원론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식당에서 작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제로는 왼쪽에 있고 작가는 오른쪽에 있다. 둘이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제로가 오른쪽에 있고 작가가 왼쪽에 있는 걸로 바뀐다. 화면은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힌다. 식당에서 두 사람 위치는 제로 세대에서 작가 세대로 시대가 변함을 나타낸다.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둘의 위치가 반대인데 이것은 인생이 돌고 도는 것이라는 환원론적 주제를 나타낸 것이다. 도입부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도 환원론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도입부에서 작가는 호텔 로비 왼쪽 소파에 앉아있는 제로를 발견한다. 영화 끝 부분에서는 제로와 헤어진 작가가 제로를 처음 봤던 그 소파 자리에 똑같이 앉는다. 세대는 달라지지만 비슷한 삶이 이어진다는 환원론적 인생관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환원론적 관점은 제로와 아가사가 회전목마를 타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탄 아가사는 제로의 시선으로 얼굴만 클로즈업된다. 아가사 뒤로는 불빛이 흐릿하게 뱅글뱅글 돌아간다. 회전목마를 탄 아가사와 제로, 아가사 뒤로 돌아가는 불빛 모두 돌고 도는 인생을 표현한다. 세대는 바뀌지만 인생은 비슷한 모습으로 계속된다는 것이다.

액자식 구도로 스토리를 엮은 것도 환원론적 인생관을 보여준다. 화면은 작가의 묘지에서 작가를 추모하는 여자, 과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관한 얘기를 손자에게 들려주는 나이든 작가, 젊은 작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이든 제로, 이야기의 주인공인 젊은 제로와 구스타브, 이렇게 4가지 액자로 구성되어 있다. 액자는 현재에서 과거로 되돌아가는 역행 방향을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에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이는 세대는 변하더라도 살아가는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과거와 현재가 환원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사각형 프레임으로 진실 의심하게 만드는 구조

영화는 등장인물을 계속해서 사각형 틀 안에 집어넣는다. 엘리베이터라는 사각형, 달리는 열차의 창문, 열리고 닫히는 문이 모두 사각형이다. 마담 D도 죽은 뒤 사각형 관에 뉘어져 있다. 이러한 사각형 프레임은 우리가 보는 세계가 재구성된 세계라는 걸 드러내는 장치다. 늙은 작가는 인터뷰 장면에서 "제가 들은 그대로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전달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감정에 의해 기억은 왜곡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우리가 보는 프레임에 의해 변형된 세계일 뿐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영화에서는 인물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옮긴 장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제3자의 시선으로 대사와 행동이 나타날 뿐이다. 관객은 영화 속 인물의 심정, 성격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지 인물의 내면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관객은 자신이 유추한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이는 르네 마그리트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이미지의 배반이다. 각자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진실이라 믿을 뿐이다. 관객이 보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진정한 이야기가 아니다.

5. 순수함을 보여주는 미장센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아가사는 순수함으로 상징된다. 그녀는 가진 게 없는 제로를 진정으로 사랑해 목숨 걸고 돕는다. 제로가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훔친 그림 위치를 알려주려 하자 자신은 장물아비가 아니라 베이커라며 거절한다. 그녀의 순수함을 알아본 구스타브는 흰 튤립을 어린아이 관 박스에 담아 아가사에게 선물한다. 순수함으로 상징되는 흰 튤립이 어린아이 관 박스에 담긴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열망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순수함을 되돌릴 수 없는 구스타브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아가사가 만드는 멘델 빵집 케이크도 잃어버린 순수함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다. 빵 속에 무언가 섞여 있을까 가차 없이 칼로 자르고 송곳으로 쑤셔대던 교도관도 곱게 장식된 케이크는 건드리지 못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멘델 빵집 직원으로 잠입한 구스타브와 제로는 케이크를 건네주며 입구를 쉽게 통과한다. 입구를 지키던 경관은 손가락을 빨며 아가사가 건네준 케이크를 먹는 중이었는데 이미 멘델 빵집에서 왔다 간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변장한 구스타브와 제로를 통과시켜 준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달콤한 간식 앞에서 약해지는 모습과 같다. 멘델 빵집 케이크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나타내는 미장센이다.
 
제로와 작가가 식당에서 대화를 마무리할 때도 멘델에서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케이크가 등장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녀를 추억하기 위해 제로가 지속시키는 공간이다. 순수했던 그때를 잊지 못함을 드러내는 미장센으로 과거와 같은 케이크가 등장한 것이다.

6. 다양하게 활용된 미장센, 톤, 구도
 
영화에 담긴 다양한 컷에서도 미장센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도입부에 여성이 작가를 추모하러 묘지로 걸어가는 장면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성 3명이 앉아있는 게 보인다. 이들은 이미 죽은 구스타브, 제로, 작가를 형상화한 모습으로 여겨진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만난 늙은 제로와 젊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간이 목욕탕이라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제로는 자기의 은밀한 과거 이야기를 작가에게 들려주겠다고 한다. 바로 다음 컷에 소리를 지르며 맨몸으로 물줄기를 맞는 남성이 등장한다. 목욕탕 물의 이미지를 통해 제로가 과거를 씻어내는 모습을 형상화했고 알몸으로 물을 맞는 남성을 통해 날것 그대로 이야기가 드러날 것이 예측된다.

물의 이미지는 제로가 아가사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나이 든 제로의 눈물은 그동안 감춰뒀던 아가사에 대한 추억을 흘려 보내는 의식이자 억눌려 있던 감정을 분출하는 카타르시스다.

제로가 과거 부다페스트 호텔을 이야기할 때 화면 전체 톤이 변화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과거를 회상할 때는 선명한 화면 톤에서 탁한 갈색으로 변한다. 이는 빛바랜 책을 읽는 느낌을 준다. 감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화면 톤을 통해 오래된 책 느낌을 살린 것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과거를 회상하는 도입 장면에서 호텔 메이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보통의 시선 이동에서 역행하는 장면을 통해 시대를 거슬러 이야기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시선을 역행하는 구도는 구스타브가 죽음을 맞이하는 기차 신에서도 등장한다. 기차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열차 창문을 통해 바라볼 때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풍경이 변화한다. 자연스러운 시선에서 역행하는 모습이다. 나아가는 기차는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고 역행하는 풍경은 돌고 도는 인생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은 몇 단계로 나누어지는 시대 배경을 드러내기 위해 화면 톤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활용한다. 과거에 등장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빨간색과 보라색이 지배적이다. 정열과 욕망, 관능과 우아함을 드러내는 장치다. 작가가 나이든 제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호텔 모습은 그보다 낮은 채도다. 과거 호텔 명성이 퇴락한 모습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 컷. ⓒ (주)피터팬픽쳐스


 

마담 D의 저택인 루츠성으로 향하는 길은 검은색이 지배적이다. 검은색은 죽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반면 흰색은 순수, 정직, 순결을 상징한다. 저택에서 유일하게 흰색 옷을 입은 집사 서지는 진실의 수호자임과 동시에 구스타브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의 이미지는 제로가 구스타브와 '사과를 든 소년' 그림을 훔치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로는 주방에서 준 흰 우유가 든 유리컵을 든 채 구스타브와 그림이 있는 방으로 이동한다. 그는 그림을 바라보다가 구스타브가 그림을 훔치는 것을 돕기 위해 잔을 놓는다. 도둑질을 위해 순수함을 내려놓는 모습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복잡한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한 소녀는 어떤 작가의 두상 옆에 앉아서 그 작가의 소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읽고 있다. 시점이 1985년으로 이동하면서 이 작가가 이 소설에 관한 영감을 준 호텔 주인 노인 제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1968년 배경에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묵었던 작가가 제로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1932년은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자 작가가 듣고 있는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시점이다. 이때 어린 제로는 벨보이로 사건에 휘말린다. 마지막은 다시 작가의 두상 옆에서 소설을 읽고 있는 소녀 시점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네 시점의 변화에 따라 화면 톤을 세밀하게 배치했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영상 구성도 면밀하다. 기상천외하고 기이한 사건이 일어나는 이야기지만 배우는 감독이 세밀하게 짜놓은 구조 속에 조종받는 인형처럼 연기한다. 강렬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다. 깔끔한 동화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영상 구조는 치밀하게 계산되고 면밀하게 배치되었다. 2014년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이자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지만, 연기상은 하나도 없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BGM

Avishai Cohen - Rememb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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