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페셜리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마라님은 스스로가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하세요?"
지인으로부터 엊그제 받았던 질문입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되물으니 그녀는 고민을 터놓았습니다. 해외에서 학사부터 석사까지 오랜 시간을 공부한 건 정치학이었는데, 어려운 취업길에 선택하게 된 첫 회사에서는 에디터의 업무를 했다고 합니다. 2년간의 재직 끝에 퇴사를 하고 난 지금 재취업의 길에서 고민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스스로를 대체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 일컬을 수 있을까"가 그녀의 고민이었죠.
정치학이라고 하기엔 경력이 없고, 에디터라 하기에도 2년은 적은 경력이기에 스페셜리티를 갖췄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녀가 이러한 고민을 시작한 데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5년을 근속한 한 친구가 먼저 터놓은 고민이었죠. 그 친구의 입에서 '나는 전문성이 없어 이직에 어려움이 있겠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분야에서, 5년이나 일을 해온 친구조차 전문성이 없다는 고민을 하다니. 하고요.
그녀의 이야기는 불과 1년 전까지 제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제게 직장생활에 있어 콤플렉스라면 콤플렉스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타이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일컬어지는 직장인의 분류 중에 나는 무엇이라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을까. 나의 업무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크게 고민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OO회사에서 PR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OO회사 서비스 기획자입니다'
'저는 OO회사에서 해외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통상적으로 분류되는 타이틀이 제게는 없는 겁니다. 한창 그 고민을 할 때 이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브런치 소개글에도 IT기획자라는 애매모호한 소개를 할 수밖에요. IT회사에서 11년을 일했지만 몇 번의 이직과 수많은 부서이동을 거치면서 사업기획/ 서비스 기획/ 광고 기획/ 플랫폼 기획 등 다양한 업무를 해왔고, 최근 5년간은 각 업무를 1년씩 했으니 과연 내 타이틀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겁니다.
하지만,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그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전문성이라는 것이 꼭 한 분야, 한 부서에서 일해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하게 만든 건 지금 회사의 면접 당시 나누었던 이야기 때문입니다. 면접을 볼 때 저는 광고 기획자의 포지션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떨렸죠. 광고 기획의 경력은 10년 경력 중 고작 1년에 불과했으니까요. 무엇으로 면접관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면접관도 언급을 하더라고요.
'다양한 업무를 하셨네요, 그중 광고 경력은 이전 회사에서 1년 정도 하신 건가요?'
"맞습니다. 1년 정도 OO프로젝트와 OO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광고기획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외에도 서비스, 플랫폼, 사업기획 업무를 해왔는데요. 이 모든 일을 해보니, 업계나 부서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관련 없는 일이라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결국 기획자의 역할은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최선의 해결방안을 고민해, 협업을 통해 성과를 이뤄낸다는 뿌리가 같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과제를 맡아왔던 만큼 새로운 과제 역시 해결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답변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혹은 제 다양한 경력 자체를 매력적으로 느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단번에 긍정적인 표정으로 바뀌는 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경험 끝에 광고 기획을 다시 경력으로 쌓으며 애매모호한 타이틀에 한 줄을 더 긋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간 했던 '타이틀'이 없다거나 '스페셜리티'가 없다는 고민은 더는 들지 않습니다. 내가 쌓은 경험과 경험 사이에 뿌리가 같은 일은 반드시 있으니까요.
마케터를 하다가 기획자를 한다 해도, PR업무를 하다가 교육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일'이라는 데서 공통점은 반드시 있습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독자가 있다면 타이틀이 아닌 일의 뿌리를 조금 더 들여다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양한 업무를 해봤다는 그 귀중한 경험 자체가 나의 전문성이라 일컬어질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