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방법
일상 속에서 권태로운 삶에 지쳐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떠나보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 우리는 돌아와서 우리의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여행에 다들 그렇게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여행은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기약이 있으니깐 말이다.
여행은 늘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설렌다. 여행하며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또 어떤 곳을 가게 될까, 어떤 기회를 발견하게 될까. 나는 여행에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겁도 많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강한 편인 내가 외국에만 나오면 물 만난 고기가 되어 가는 곳마다 친구를 사귀게 된다.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들이나 아니면 그곳으로 여행을 온 여행객, 현지에서 거주하는 한인 교민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인종, 국가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건 아마도 여행이 주는 설렘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닐까. 가끔 여행에서 만난 이들을 서울에서 볼 때가 있다. 몇몇은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하는 친구로 남았지만 대다수가 만났을 때 어색하게 인사하며 차나 한잔 마시고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여행지만 가면 여행이 주는 설렘 때문에 한국에서는 하지 않는 것들을 용감히 해낸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좋아 계속해서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여행을 다니던 삶이 멈추면서 대안으로 이것저것 해보려 노력했다. 독립도 해보고 사이드 프로젝트들도 해보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여행으로 채워지던 만족감을 다른 것들로 채울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결국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그렇게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20대 후반을 정처 없이 표류하다가 결국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온몸이 뜨겁고 아파서 침대 위에 누워 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 나으면 코로나에 다시 걸리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해외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국내 여행도 물론 좋지만, 일상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다. 한국인들이 없는 곳,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나다움을 찾는 것. 그것이 내가 꿈꿔왔던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코로나에 걸린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완쾌되고 나서도 해외여행을 결심하기까지 약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진짜 가도 될까, 가서 PCR 검사를 해야 한다는데, 아니 것보다도 가서 격리를 해야 한다는 데. 내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항공권을 끊었다. 2019년 해외출장을 다녀온 뒤로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그곳, 베트남으로.
여행을 결심하고 나서 회사에 여름휴가를 다녀온다고 했을 때 다들 그래서 어딜 가는지 물어봤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냐짱이라고 이야기했다. 베트남에서도 휴양지로 유명한 나트랑. 한국인들은 보통 다낭에 많이 가는 편이었지만, 유럽인이나 특히 러시아인들에게 나트랑은 그들이 정말 좋아하는 휴양지라는 사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알게 되었다. 어쩐지 나트랑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대다수의 백인들이 러시아인이었고 심지어 이곳이 좋아 영어 선생님으로 눌러앉아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도 있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첨예한 갈등으로 비쳤는지 러시아 군인들이 잠시 머무를 때에는 그들은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군사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여하튼 이렇게 다채로운 휴양지인 나트랑을 여행하기로 결심한 건 딱 한 가지 이유였다.
바로 내가 2년 2개월 동안 꿈궈왔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데다가 가장 결정적인 건 항공권이 가장 저렴했기에 나는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약 일주일간의 여정 속에서 처음 3일간은 시내에서 화려한 동남아시아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그다음 3일간은 리조트에서 평화롭게 휴양을 하는 것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은 나트랑이었다. 후보지로는 방콕부터 코타키나발루, 호찌민, 하노이 등 다양했지만 외국의 바다를 볼 수 있는 나트랑에 가장 마음이 갔다.
나트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정말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낮에는 쉐라톤 쿠킹클래스에서 베트남 요리를 배우고 오후에는 호텔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시내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밤새도록 놀고 싶어 나트랑에서 유명하다는 클럽과 바를 돌아다녔다. 또 그다음 날에는 호핑투어를 떠나면서 정말 시내에 있는 동안은 꽉 찬 하루하루를 보냈다.
리조트에 있는 동안에는 시내에서와 달리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도 하지 않았고 수영만 했다. 더우면 물에 들어가고 배고프면 나와서 식당에 가고, 술이 먹고 싶으면 어디가 되었든지 맥주와 와인을 시켜서 무한정 먹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몸무게는 3kg가 쪘지만, 행복의 무게는 30kg가 더해진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리모트 워크를 떠나 이곳으로 온 직장인들, 쉐라톤 쿠킹클래스를 진행해준 셰프님들과 한국어를 배워 우리를 통역해주던 대학생 인턴 친구, 베트남에서 휴가로 나트랑을 여행하는 베트남인 친구들, 또 나처럼 코로나에 걸렸다가 완치되어 여행을 온 전 세계 인들, 그리고 회계사를 때려치우고 요가 선생님이 된 리조트 요가 선생님과 방학을 맞이해 이곳을 여행하는 친구들.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결국 모든 건 하나로 귀결되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내 시간을 보낼 것. 휴식이든 무엇이든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것.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그곳에서 산 기념품, 그리고 거기에서 쓴 글일 것이다. 나트랑에 있는 동안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글을 많이 써서 서랍장에 넣어두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서랍장에 잠들어있는 글을 하나씩 꺼내서 발행할 예정이다. 그 글에 담긴 건 나트랑에서 경험한 것들과 가본 것들, 먹어본 것들, 그리고 만난 이들, 또 그들에게 배운 것들일 것이다.
모든 글을 발행하고 났을 때 나는 또 어떻게 이번 여행을 추억하게 될까. 분명한 건 오랜만에 내 영혼이 행복해 춤췄다는 것 일터. 글을 계속 쓰고 있는 동안에는 내 여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